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상재 최주연 공동 대표
물성의 주름에서 발견한 창작의 미래
지난 1월 사장으로 승진한 윤현상재 최주연 공동 대표는 물성의 주름에서 창작의 미래를 찾는 기획자다. 그는 최근 열린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예술 감독을 맡았다.
“나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보았고, 그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돌을 깎았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명언이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이 말 안에는 또 다른 진리가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성이 지닌 신성한 가치다. 소재의 물성 자체가 곧 영감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Arts and Architecture are inspired by materials’이라는 윤현상재의 슬로건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타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 수입 건축자재 회사는 판매를 넘어 줄곧 재료의 가치를 전달한다. 지난 1월 대표로 승진한 윤현상재 최주연 공동 대표는 회사의 지향점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다. 2011년 갤러리 스페이스 비이Space B-E 오픈을 시작으로 플리마켓 ‘보물창고’, 프로젝트 ‘EXP: 8 Seasons’ 등을 진두지휘한 그는 인테리어디자인코리아, 공예트렌드페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올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진행하는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예술 감독을 맡은 최주연 대표는 물성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예술, 공예와 건축을 영리하게 직조해내고 있다.
사유의 두께
내일모레 밀라노로 출국한다고 들었어요. 전시 준비로 한창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엄청나게 달렸어요.(웃음) 예술 감독으로 임명된 게 8월 말이니 프로젝트는 꽤 일찍 시작한 셈인데 KCDF와 전시 장소부터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그다지 여유롭지 않더군요. 윤현상재 ‘EXP: 8 Seasons’(이하 EXP)의 세 번째 기획 시즌인 ‘Excuse Me’ 준비를 병행해야 하기도 했고요. 출국 전에 네 번째 시즌까지 마무리를 지어야 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유의 두께’라는 타이틀이 흥미로워요.
두께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자 했어요.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죠. 예술·공예 이론가 글렌 애덤슨Glenn Adamson이 이야기한 ‘물질에 대한 지능(material intelligence)’을 근거로 파트 1의 ‘변덕스러운 두께’라는 소제목 아래 물성에 담긴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를 조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연출과 눈요깃거리가 전부인 전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전시는 일종의 리딩 컴프리헨션reading comprehension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을 때 행간을 파악하듯이 작품을 감상하고 그 안에 담긴 창작의 맥락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국내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가 인기를 끌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관람객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봐요. 특히 젊은 관람객이 독자적인 감상법을 체득했다고 느끼는데, 이에 맞춰 전시 기획자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차茶를 매개로 한 파트 2 ‘소박’과 파트 3 ‘공존의 마당’도 짧게 소개해주세요.
대중문화를 필두로 옮겨온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을 전통문화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차 문화에 담긴 정신이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했죠.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로 ‘소박’을 골랐습니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 아닌가요?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sobak’이라고 표현했어요. ‘소박’이라는 말 자체가 더 널리 쓰이길 바랐거든요. 현재 서구권에서 널리 쓰는 일본의 ‘와비사비’와 유사한 개념인데 한국은 언어를 정립하고 선취하는 데 덜 영리한 것 같아요. 국수주의적 관점을 관철하려는 건 아니지만, 동아시아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정서가 있는데 일본이나 중국에 말의 헤게모니를 자꾸 내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비정형의 미학, 무기교의 기교 등 고도화된 우리 전통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의 찻사발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굉장히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멋스럽죠. 손에 쥐었을 때 마치 자연물을 대하는 듯한 질감과 정서가 느껴지고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디자인 행사라는 큰 틀 안에서 공예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디자인, 미술과 접점을 이루면서 장르 간 횡단이 이뤄지고 새로운 문화 지형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물성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이죠. 제가 집중한 것은 작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입니다. 기획자가 전면에 드러나거나, 연출이 작품을 압도하는 것은 지양했어요. 전시 기획자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지 스스로 작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스마트한 연출로 성공한 큐레이터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같아요. 사람들이나 매스컴이 다음 전시에는 더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모습을 기대하죠. 그러다 보면 과유불급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경계한 게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시류를 읽는 기획자
KCDF는 언제나 감 좋은 기획자를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예술 감독으로 선출한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만큼 기획자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것 아닐까요?
