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타이완 디자인 위크 리뷰

3회를 맞이한 타이완 디자인 위크는 디자인의 미래를 조명하는 데 주력한 모습이었다. ‘디자인 넥스트Design Next’라는 주제에는 이러한 고민이 응축되어 있었다. 쑹산 문화창의공원에선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 디자인의 가능성과 역할을 탐구하는 학술 대회와 콘퍼런스, 전시, 이벤트 등을 일관성 있게 전개했다.

제3회 타이완 디자인 위크 리뷰

디자인의 미래에 집중한 타이완 디자인 위크

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국제디자인학회연합(International Association of Societies of Design Research, 이하 IASDR)과의 긴밀한 협업이다. 행사 기간에는 IASDR과 공동 개최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IASDR은 전 세계 디자인 연구 학회 간의 협력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비정부 단체인데 협회 설립 첫해인 2005년, 타이완에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한 이력이 있다. 그렇기에 창립 20주년을 맞아 타이완에서 다시 콘퍼런스를 진행한다는 것은 IASDR과 타이완 디자인 리서치 인스티튜트(이하 TDRI) 모두에 뜻깊을 수밖에 없었다. 12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총 47개국의 497개 대학과 85개 기업의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모여 12개의 세부 주제 하에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매일 오전에 열린 기조연설에서는 공공 서비스, 첨단 기술 등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을 소개하며 디자인 연구자들의 좌담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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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을 맡은 스테판 벤스베인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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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룽후이량 타이완 국립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부교수, 쉬쿠완 첸ShiKuan Chen 콤팔 일렉트로닉스 CDO, 스테판 벤스베인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 피터 로이드 IASDR 회장, 샤이난 리우Shyhnan Liou TDRI 부대표.

이 중 눈길을 끈 것은 ‘지능형 미학(Aesthetics of Intelligence)’을 주제로 한 스테판 벤스베인(Stephan Wensveen) 에인트호번 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의 강연이었다. 그는 첨단 기술의 일상화에 따라 미학의 정의와 기준 또한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터 로이드(Peter Lloyd) IASDR 회장, 룽후이량(Rung-Hui Liang) 타이완 국립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부교수 등도 이날 패널 토론에 나서 향후 미학의 연구 방향과 전망을 논의했다. 이 외에도 3박 4일간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워크숍, 토론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연구 교류의 장이 펼쳐졌다. IASDR 국제 콘퍼런스에서 디자인의 미래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타이완 디자인 위크는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올해의 주제전이 대표적이었다. 타이완의 건축 스튜디오 ‘아키케이크(Arichcake)’는 큐레이션과 전시 디자인을 맡아 주제를 선명하게 시각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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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타이완 디자인 위크 주제전.

전시장을 간결한 서고 형태로 구성했으며 중앙 통로 바닥에는 윈도 95, 다이슨 청소기,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QR 코드 등 디자인사에서 주목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의 이미지를 부착한 조형물을 배치해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 디자인 사례들이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양옆으로는 책장을 연상시키는 철제 전시대를 설치해 22개 팀의 디자인 프로젝트 27개를 소개하는 텍스트·이미지·영상·모형 등을 배치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큐레이션한 것으로, 관람객에게 디자인의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전시장 전반의 컬러는 블랙과 그레이, 실버로 통일하고 별도의 그래픽이나 화려한 컬러 플레이는 지양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오직 전시 내용에만 몰입하며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외에 2025 타이완 디자인 위크 기간에는 디자인 산업 포럼, 타이완-체코 3×3 디자이너 토크 등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그중 타이완-체코 3×3 디자이너 토크는 이번에 파트너 국가로 선정된 체코 디자이너들이 타이완 디자이너들과 다양한 디자인 의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다학제 디자인, 지속 가능성, 다양성 등 ‘디자인 넥스트’에 걸맞은 풍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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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타이완 디자인 위크 주제전에서 소개한 신베이시 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실 리디자인 프로젝트. TDRI와 타이완의 317 스튜디오가 협업해 기존 교실을 캠핑과 야외 활동 교육이 가능하도록 새롭게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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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체코 3×3 디자이너 토크.

‘문제 해결’이 중심이 된 2025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2025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에서는 81명의 심사위원단이 총 28개국의 출품작 가운데 429개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이 중 베스트상 후보에 오른 90개 프로젝트 가운데 22개에 베스트상을, 3개에는 특별상을 수여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CEO는 “많은 최종 후보작이 미적 감각과 혁신성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뛰어났다”고 전했는데, 실제로 수상작 중에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실천적 사례들이 있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났다는 점 역시 중요한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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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부터 오는 2026년 4월 26일까지 타이완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2025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전시.

