유용한 바보의 의미 전복, 〈리디오 위틸〉 1호

〈리디오 위틸〉은 패션을 매개로 노동, 정치, 성소수자 등의 이슈를 비평적 관점에서 다루는 잡지다. 2년여 만에 돌아온 1호는 창작 분야의 공공 지원 정책을 다룬다.

유용한 바보의 의미 전복, 〈리디오 위틸〉 1호

패션은 유독 노동 집약적인 분야로 손꼽힌다. 창작자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와중에도 패션업계의 착취는 공공연하다. 〈리디오 위틸l’idiot utile〉은 이 같은 현실을 목도한 사진가 위베르 크라비에르Hubert Crabières의 자조적 농담에서 출발한 잡지다. ‘리디오 위틸’은 ‘유용한 바보’를 뜻한다. 럭셔리 브랜드와 일하면서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자신이 쓸모 있는 바보처럼 느껴졌다고. 이에 작가는 유용한 바보가 되기를 자처하며 이 농담의 의미 전복을 시도했다. 바보라서 던질 수 있는 질문과 상상을 그러모아 업계의 외연을 넓히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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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오 위틸> 1호에 수록된 디자이너 이경민의 에세이.

〈리디오 위틸〉은 매호마다 패션을 매개로 노동, 정치, 성소수자 등의 이슈를 비평적 관점에서 다룬다. 창간호가 명품 산업의 노동 현장에 주목했다면, 2년여 만에 돌아온 1호는 창작 분야의 공공 지원 정책을 다룬다. 크라비에르는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입을 수 없는 옷’을 상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체에 빛을 비추거나 물을 뿌리는 등 유희적인 실험으로 상업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에디터 알렉시 에티엔Alexis Etienne은 주제를 다각도에서 논하기 위해 여러 창작자의 글을 수집했다. 디자이너 이경민의 에세이를 비롯해 10여 편의 텍스트를 수록했는데, 저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4개 국어의 원어를 병기한 점도 눈에 띄었다. 디자이너 오혜진은 어지럽게 교차하는 사진과 글자를 책이라는 구조 아래 재편하는 일을 맡았다. 노출 사철 제본 방식에서 착안한 흥미로운 편집 방식을 선보였는데,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이미지로부터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하며 책의 의미를 확장했다. 지난 10월 11일에는 오프라인 숍 코드Cord에서 〈리디오 위틸〉의 세 멤버로부터 프로젝트 제작기를 전해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책에 미처 담기지 못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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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숍 코드에서 열린 <리디오 위틸> 1호 출간 기념 행사.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9호(2025.1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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