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초보자의 마음으로, 장인성
25년차 마케터가 팝업 오피스를 연 이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레어로우 하우스 2층에 자리한 ‘말랑한 오피스’에서 장인성이 말했다. 그에게 타인과의 대화는 자신의 내면 속 숨은 생각을 빠르게 끄집어내는 촉매제와 같다. 배달의민족 CBO로 일하던 그가 퇴사 직후 “하고 싶고 의미 있는 일”을 고민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오피스를 열었다. 장인성의 지금과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다.
1999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장인성은 올해 처음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2013년 ‘배달의민족’을 만드는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해 지난 3월까지 최고 브랜드 관리자(CBO: Chief Brand Officer)로 일했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고 자신의 일을 매우 사랑하는 그에게 요즘은 낯선 시기다.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그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지금 새로운 파도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철제로 가득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랑한 오피스’에서 그와 팝업 오피스를 연 이유와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나를 드러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속이 없는 삶
퇴사하고 조금 쉬셨나요? 〈사는 이유〉에 “시간 효율 같은 거 걱정하지 않고 며칠 내내 책만 읽다가 또 며칠은 내내 넷플릭스만 보고 싶다”고도 하셨는데,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실제로 퇴사 전에 조금 쉬게 되잖아요. 공식적인 회사 생활은 3월 말로 마무리했지만 그 전에 몇 달 쉬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어렵더군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좀 헤맸죠.
의외인데요. 시간을 굉장히 갖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는 〈어느 시간 강박증 환자의 고백〉이라는 짧은 픽션을 쓰기도 했다.)
바쁜 사람들 특징이 15분만 있어도 뭔가 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이 되게 소중하고요. 나는 한두 시간만 있어도 잘 쓸 수 있어, 했는데 막상 하루가 통째로 주어지니 전혀 그러질 못했어요. 릴스 보다가 하루가 끝나기도 하고요. 시간을 무절제하게 쓰는 게 결코 즐겁지 않았어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갑자기 쏟아진 시간에 허우적대다 차차 채워가게 됐죠. 그렇게 터득한 건, 건강한 리추얼을 확보하고 그 외의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완성된 장인성의 리추얼에서 인상적인 루틴은 아침 식사 준비다.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내 샐러드를 만들고, 아스파라거스와 버섯, 달걀을 굽는 30분의 식사 준비 시간이 그에겐 놀이이면서 명상이라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1시간 반의 아침 식사, 1시간의 영어 공부, 30분에서 1시간의 운동, 1시간의 글 쓰기가 매일 그의 하루를 채운다.
인성 님도 시행착오를 겪는군요.
그럼요. 아무것도 나를 계획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잘 쓰는 데에는 요령과 힘이 필요해요.
말랑한 오피스의 면면
인성 님은 물건 하나를 사도 이게 왜 필요한지 오래 고찰하시잖아요. 퇴사 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차곡차곡 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말랑한 오피스’도 그 계획의 일환일 거로 생각했고요. 무계획 안에서 이 팝업 오피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제가 방향만 있고 세부 계획은 잘 없어요. 방향이라도 분명해서 다행인데요(웃음).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서 무슨 일을 할까 생각했어요. 해야 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러면 나는 뭘 하고 싶고, 어떤 것에 의미 있어 할까… 대충은 알지만 회사 일을 하며 오랫동안 덮어놨던 고민이죠. 내가 내 일을 다시 선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글도 많이 썼는데, 혼자 글 쓰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가끔 사람들과 만나며 대화 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너무 좋았어요. 상대가 저한테 알려준 것이 아니라, 대화 중에 제 안에서 나오는 것이요. 대화를 통하지 않았으면 내 속에 있는 줄도 몰랐을 생각들이 좋아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다녀야겠다 싶었죠. 그걸 듣고 제 책을 냈던 북스톤 김은경 대표님이 “팝업 오피스 같은 거 한번 해보면 어때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팝업 오피스? 재밌겠다. 그 다섯 글자에 확 꽂혔어요.
‘팝업 오피스’라는 아이디어가 성수동 레어로우 하우스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궁금해요.
일단 성수동이면 놀러 오라고 하기도 좋고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우연히 마주칠 기회도 많을 것 같았어요. ‘성수동에 몇 달간 오피스를 구하자!’가 됐죠. 그다음 가구가 있어야 하잖아요. ‘레어로우’에서 빌리면 어떨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레어로우 하우스 2층이 있는 거죠. 몇 번 와봤거든요. 레어로우 하우스 2층을 레어로우 제품들과 함께 장인성의 오피스로 꾸며 보여주면 괜찮지 않을까? 바로 레어로우 대표님한테 연락을 했고, 그게 ‘말랑한 오피스’가 되었어요.
