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떻게 한국 현대미술을 바꿔놓았을까?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세 번째 개관특별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전관을 사용하는 기획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사진이라는 매체가 새로운 시선과 실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전관을 사용하는 기획전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사진이라는 매체가 새로운 시선과 실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36명의 작가가 참여해 300여 점의 작품과 자료가 공개되었고, 그중에는 미발표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사진사와 현대미술사를 연결해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 및 작가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이 변화하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쟁 이후 새 예술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여러 실험적 그룹이 등장했고, 회화 중심이던 미술의 흐름은 점차 다양한 매체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진은 1960년대 실험미술을 계기로 기록 용도로만 쓰이던 좁은 의미에서 개념과 행위를 탐구하는 핵심 매체로 자리 잡았다. 작품을 설명하는 보조 이미지가 아니라, 예술적 사고를 펼치는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1전시실은 바로 이 시기, 사진이라는 매체가 예술 실험의 언어로 자리 잡아가던 흐름을 보여준다. 퍼포먼스의 흔적을 사진으로 전환하거나 사물을 재배치해 ‘사유의 장면’을 만들던 이승택을 시작으로, 포토몽타주와 포토세리그래피로 사진의 형식을 확장한 김구림의 실험이 이어진다. 풍경 사진을 석판화로 옮겨 자연의 구조를 탐구한 김차섭, 자화상과 대중매체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퍼포먼스 사진 위에 드로잉을 더해 개념적 작업을 전개한 곽덕준 역시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퍼포먼스의 기록을 다시 개념적 이미지로 전환하며 행위와 사진의 관계를 탐구한 이규철의 작업도 이 흐름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사진은 기록 중심의 매체를 넘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수직 벽 없이 구성된 전시 공간은 다섯 작가의 실험적 시도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2전시실에서는 1970~80년대 개념미술이 사진과 만나 확장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위에 실크스크린을 중첩하거나 탈색을 활용해 이미지를 다시 구성한 김용철, 인화 과정을 개념적으로 전환하며 사고의 구조를 시각화한 성능경 등 개념미술 그룹 <S.T.>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퍼포먼스 기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던 박현기, 포토세리그래프를 회화적 요소와 결합해 사진의 표현 영역을 넓힌 이강소 등 《대구현대미술제》의 중심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이 시기의 실험적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들은 사진이 단순한 보조 수단에서 시대의 현실과 작가의 사유를 드러내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전시실로 넘어오면 1980년대 이후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각, 경험, 기억을 탐구하는 예술적 매체로 확장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퍼포먼스와 사진을 결합해 ‘보는 행위’ 자체를 실험한 이교준과 문범, 퍼포먼스 사진 위에 채색을 더해 사진과 회화를 넘나드는 포토픽처를 선보인 이승택, 그리고 사진 이미지를 조각적으로 제시해 공간적 인식을 확장한 이규철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세리그래피와 전사 이미지를 겹치며 입체적 시각 효과를 만든 지석철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시대 작가들의 실험을 통해 사진이 감각과 인식을 해석하는 새로운 표현 매체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4전시실에서는 1980년대 사회비판적 미술 속에서 사진이 현실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중요한 매체로 작동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신문과 광고 이미지를 차용해 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드러낸 김건희, 사진 이미지를 판화로 재해석한 김인순, 대중매체 이미지를 기반으로 리프로덕티브 오리지널 형식의 작업을 전개한 박불똥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동일한 자료사진을 회화적으로 변주하며 역사적 장면을 새롭게 구성한 손장섭과 김정헌, 기록성과 상징성을 실험적으로 확장한 정동석 등 당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사진이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시대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강력한 언어로 자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네 개의 전시실을 통해 사진이 어떻게 개념 실험과 퍼포먼스, 탐구, 그리고 사회적 기록과 비판을 가능하게 했는지 보여준다. 기록에서 출발한 사진은 예술가들에게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이자 새로운 표현의 장이 되었고, 시대를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해 왔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이 미술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2026년 3월 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작품 수가 많은 만큼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팅 앱을 활용해 감상해 보는 것도 좋다. 전시 종료일까지 매일 11시, 13시, 15시에 도슨트 해설도 진행되니,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듣고 싶다면 이 시간을 활용해 관람하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