제품 디자인 부문에서 베스트상을 수상한 독일의 ‘소넨글라스 소모 태양광 조명 시스템(Sonnenglas® SOMO Solar Lighting System)’은 전기 사용이 어려운 일부 아프리카 지역의 주민을 위해 만든 제품으로,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싱가포르의 조경 디자인 스튜디오, DP 그린의 ‘풍골 그린(Punggol Green)’도 유사한 케이스였다. 고가 철도 아래 버려진 부지를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이 프로젝트는 5만 주의 식물을 식재하는 과정에서 정부 및 지역사회와 무려 8년간 소통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베스트상을 거머쥐었다. 공공성이나 친환경, 포용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근본적인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외에도 공간 디자인, 지역사회와의 협업 방안, 운영 모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홈워크 순환 리빙 프로젝트(HomeWork Circular Living Project)’, 노동력과 자재 낭비를 최소화하는 모듈식 패키지 시스템 ‘아이언 40’ 등 고도의 디자인 싱킹이 돋보이는 프로젝트들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번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의 베스트상과 특별상은 타이완, 중국, 홍콩, 일본, 미국, 독일, 싱가포르, 폴란드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기업이 차지했다. 이 중 타이완 14팀, 중국 4팀, 일본 2팀으로, 국가 구성이 2024년 수상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정한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중화권과 일본 중심으로 고착화된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 남겨진 숙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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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DP 그린의 ‘풍골 그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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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쓰레기 수거 일정을 알려주는 서비스 ‘깨끗한 도시 그단스크(CMG)’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Interview. 치이창 타이완 디자인 리서치 인스티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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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창Chi-Yi Chang 타이완 디자인 리서치 인스티튜트 대표

“타이완 디자인 위크가 단순한 디자인 쇼케이스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대화를 나누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타이완 디자인 위크와 다른 글로벌 디자인 행사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비교적 신생 플랫폼으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디자이너, 연구자, 공공기관, 산업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디자인을 사회적·기술적 변화를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할 방법을 논의한다. 다학제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접근 방식이 타이완 디자인 위크의 차별점이라 생각한다. IASDR 국제 콘퍼런스를 유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학술적인 논의를 연구자 커뮤니티 밖의 더 넓은 디자인 커뮤니티와 대중에게 연결하고자 한 것이다. 디자인 이론과 실무가 상호작용하는 일종의 ‘공유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궁극적으로 타이완 디자인 위크를 글로벌 디자인 신의 교류의 촉매제이자 연구·크리에이티브·사회 혁신을 연결하는 다리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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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SDR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기조연설 외에도 소규모 세미나와 워크숍들이 다채롭게 열렸다.
파트너 국가가 2년 연속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TDRI는 오랫동안 유럽, 미국, 동남아시아의 디자인 기관들과 협력했다. 파트너 국가 선정은 그동안 지속해온 협력의 깊이, 장기적인 파트너십, 앞으로의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특정 문화권이나 지역을 지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동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홍보하기 위해 디자인과 예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체코는 최근 몇 년간 타이완과 디자인 부문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2023년 타이베이에 체코 디자인 센터를 설립했으며, 지난 8월에는 타이완 디자인 박물관에서 체코의 그래픽 디자인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었다. TDRI와 체코 디자인 기관 사이의 깊은 관계가 올해 파트너 국가로 선정한 배경이다.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의 수상 국가들이 매년 다채로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중화권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가 시작된 해가 1981년이고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로 전환한 것이 2014년이다. 그러니 상당수의 수상작이 중화권에서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과 미국의 출품작 수가 늘고 있으며, 동아시아 이외의 아시아권으로 참여 국가가 확장되고 있다. 이에 엄격한 평가 기준을 유지하고 다양한 국가의 심사위원을 초빙하며,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출품작을 장려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는 아시아 디자인 신과 글로벌 디자인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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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 베스트상을 수상한 CMG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담당한 폴란드의 토푸 스튜디오TOFU Studio가 시상식에 참석했다.
타이완과 구별되는 한국 디자인 신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나?

TDRI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을 비롯해 서울, 광주, 부산의 디자인 기관들과 오랫동안 협력했다. 덕분에 한국 디자인 신만의 특징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한국 디자이너들은 드넓은 디자인 생태계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디자인이 브랜드·산업·도시·국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또한 공공장소의 디스플레이와 키오스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일상생활에서도 첨단 기술과 디자인의 접목이 잘 드러난다. 디자인을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디자인 신에 타이완 디자인 위크가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나?

타이완 디자인 위크가 단순한 디자인 쇼케이스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대화를 나누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국경을 넘어선 교류와 장기적인 협업을 통해 디자인의 방향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설정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이완 디자인 위크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디자인이 해결할 수 있는 시급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기회와 영감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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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1호(2026.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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