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부터 자크뮈스까지, 패션 브랜드가 영화 형식을 활용하는 이유는?

패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캠페인과 영화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영화 형식을 차용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구찌, 샤넬, 프라다, 자크뮈스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언어를 빌려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을 감각적으로 전하는 이들의 캠페인과 영화를 소개한다.

구찌부터 자크뮈스까지, 패션 브랜드가 영화 형식을 활용하는 이유는?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는 소식은 패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발표 직후 구찌의 주가가 출렁거렸으니,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베트멍, 발렌시아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디자이너였지만 구찌와는 영 안 맞는 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찌에서의 첫 데뷔 컬렉션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바잘리아의 구찌 컬렉션이 공개되었고, 예상과 달리 그 결과물은 놀라울 만큼 ‘구찌스러웠다.’ 안장을 고정하는 캔버스 벨트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과 레드의 웹 스트라이프, 그리고 구찌의 상징인 GG 모노그램이 컬렉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잘리아는 낭만적인 곡선을 과감히 배제하고 해체적인 디테일을 더했으며, 아카이브 피스의 크기를 왜곡해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그동안 그를 향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였던 매체들조차 컬렉션 공개와 동시에 호평을 쏟아냈다.

구찌(GUCCI), 단편 영화〈더 타이거〉

그의 첫 구찌 컬렉션이 호평을 얻은 이유는 이처럼 브랜드의 철학에 자신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컬렉션의 서사를 반영한 단편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가 함께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녀〉, 〈존 말코비치 되기〉 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와 배우 겸 감독인 할리나 레인(Halina Reijn)의 지휘 아래 제작된 이 영화에서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성을 얻었다. 특히 〈서브스턴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데미 무어는 이 영화에서 구찌 인터내셔널 대표이자 캘리포니아 회장인 ‘바바라 구찌(Barbara Gucci)’로 분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 컬렉션의 의상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존재감을 뽐내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이지만 영화제에 출품해도 손색없는 작품성이 더해져 컬렉션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했다. 바잘리아는 영화와 컬렉션을 통해 구찌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고,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처럼 패션 하우스들은 브랜드 철학에 예술성을 접목하는 시도를 통해 컬렉션과 제품을 알리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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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찌 유튜브

바잘리아 이전에도 구찌는 영화라는 매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익스퀴짓(Exquisite)’ 캠페인은 전설적인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작품을 오마주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 태엽 오렌지〉, 〈샤이닝〉의 명장면이 구찌의 컬렉션과 어우러지며, 캠페인을 걸작으로 이끌었다.

감각적인 구도와 연출이 돋보이는 이 영상은 해당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마저 매료시킬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미켈레는 영화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큐브릭의 세계를 기리며, 동시에 구찌의 영향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샤넬(CHANEL), ‘아이코닉 핸드백’ & ‘블루 드 샤넬’ 캠페인

샤넬 역시 영화 같은 캠페인을 제작하는 데 있어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 선보인 ‘샤넬 아이코닉 핸드백 캠페인’은 1966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감독의 〈남과 여〉를 오마주했다.

흑백의 차분한 영상 속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만들어내는 은근한 분위기가 샤넬을 향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친숙한 영화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두 배우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장면 속에서 아이코닉 핸드백은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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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샤넬 유튜브

이 캠페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샤넬 하우스가 시작된 도시 ‘도빌(Deauville)’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는 2024/2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도빌의 산책로를 런웨이로 옮기며 캠페인 영상과 쇼가 하나의 맥락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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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샤넬 유튜브 채널

이를 통해 관객들은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감을 주었던 도시에 자연스럽게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브랜드의 역사를 되새기는 동시에 브랜드에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전설로 꼽히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감독과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가 참여한 ‘블루 드 샤넬(Bleu de Channel)’ 캠페인은 공개 직후 두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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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샤넬 유튜브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1968년작 〈죽음의 영혼〉에 영감받아 제작된 이 캠페인은 흑백 배경과 푸른빛의 강렬한 대비가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화려한 배우의 삶과 평범한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샬라메가 결국 푸른빛을 따라 컬러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블루 드 샤넬’이 상징하는 성숙한 남성의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프라다(Prada), ‘갤러리아 백’ 캠페인

프라다는 갤러리아 백 캠페인에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를 더해 화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참여한 감독의 개성이 영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연출한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가 지휘한 영상에서는 배우로서 일상을 보내는 요한슨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다. 연기하는 순간은 흑백으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는 컬러로 표현하며 구분했고 그 사이에도 갤러리아 백은 그녀와 함께하며 일상에 스며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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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라다 유튜브

〈더 랍스터〉, 〈가여운 것들〉을 통해 감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서사를 선보여 온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감독의 영상에서 갤러리아 백은 배우의 수상한 작업을 돕는 도구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녀의 일상에서 갤러리아 백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동시에 그녀의 개성과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두 영상 모두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감독들의 출중한 연출력이 돋보여 눈길을 끈다.

자크뮈스x나이키, 문 슈즈(Moon Shoes)

최근 자크뮈스는 나이키와 협업을 통해 스니커즈 ‘문 슈즈(Moon Shoes)’를 선보였다. 셀럽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대세로 떠오르는 패션 브랜드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만남은 시작부터 큰 관심을 끌 만했다.

협업의 열기를 더 고조시킨 것은 역시나 캠페인 영상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에서 열연을 펼쳤던 배우 니콜라스 차베스(Nicholas Chavez)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는 모습은 문 슈즈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별다른 서사가 없어도 스니커즈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낸 이 영상은 협업의 성격과 가치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캠페인에 영화의 형식을 활용하는 이유는, 영화가 지닌 복합적인 매력과 강렬한 영향력 덕분이다. 음악, 미술, 서사가 결합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깊이 각인시킨다. 컬렉션 전체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추억이 되어 다시금 브랜드를 찾게 만든다. 이처럼 영화라는 장르를 차용한 캠페인은 은근하고 강렬하게 브랜드의 팬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사람들이 사랑하고 추억하는 영화들을 오마주하는 방식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예술성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철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기리는 작업은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이미지와 정서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바로 이런 장점 때문에 앞으로도 작품에 버금가는 영화 캠페인이 꾸준히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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