2019년 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이후 윤현상재의 꾸준함을 지켜봐준 덕분이 아닐까요? 사실 윤현상재가 2011년 갤러리 스페이스 비이를 오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어요. ‘타일 회사가 왜 갤러리를?’이라고 생각한 거죠. 일부는 어디 언제까지 운영하는지 두고 보자는 입장이었어요. 이해합니다. 당시에도 많은 회사가 갤러리를 오픈해 반짝 운영하고 문을 닫았으니까요. 하지만 10년 넘도록 자체 전시를 기획하면서 시선이 달라진 듯합니다. ‘저 꾸준함은 어디서 오는가?’ 라고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죠. 수익이 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기획팀의 규모가 큰 것도 아닌데 말이죠.
솔직히 저도 ‘타일 회사가 왜 굳이 갤러리를 운영할까?’라고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판매를 넘어 윤현상재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돈만 버는 회사가 아니라 ‘멋진 회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 이는 김경수 대표의 방향성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윤현상재는 오랫동안 디자이너들과 주로 소통하는 회사였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러 있었죠. 하지만 디자인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B2C 분야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비즈니스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관점과 철학을 전할 수 없을지 고민한 결과가 바로 스페이스 비이였어요. 우리의 콘텐츠를 우리 플랫폼 안에서 소화해보자는 것이죠. 크리에이터들의 등용문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요. 소재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창작자들과 접점이 생겼거든요. ‘사명감’은 너무 거창한 단어이지만, 어쨌든 아직 이름이 낯선 수많은 한국 작가들이 알려지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이번 밀라노 전시도 비슷한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스페이스 비이를 연 배경은 시대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군요.
맞습니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내 손으로 연출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읽었고 이들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를 만든 것입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상품을 소구하기보다 메타포적 방식을 취했어요. 따지고 보면 영업력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노골적이기보다 은유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랐죠. 그때도 지금도 저는 시대를 읽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윤현상재가 B2B에만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장치로 전시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활동을 시작할 때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김경수 대표와 저 사이에 이견은 없었습니다. 별도의 기획팀을 꾸렸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잡음도 없었죠. 다만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우리가 제시하는 방향성을 이해한 건 아니었어요. 극렬한 반대는 없었지만 외부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아하다는 시선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 자체로 매출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적잖이 드는 만큼 추구하는 방향성을 처음부터 모두가 온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외부의 피드백을 받으며 자연스레 설득되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의 주 거래 업체 중에 이탈리아의 타일 회사가 있는데 어느 날 우리 무역부 직원에게 ‘윤현상재의 진정성은 정말 최고’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 말을 들은 직원의 자긍심이 얼마나 높아졌을까요. 이런 게 바로 브랜딩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마켓과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했어요. 기획할 때 회사의 정체성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나요?
그럼요. 우리가 기획하는 전시의 기승전결에는 언제나 윤현상재가 있습니다. 윤현상재는 ‘Arts and Architecture are inspired by materials’, 즉 예술과 건축이 물성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슬로건이 있어요. 전시도 언제나 물성과 재료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죠. 그저 아름다운 오브제를 가져다 놓는 전시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타일을 수입하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재료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타일이 아니라도 말이죠. 타일은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작은 요소일 뿐입니다. 거기서 사유가 멈추면 안 되죠. 공간을 물성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시야도 확장될 것입니다. 디자이너에게 재료를 공급하는 위치에 있지만 우리 스스로 디자이너라는 마음가짐으로 감도를 잃지 않고 리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고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우리도 물성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게 되고 그것이 곧 회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재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고 싶어요. CMF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근원적인 것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조형이 더해지기 전 단계에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것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데이터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도처에 창작의 레시피가 깔려 있죠. 그게 무엇이든 비슷한 것을 찾고 만드는 게 쉬워지다 보니 그 이전 단계, 다시 말해 원소재가 창작자에게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유사함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면서 본질에 대한 탐구도 고도화된 것이죠. 더 나아가 이건 행복에 대한 관점과도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지나치게 풍족한 사회가 되다 보니 결핍이 충족되었을 때 오는 기쁨도 느낄 수 없게 됐어요. 다시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고 그것이 본질과 근원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저는 윤현상재의 행보를 보면서 알칸타라 같은 브랜드가 떠올랐어요. 소재를 근간에 두고 다양한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협업하잖아요. 혹시 귀감이 된 브랜드가 있을까요?
