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술은 인간이 자연을 저장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다. 햇빛과 물, 공기, 시간이 어우러져 디오니소스의 축복으로 거듭난다. 그 과정은 인간의 정념을 농축하고 숙성하는 예술과 같다. 138년 전통의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이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이유다. 2002년부터 이어진 이 프로그램은 매년 여름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를 글렌피딕의 증류소가 있는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으로 초청해 일정 기간 체류하며 작업하도록 지원한다.

2026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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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간이 자연을 저장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다. 햇빛과 물, 공기, 시간이 어우러져 디오니소스의 축복으로 거듭난다. 그 과정은 인간의 정념을 농축하고 숙성하는 예술과 같다. 138년 전통의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이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이유다. 2002년부터 이어진 이 프로그램은 매년 여름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를 글렌피딕의 증류소가 있는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으로 초청해 일정 기간 체류하며 작업하도록 지원한다. 지침은 간단하다. 레지던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하는 것. 글렌피딕의 브랜드 헤리티지는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개입해 영감을 준다. 1887년부터 이어온 증류의 역사, 오랜 시간 숙성을 거쳐 완성되는 위스키의 속성, 장인 정신에 대한 집요한 태도, 그리고 작가들 간의 느슨한 연대는 각기 다른 독창성으로 발현된다. 지난해에는 한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타이완, 중국 5개국에서 5명의 아티스트를 선발하고 약 3개월간의 레지던스 기간을 거쳐 단체전을 개최했다.

한국 작가로 선정된 손광주는 글렌피딕 증류소의 풍경을 바탕으로 한 영상 작업 ‘울지 마, 아이야’를 선보였다. 그는 작업의 출발점으로 2024년 말 한국 사회를 뒤흔든 계엄령과 글렌피딕에서 알게 된 케냐 출신 작가와의 만남을 언급했다. “소위 ‘큰 뉴스’들에 묻혀 있던 케냐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알게 되고, 케냐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는 젊은 세대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의 감정적 결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작업은 지난 5월 타계한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의 〈울지 마 아이야(Weep Not, Child)〉에 인용한 월트 휘트먼의 시 ‘밤의 해변에서(On the Beach at Night)’를 스와힐리어로 재인용한다. “휘트먼이 하늘의 별에서 불멸성을 보았다면, ‘울지 마, 아이야’는 증류소의 발효처럼 소리치지 않고, 위협하지 않으며, 땅의 별들—오래된 벽, 질감, 침묵의 흔적—속에서 지속의 힘을 찾는다.” 이렇듯 작가는 스코틀랜드의 고립된 자연환경 속에서 세상의 억압과 폭거 속에서 존엄을 지키는 모든 존재에게 고요한 연대의 언어를 보내고자 했다. 지난해 참여 작가들은 스코틀랜드에서의 체류 경험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작업 세계에 투영했다.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이렇듯 브랜드의 역사와 환경이 예술가의 사유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확장되는 경험을 제시한다. 2026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2월 6일까지 참가자를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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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주 작가
“비상계엄 사태로 어수선하던 시기에 떠난 탓인지 절제되고 금욕적인 스코틀랜드 풍경이 세상의 ‘속도’와 뚜렷이 다른 결을 지녔다고 느꼈다. 체류 기간 동안 우연히 만난 케냐 출신의 젊은 작가와의 대화는 세계 곳곳의 저항과 연대의 감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 중요한 자극이 되었고, 외딴 지역임에도 그 고요함 속에서 세계의 상처와 희망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사유가 나의 작업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글렌피딕 위스키가 오랜 숙성을 통해 깊어지듯, 시간 예술 역시 시간과 장소가 만들어내는 농도와 여유를 통해 더욱 응축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1호(2026.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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