성수동에 위치한 2층 주택을 개조한 레어로우 하우스는 철제 가구를 시작으로 소파와 타월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다루는 레어로우(rareraw)가 만든 공간이다. 레어로우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며 2층은 그들이 선정한 ‘뮤즈’와 함께 꾸민다. 장인성은 레어로우 하우스의 다섯 번째 뮤즈. 브랜딩 전문가이자 두 권의 책(〈마케터의 일〉, 〈사는 이유〉)을 낸 작가, 달리기를 즐기는 러너인 그는 이곳을 사람들과 마주 앉아 고민을 나누며 스스로 고립돼 책을 읽고 달리는 곳으로 완성했다.
레어로우의 공간에 오피스를 만들며 염두에 둔 게 있다면.
레어로우 하우스 2층에 오피스를 얻으며 생각한 건 크게 2가지예요. 첫째 나를 믿고 공간을 흔쾌히 내어준 레어로우 하우스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둘째 내가 원했던 오피스를 어떻게 구현할까. 레어로우 하우스가 저에게 공간을 빌려준 보람이 있으려면 바이럴이 될만한 ‘거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원했던 건 성수동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인성상담소’가 첫 프로그램으로 기획됐죠. 또 매달 초청 행사를 열려고 해요. 같이 모여서 달리기를 하거나 제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하면서요.
‘인성상담소’는 일주일에 4번 사전 신청으로 진행되는 말랑한 오피스의 고정 프로그램이다. 사실 상담소는 장인성이 우아한형제들에 근무하던 초창기부터 해오던 것.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인데, 팀원들이 프로젝트를 하다가 막히면 ‘인성 님 이거 어떡해요?’ 하면서 저에게 왔어요. 그럼 제가 이렇게 저렇게 얘기해주니까 상담소 같았나 봐요. 팀원하고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상담소 열렸다’하면서 간판도 만들어 올려두더라고요.” 일의 방향을 제시하고 팀원들이 실제 일을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게 지원해주며 그러다 막히면 편하게 ‘상담’하러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는 업무였을 것이다. 이제는 이곳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나누며 그 또한 자신의 내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끌어낸다.
‘상담소’라는 단어가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분들이 상담소를 다녀가셨나요?
제가 사용하는 브랜드의 매니저님도 오셨고, 자동차 폐에어백을 활용한 브랜드를 이제 막 론칭 하려는 분도 오셨어요. 팀원과 함께 일하는 창작자로서 조직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 가신 분도 있고요. 그리고 인성상담소는 아니지만 오피스를 개업하면 아는 분들도 오시잖아요. 그렇게 ‘인성 님 뵙고 싶습니다’ 하면서 첫 주에 오신 분도 많았는데, 그중 레스토랑 사업으로 시작해 사업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분이 계셨어요. 진취적으로 사업을 구상하며 공부하고 배우는 모임을 만드는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동안 인성 님과는 접점이 없던 분들이네요?
그러니까요. ‘오피스에서 사람들을 만나요’ 하니까 정말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을 만나잖아요. 이렇게 몰랐던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저는 너무 좋아요.
공간도 많이 신경 쓴 것 같아요.
이 오피스의 부제가 Run, Drink, Read예요. 어릴 때는 하나에 지독하게 몰입하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여러 활동 사이의 균형,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세 단어 안에 인풋과 아웃풋, 소비와 생산, 지적이고 감각적인 유희와 몸을 단련하는 즐거움, 방탕한 소진과 수련을 통한 구도가 균형 있게 들어가 있고, 그것이 공간으로도 표현되었어요.
장인성이 말하는 Read에는 책과 미술 작품을 읽는 것은 물론, 대화를 통해 여러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도 포함되며 Run은 자신을 단련하는 일과 좀 더 긍정적이며 밝고 선한 것들을 모음에 가깝다. Drink는 조금 더 복합적이다. “취하는 Drink이기도 하지만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Drink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에서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잖아요.”
