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을 압축한 알루미늄 큐브, 청계유석

서울시 청계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당선작 ‘청계유석’은 도시가 남긴 물질적 흔적을 ‘기억의 지층’으로 환원한다.

도시의 기억을 압축한 알루미늄 큐브, 청계유석

청계천 무교동 모전교 하부에 새로운 공공미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 청계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당선작 ‘청계유석’이 그 주인공. 임근영과 전재봉이 이끄는 SS2 아키텍츠가 디자인한 이 작업은 도시가 남긴 물질적 흔적을 ‘기억의 지층’으로 환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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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스크랩을 고압으로 압축해 만든 큐브. 사진 권보준

작품은 재생 알루미늄 스크랩을 고압으로 압축해 만든 36개의 큐브로 구성했다. 각각의 큐브는 아연도금 비계 구조에 고정되어 약 20m 길이로 늘어서며 규모는 약 20m × 3.5m × 1m에 이른다. 인공적인 구조와 원초적인 덩어리감이 공존하는 이 배열은 청계천이라는 도시적 자연 위에 낯설지만 절제된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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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유석 제작 과정. 사진 SS2 아키텍츠

청계유석이라는 이름은 오래된 돌이 시간과 장소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듯, 산업과 소비의 과정에서 발생한 알루미늄 스크랩 역시 도시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큐브 표면에 남은 긁힘과 구김, 눌린 결은 재료가 거쳐온 시간의 압력을 드러내며 청계천의 물결과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 다른 반사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고정된 조형물이지만 빛과 물,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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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간 간격은 유속과 수심, 햇빛의 방향과 반사 조건을 고려해 정밀하게 조율했다. 사진 권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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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큐브들은 청계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개입한다. 사진 권보준

설치 위치와 큐브 간 간격은 유속과 수심, 햇빛의 방향과 반사 조건을 고려해 정밀하게 조율했다.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큐브들은 청계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개입한다. 시간이 흐르며 알루미늄 표면이 바래고 변색되는 과정 또한 작품의 일부로 계획했다. 이는 완결된 상태보다 변화의 시간을 중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특히 이 작업은 설치부터 철거, 그리고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고려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압축된 알루미늄 스크랩은 자원순환 과정에서 잠시 ‘예술’이라는 상태로 꺼내어졌다가, 전시가 끝난 뒤 다시 자원으로 환원된다. 작품은 영구히 남는 기념비가 아니라, 도시의 순환 시스템 속에서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에 가깝다. 청계유석은 도시의 흔적이 자연의 일부로 다시 편입되는 과정을 시각화하며, 도시·자연·자원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소비와 재생, 구축과 해체 사이를 오가는 이 설치는 청계천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적 층위와도 조용히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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