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산산기어

2019년 등장한 산산기어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로부터 열렬히 지지받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단순히 트렌디한 디자인 뿐만이 아니다. 시대와 호흡하며 젊은 세대의 결핍에 주목한 결과이다.

[2026 월간 〈디자인〉이 주목하는 디자이너 15팀] 산산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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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민석, 이상엽, 김주희. 스트리트웨어와 테크웨어의 경계를 탐구하는 패션 브랜드. 상쾌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뜻하는 순우리말 ‘산산하다’에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의류를 지칭하는 ‘기어gear’를 결합해 브랜드 네임을 완성했다. 시즌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컬렉션과 콘텐츠를 함께 기획하며 의상과 에디토리얼로 풀어낸다. NCT WISH, 바밍타이거, 실리카겔 등 동시대 아티스트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과도 협업하면서 독자적인 미감과 해석을 선보이고 있다. sansangear.com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패션 신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브랜드가 하나 있다. 2019년에 론칭한 ‘산산기어’이다. 새로운 컬렉션은 눈 깜짝할 사이 품절되어 웃돈을 주고 구입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NCT WISH, 실리카겔, 바밍타이거 등 젊은 뮤지션들이 산산기어에 러브콜을 보낸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산산기어의 인기 비결을 단지 ‘트렌디함’으로 요약하는 것은 지나치게 빈약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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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오픈한 산산기어 더현대서울점.

산산기어의 진짜 매력은 오늘날의 청춘이 어떤 감각과 태도로 살아가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이상엽 공동대표 겸 디렉터는 과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스케이트보드 신을 기반으로 전개했던 2개의 패션 브랜드는 모두 1년 만에 폐업하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 경험은 전화위복이 되어 산산기어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패션이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방식과 기준을 명확히 설정한 뒤 브랜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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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양옆의 버튼을 풀고 잠글 수 있는 웨이브 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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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기어의 디자인은 옷의 기능을 있는 그대로 시각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부 브랜드가 기능을 숨기기 위해 장식을 덧붙이거나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디테일을 드러내는 것과는 다르다. 옷의 본래 기능을 기준으로 삼고 그 기능이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구조와 형태를 찾는 데 집중한다. 초창기부터 유지해온 회색과 메탈릭 톤 중심의 컬러는 브랜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산산기어 특유의 도회적인 느낌과 차가운 인상은 종종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폐허의 이미지라기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개인의 상태에 가깝다. 화려한 색이나 장식을 덜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생명력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산산기어는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들과 다른 길을 걷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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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 재킷. 재킷 형태에 수납 구조를 결합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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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기획과 스토리텔링도 그렇다. 초기 단계에서 테마의 맥락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상과 콘텐츠를 동시에 제작한다. 크리에이티브 팀과 디자인 팀의 역할을 교차하는 방식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디자인 팀은 시즌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설정하고, 크리에이티브 팀은 디자인 과정에 일부 참여한다. 의상 디자인을 전담하는 디자인 팀과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 팀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는 여타 브랜드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는 과정은 컬렉션의 방향을 입체적으로 탐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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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F/W 웨이파인더 컬렉션의 ‘바둑’을 콘셉트로 한 캠페인 화보. 영화 <해피엔드>에 출연한 배우 구리하라 하야토가 참여했다.

일례로 2025 F/W 시즌의 ‘웨이파인더Wayfinder’ 컬렉션의 기획은 “살아 있는 존재는 각자의 길을 찾는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했다. 디자인 팀은 이동이나 여행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차용하지 않고, 오늘날 길을 찾는 행위가 지닌 의미부터 고민했다. 그 결과 도출한 상징은 대자연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셰르파’ 그리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수를 읽으며 판단을 이어가는 ‘바둑’이었다. 셰르파는 의상의 구조와 실루엣을 디자인하는 기준이 되었고, 바둑은 에디토리얼과 콘텐츠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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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푸마와 협업한 컬렉션 ‘풀 스로틀(Full Thro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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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식스와 협업한 다용도 신발 ‘젤-터레인(Gel-Terrain)’.

브랜드 운영 방식도 흥미롭다. IT 스타트업처럼 매 시즌 소규모 실험을 통해 반응을 확인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은 요소를 다음 단계에 반영한다. 점검과 수정에 중점을 두며 브랜드만의 기준을 축적한 결과, 정체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지고 있다. 눈부신 성과는 산산기어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론칭 이래 현재까지 연평균 631%라는 어마어마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자사 몰의 비중이 6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고객들의 두터운 브랜드 충성도를 보여준다. 시대의 맥락을 읽고, 꾸밈없고 정확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산산기어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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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 특유의 부피감을 절개와 구조로 조절한 ‘서픽스 푸퍼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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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발표한 삼성 라이온즈와의 두번째 협업 컬렉션.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1호(2026.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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