러닝 룸이 ‘달리는 온실’이죠? 그동안 레어로우 하우스의 온실은 릴렉스한 공간이었는데, 인성 님을 뮤즈로 만나 가장 액티브한 공간이 된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추운 날도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여기에 구현했어요. 실제 달릴 수는 없지만 지적이고 감각적인 것 말고, 몸의 세계가 또 이만큼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죠. 한쪽에 책과 마실 음료가 있어 앞서 말한 Run, Drink, Read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기도 해요.
인성 님 실제 작업실의 ‘책감옥’을 재현한 서재 ‘책감옥’도 있어요. 말랑한 오피스의 책감옥에 있는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궁금해요.
제가 추천한 책과 저와 함께 일했던 팀원들의 책, 유유출판사가 큐레이션한 책들이 있어요. 유유출판사는 자기 계발, 성장, 글쓰기 등을 다루는 출판사라 저와 잘 맞아요. 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와 소설, 일, 인문과 건축 카테고리로 구성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따로 있는 건,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와 소설 모두 좋아해요.
‘말랑한 오피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여기 가구가 다 철제 가구잖아요. 단순하게 철제 가구로 만든 오피스를 ‘말랑한’ 오피스라고 이름 붙이면 그 대비가 재밌겠다 싶었죠. 사람들은 철이 딱딱하고 날카로우며 차갑다고 생각하는데, 이 철로 만든 오피스에서 저는 무엇이든 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제가 알 수 없던 곳으로 저를 데려다 주기도 할 거예요.
인성 님은 늘 경험으로 얘기해주시는 분이잖아요. 그동안 말랑한 오피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롭게 배운 게 있다면.
어느 때든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겠지만, 유독 변화가 큰 시절이잖아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누구는 변화를 외면하고, 누구는 두려워하고, 누구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틈을 찾는 것 같아요. 이 틈이 지금은 되게 작아 보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지만 앞으로 커질 거라고 믿으며 도전하고 힘겹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늘 빠르게 성장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그런 변화의 틈을 잡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저도 늘 배우고 틈을 발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안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말랑한 오피스의 이후의 일들이 궁금해요. 역시 아직은 미지수겠죠?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재밌고 보람차게 살고 싶은 사람이고, 그러기 위해서 일이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 재미와 사회관계 속에서의 의미, 둘 다 가질 수 있을 만한 그런 일을 찾고 싶고,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유연하여 단단한 사람
“초보가 된다는 것은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다.” 〈사는 이유〉에서 참 좋아하는 문장인데요. 다시 기꺼이 초보가 되셨어요. 어떤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셨나요?
충분히 나를 쓰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서서히 가지게 됐어요. 일을 하면서 내가 나를 충분히 쓴다는 것을 느껴봤으니 그렇지 못한 것도 알 수 있죠. 밤 12시까지 일하면서도 하하하 웃으며 퇴근하고 아침에 또 일하는 게 너무 재밌던 때도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동료들과 일하는 방법도 정말 많이 깨달았고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그런데 회사와 브랜드와의 관계도 시즌마다 달라지잖아요. 한창 배달의민족이 브랜드로서 성장하는 때가 있었는가 하면, 지금 배달의민족은 브랜드로 성장하는 시기는 아니거든요. 그런 여러 환경, 그리고 내가 나를 이 자리에서 충분히 굴릴 수 있는 시기가 이제 좀 지났구나 생각되면서 아쉬웠죠.
그렇지만 그만두기까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좋은 회사이고 좋은 동료들이니까 그만두자 마음먹기 쉽지 않았죠. 그런데 동료들이 좋다고 계속 있을 순 없잖아요. 마음으로는 더 있고 싶었지만 머리로는 아닌 것 같았어요. 여기서 종료해야 다음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 안에 있으면서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무엇을 할지 정해놓지 않은 채 일단 그만두기를 선택했습니다. 퇴사를 하니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일을 벌이게 되네요.
학생 신분을 벗어나 처음으로 어떠한 소속 없이 맞이하는 첫 시기라고요. 요즘에는 인성 님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궁금해요.