정확히 부합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의 패브릭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에서 영감을 얻곤 합니다. 패브릭 하나에만주목해 장인 정신으로 자신만의 감도를 지키죠. 개인적으로 열렬한 팬입니다. 윤현상재가 가야 할 길도 결국 비슷한 것 같아요. 윤현상재는 폭발적으로 스케일업을 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규모를 키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는데 그건 저희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 체인이 되면서 맛이 변질되면 속상하잖아요.(웃음) 윤현상재도 비슷합니다. 휴먼 스케일이 살아 있는 브랜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미나 페르호넨처럼 자기다움을 잘 지키면서 말이죠.
터닝 포인트 내지 퀀텀 점프를 하는 계기가 되었던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쓰라린 기억이자 많은 인사이트를 얻기도 한 윤현상재의 플리마켓 ‘보물창고’가 생각나요. 제가 예전에 미국에 머물면서 개라지 세일을 재미있게 지켜봤어요. 한국에 이런 문화를 전파해보고자 본사에서 지인들과 조촐하게 마켓을 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여기서 용기를 얻어 경기도 광주의 윤현상재 물류창고에서 2017년 첫 번째 보물창고를 열었습니다. 레어로우, 한아조 등 당시만 해도 규모가 크지 않던 몇몇 브랜드와 함께 행사를 만들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파가 몰린 것입니다. 창고 일대 교통이 마비되면서 민원이 쏟아졌고, 결국 광주시청에서 행사 중단 명령까지 떨어졌어요. 헛걸음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댓글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는데 저녁 즈음 확인해보니 댓글이 200개가 넘게 달렸더군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다 났어요. 그래도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진정 어린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다른 건 책임지기 어렵지만 최소한 윤현상재 타일을 구매하려고 걸음했던 분들에 한해서는 플리마켓과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겠다고 고지했고요. 모든 댓글에 제가 일일이 대댓글로 사과했습니다. 밤 10시쯤부터 댓글을 달기 시작했는데 마치고 나니 아침 7시더군요. 처음에는 언팔을 하겠다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나니 반응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오히려 그때부터는 팔로워가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군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들의 짜증과 분노가 너무 이해됐거든요. 그 일을 계기로 무슨 일을 하든 겸손을 장착하게 됐습니다.(웃음) 자기 공간을 고치고 싶은 욕구가 이렇게나 컸다는 인사이트도 얻었고요.
플리마켓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시스템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기부 정책은 김경수 대표의 의지가 컸습니다. 윤현상재가 물론 경제적 여유가 많은 회사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있다면 나눌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굳이 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기부금을 전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기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꾸준히 캠페인처럼 전달하고 싶습니다.
자체 행사 외에도 다양한 외부 전시의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 판교와 협업해 연 보물창고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첫 번째 보물창고의 시행착오가 상황을 곱씹는 계기가 됐습니다. 좁게는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았고, 넓게는 리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욕구를 읽을 수 있었죠. 세 번째 보물창고를 진행할 즈음 현대백화점 콘텐츠 개발팀에서 저를 찾아왔어요.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소통에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백화점에서 팝업이나 플리마켓을 여는 게 일반화되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백화점 경영진이 직접 와서 둘러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장소에서 여는 대중적인 행사이다 보니 그 이후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어요. 저는 페어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던져야 하죠. 인테리어디자인코리아에서 선보인 ‘머티리얼 큐브Material Cube’가 대표적입니다. 재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이후 공예트렌드페어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전시로 이어졌다고 봐요.
