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 SPEED CONTROL WATCH
플라스틱 프로덕트와 Apow Studio가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의 시계
시간을 ‘읽는 행위’와 ‘인식하는 방식’은 같은 뜻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을 체감하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PLASTIC PRODUCT가 이번에 선보인 SPEED CONTROL WATCH는 그 간극을 드러내고, 사용자가 시간을 다시 받아들이는 방식을 실험하는 오브제에 가깝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에서 시간은 효율을 측정하는 단위가 되었다. 알림과 디지털 화면, 초 단위로 흘러가는 UI에 익숙해진 우리는 시간을 확인하는 데 단 1초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을 ‘읽는 행위’와 ‘인식하는 방식’은 같은 뜻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을 체감하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PLASTIC PRODUCT가 이번에 선보인 SPEED CONTROL WATCH는 그 간극을 드러내고, 사용자가 시간을 다시 받아들이는 방식을 실험하는 오브제에 가깝다.

PLASTIC PRODUCT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브랜드다. 브랜드명처럼 친숙하고 가벼운 태도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는 ‘왜 이 물건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플라스틱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되, 사용성을 넘어 관점과 태도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의류를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제품군을 한정하지 않으며, 익숙한 사물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시간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개념을 다시 경험하게 하기 위해, PLASTIC PRODUCT는 시계를 기능이 아닌 사고의 계기로 바라보고 디자인을 확장했다.


이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PLASTIC PRODUCT는 금속 구조와 정밀한 기능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APOW Studio와 협업했다. 이번 모델은 PLASTIC PRODUCT와 APOW Studio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APOW는 금속 가공과 제작을 맡았으며, 두 팀은 서로의 방식과 감각을 공유하며 제품을 완성했다.


SPEED CONTROL WATCH의 디자인은 처음 보면 어떻게 시간을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다이얼에는 두 개의 시간이 겹쳐 있으며, 시침과 분침은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 ‘–’, ‘←’ 기호에서 출발한 조형 언어로 구성됐고, 바늘은 하루 동안 겹치고 멀어지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이때 사용자는 익숙한 방법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 즉시 읽을 수 없으며, 약 60초간 바늘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그 후 어느 바늘이 움직였는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기반으로 시간을 추론하게 된다. 여기서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적 정보가 된다. 바늘과 바늘 사이의 거리, 주변의 빛, 현재 상황을 함께 인지하면서 ‘지금’이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물론 편하지 않은 방식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결핍이 아니라 의도다. 시간을 정확하게, 빠르게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계는 효율을 줄이는 대신, 사용자가 시간 앞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의 속도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 쉽게 말해, 이 제품은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제품이다.

소재에서도 이러한 메세지가 드러난다. 시계 외부 하우징 일부와 스트랩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다. 메탈이라는 소재가 가진 묵직함과 물성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내부에는 일반적인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했지만, 그 역할은 단순한 정확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움직임과 사용자의 인지가 서로 만나는 방식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서 존재한다.

이번 발매에서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논픽션홈의 설치 작품 ‘설치 개방 2025, <SPEED CONTROL>’이 함께 구성되며, 관람객은 기울어진 구조 위를 직접 걷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 속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장치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이어지는 통로 끝에는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들이 설치되어 있고, 관람객은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지금 몇 시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SPEED CONTROL WATCH는 시간을 확인하는 행위 대신 시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같은 하루라도 빠르게 흘러갈 수도, 천천히 흐를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의 속도는 시계가 아니라 ‘인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시계는 그 사실을 조금은 느린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