일단은 ‘장인성입니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를 모르는 자리에서 제 소개를 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이렇게 큰소리쳐서 오피스를 열어놓으니 저를 아시는 분들이 오시잖아요. 어디 나가서 저를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해야 될 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딱히 고민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인성 님을 설명하는 여러 단어를 적어 두셨잖아요. 거기서 ‘생활탐험가’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해보는 걸 좋아하잖아요. 이것저것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좋아하고요. 혹시 게임해 보셨어요? 게임에서 까맣게 칠해진 맵(map)을 지우면서 알아가잖아요. 세상에 대한 제 이미지가 그래요. 역사를 공부하고 과학을 공부하고 심리를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의 검은 영역들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걸 느껴요.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들이 너무 좋고, 이것이 요즘의 탐험가가 아닐까 해요. 과거 탐험가가 지리적으로 사람들이 닿지 못한 곳을 찾아갔다면, 저는 생활 속 모르는 분야와 사람들을 만나며 탐험하는 거죠. 그게 저에게 일하는 힘과 재료가 되기도 하고요. 앞으로 인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일들을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탐험 자체를 즐기며 에너지를 얻기에 ‘생활탐험가’라고 이름 붙여봤어요.
확 와닿는데요! 탐험가의 동력이 호기심이잖아요. 인성 님 책 읽으면서 어떻게 매사에 호기심이 넘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여전히 무언가 궁금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뭔지 궁금해요.
생활탐험가와 호기심… 어떤 게 닭이고 달걀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우선 호기심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대답하면 너무 절망적이잖아요(웃음). 그것만은 아니고, 호기심을 갖고 뭔가 해보니 그게 나한테 선순환으로 작동되는 걸 알아버린 거예요.
예를 들어 호기심을 갖고 뮤직 페스티벌에 갔어요. 집에서 음악 들으면 되는데 피곤하게 굳이 가야 할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그때의 불편함과 피곤함을 포함한 그 경험이 나중에 비슷한 이벤트를 진행할 때 도움이 되는 거예요. 약간의 호기심이면 돼요. 조금 궁금한데? 여기서 조금만 나를 밀어붙여서 가서 보고 경험하면 거기서 얻어지는 게 있어요.
어느 분야든 약간의 호기심은 있을 거예요. 그걸 동기 삼아 뭔가 해보고 선순환이 일어나는 걸 지켜봐요. 물론, 선순환 안 일어날 수도 있어요. 선순환이 일어나려면 무언가 만들어야 해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것도 생산 행위예요. 무언가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면 거기에 나의 호기심을 재료로 쓸 수 있어요.
생산자가 되는 것에서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이 브랜드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잖아요. 브랜드 전문가로서 나를 브랜딩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쭤보고 싶었어요.
지금 사람들이 ‘저 사람 브랜딩이 잘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들은 ‘나 브랜딩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면서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냥 했고, 나중에 ‘브랜딩 잘됐네’라는 말을 듣는 건데요.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장점과 사람들의 궁금증, 필요를 생각하며 연결한 것 같아요. 이건 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내가 가진 것 중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고 보여주는 거죠.
제가 인스타그램에 맛있는 거 먹는 것만 올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싶어 할까요? 그건 아닐 것 같거든요. 배달의민족 브랜딩을 했던 장인성이 올리는 피드라면, 그 사람 일의 자산이 된 것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그러면 여러 일상 중 그 면을 보여주는 거죠. 보여주는 행위가 그것을 하게 하는 동력으로 돌아오기도 할 거고요.
사람들의 필요를 고민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네가 좋아하는 걸 해봐’라는 조언은 많이 듣는데, 어떠한 피드백과 반응 없이 그걸 무한정 할 수는 없잖아요.
브랜딩에서 제일 처음 해야 하는 게 관계 맺을 대상을 결정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브랜드라고 하면 나를 브랜드로 여겨 줄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죠. 인스타그램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내 인스타그램을 봐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많이 봐주면 좋겠다, 그건 없는 거예요. 내 피드를 한 번 보고 바로 팔로우를 누를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지닌 것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면을 고민해야 하죠.
인성 님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브랜딩을 잘하는 사람들로 보여지는데요. 그분들은 원래 자신을 잘 내보이는 사람들이었는지, 아니면 회사에서 그런 활동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던 건지 궁금해요.
두 가지 다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프로젝트를 갖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일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거를 갖고 뭔가를 표현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걸 좋아하나, 안 좋아하나 감각적으로 너무 잘 알게 돼요. 내가 책을 냈는데 사람들이 잘 안 봐요. 그럼 왜 안 보지, 왜 안 팔리지, 고통스럽게 고민한단 말이죠. 이 과정들이 실제 일하는 감각으로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본 사람을 저는 좋아하고, 그런 친구들을 많이 뽑기도 했죠.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문화이기도 했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로 책을 쓸 수도 있고, 이런 것들에 공포심을 갖지 않으니까 서로 응원과 자극이 되고요. 그러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잖아요. 하지만 스스로 나서서 내보이는 걸 원치 않는 성향도 있어요.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일을 못 하냐,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안 그래도 일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까지 다 전해드리고 싶어요.