건물의 수명을 기획의 일부로 삼다
기획자 최주연의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요?
디테일에 강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핵심이 되는 5%가 만족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려고 해요. 절대다수의 관람객은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 섬세하게 공들인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거든요. 그 디테일에 공력의 90%는 쓰는 것 같아요. 전시의 감동은 결국 그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믿고요.
EXP도 오픈 당시 꽤 화제가 됐어요. 건물의 수명이 기획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신했습니다.
솔직히 김경수 대표가 건물을 매입하려고 할 때 저는 반대했어요. 몸집을 불리는 데 아무래도 두려움이 있나 봅니다.(웃음) 아무튼 경기가 좋지 않고 금리가 오르면서 너무 급하게 일을 추진하지 말자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래 계획보다 1년가량 여유가 생겼는데 이 시간을 우리가 스터디하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어요. 저희에게 주어진 2년 남짓의 시간을 8개 시즌으로 나누고 각 시즌에 맞는 기획을 해보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첫 전시 주제가 ‘로컬리티’였어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저는 약 10년째 건축대학 겸임 교수로 출강 중이고, 전시도 건축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장소라는 것은 결국 터의 역사이자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든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죠. 그런 관점에서 논현동이라는 지역을 바라봤어요. 강북에 비해 역사가 짧고 계획도시 특유의 밋밋함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활기와 정체성이 있던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마저도 상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수동, 연남동 등이 재조명되면서 일순 강남이 문화적으로 비주류가 되어버린 것이죠. 강남, 그중에서도 논현동이 활기를 되찾으려면 지역의 성격을 가시화하고 노출할 필요가 있었어요. 하이엔드와 럭셔리 브랜드만 살아 있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기조는 지금도 유효해요. 참고로 다음 시즌 기획에는 논현동 주민들과 함께하는 탁구 대회도 포함되어 있답니다.(웃음)
지난 1월 사장으로 승진했잖아요. 업역도 책임도 커졌을 것 같아요.
사실 창업자인 김경수 대표가 예전부터 공동 대표 자리를 제안했는데 선뜻 내키지 않았어요. 그만큼 부담이 커서 몇 차례 고사했죠. 사실 공동 대표가 되기 전부터 많은 것을 함께 결정했기 때문에 대표가 되었다고 해서 제 일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임감은 엄청나게무거워졌죠. 윤현상재의 행보에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밀라노 전시가 끝나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밀라노 전시 이후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 윤현상재는 무모한 도전은 꺼리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좀 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보려고요. 실패하더라도 자꾸 두드려보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니까. 윤현상재가 다루는 타일 중에는 하이엔드 제품이 많지만 거기에만 편중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좀 더스펙트럼을 넓히고 그 스펙트럼을 명확히 나눠보려고 해요. 현재 인테리어 자재 시장에서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양극화입니다. 프리미엄 타일과 저가 타일 사이, 중간 단계에 있는 자재의 입지가 자꾸 좁아져요. 이런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윤현상재가 힘을 쏟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시를 매개로 창작자들과 협업하는 것을 넘어 좀 더 적극적으로 함께 상품도 개발해보고 싶어요. 이탈리아에 무티나라는 타일 브랜드가 있어요. 보통 ‘타일은 자연의 카피캣’이라고 할 만큼 자연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티나는 다양한 창작자들과 협업해 좀 더 아티스틱한 타일을 생산해요. 타일 자체를 인테리어 오브제로 접근하는 것이죠. 윤현상재가 그만큼 적극적으로 생산에 개입할 수는 없겠지만 디자이너들과 접점을 찾아 오브제 같은 마감재 정도는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