유튜버 장인성
인성 님의 미래 계획 중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유튜버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해요. 말랑한 오피스의 인성상담소를 유튜브 콘텐츠로 선보이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인성상담소가 원래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한 타이틀이었어요. 제가 유튜브를 시작한 지는 꽤 됐어요. ‘이제 대세는 유튜브래’ 하던 시절에 유명 유튜버가 될 필요는 없지만 채널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봐야 브랜드에 적용할 수 있겠다 싶어 저와 팀원 모두 개인 채널을 만들었죠. 그때 사람들이 볼만한 거, 궁금해할 만한 거를 고민하다 파는 사람인 마케터가 사는 얘기를 하는 ‘인성아뭐샀니’라는 채널을 운영했어요. 그 후 회사 일이 바빠 뒷전으로 미뤄뒀는데, 쉬면서 새로운 코너로 인성상담소를 떠올린 거예요.
초기에 구상한 인성상담소는 유튜브 라이브로 여는 상담소였어요. 한 명만 들어와도 대화할 수 있잖아요. 질문하면 제가 대답하고. 모든 질문과 답변이 쓸모 있진 않겠지만 1시간쯤 라이브 하다 보면 한두 개쯤 쓸모 있겠죠. 그 부분을 편집해 콘텐츠로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오피스를 열고 사람들을 만나자 하며 인성상담소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거죠. 녹화도 해 두었어요.
편집도 직접 하시죠? 첫 번째 에피소드는 언제 업로드될까요?
일정은 4월 내에. 여기에 괄호 열고 ‘자신 없는 대답’이라고 해주세요(웃음).
기대되는데요! 혹시 인성상담소 외에 다른 유튜브 콘텐츠로 생각해 두신 것도 있나요?
저희 집 ‘책감옥’에서 두 가지 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책감옥 비주얼이 특이하잖아요. 이 장소를 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하나는 책감옥 장서를 소개하는 코너예요. 이 책이 왜 책감옥에 들어있고,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되는지 소개하는 3분짜리 짧은 코너를 생각하고 있어요. 독립서점에 가면 책마다 추천 코멘트가 쓰여 있잖아요. 그것의 영상 확장판인 셈이죠. 다른 하나는 책감옥 초대석이에요.
저자 초대석 같은 걸까요?
저자 초대는 아니고요. 제가 아는 훌륭한 분들을 책감옥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고정된 포맷은 손님은 책감옥에 꽂을 책 한 권을 가져오고, 저는 그 책을 받고 책감옥에서 한 권을 꺼내 그 분께 드리는 거죠. 서로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나누고요. 그다음 제가 요즘 좋아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잖아요.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나 찾다 보니, 저는 대충하는 것의 반대편을 좋아하더라고요. 무엇이든 대충하고 싶지 않고 제대로 잘 차곡차곡 쌓으면서 하고 싶어요. 그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대충 대충의 반대말만 알면 제 지향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거죠. 그게 ‘제대로’는 아닐 것 같아요. 사람마다 관점도 다를 것 같고요. 그래서 손님들이 생각하는 대충의 반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인성 님만의 ‘제대로’를 꼭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은데 주저하는 사람, 혹은 스스로의 ‘왜’를 갖는데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 수많은 접점이 있고, 그 안엔 내가 잘하는 것과 자신 없는 것이 있을 거예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집중해서 파다 보면 거기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왜?’를 질문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운동도 못하고 기계도 잘 못 다루는데 미각만큼은 예민해요. 여기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이 들어간 것 같은데, 했을 때 그게 진짜 맞아요. 그럼 그 부분에서 ‘왜’를 연습하는 거죠. ‘왜 여기는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을 넣었을까?’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내가 어색한 다른 영역에서도 자신만의 질문과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저는 정해져 있고 ‘원래 그런 거야’ 하며 따라가는 것들이 답답해서 늘 ‘왜?’라고 묻는 사람이었어요. 지향점에 맞게 방법은 그때그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다 보면 결국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달라지고 싶어서 다른 게 아니라,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그냥 하는 거예요. 하고 싶던 건 이게 아니었지만 아니어도 괜찮은데, 하는 것들이 저는 늘 즐겁고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