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잇는 엔서울 갤러리의 여정

네덜란드 엔서울 갤러리 그웬 박 관장 인터뷰

네덜란드어로 ‘그리고 서울’을 뜻하는 이름의 현대미술 갤러리, 엔서울(Enseoul). 이곳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진 및 중진 작가들을 네덜란드와 유럽 미술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잇는 엔서울 갤러리의 여정

네덜란드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빌렘 데 클레르크(Willem de Clercq)의 이름을 딴 암스테르담의 데 클레르크스트라트(De Clercqstraat)에는, 지나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하는 공간이 있다. 네덜란드어로 ‘그리고 서울’을 뜻하는 이름의 현대미술 갤러리, 엔서울(Enseoul)이다. 이곳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진 및 중진 작가들을 네덜란드와 유럽 미술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 해 마지막 전시로 유현경 작가의 개인전 ‘Fly, from the days I considered leaving’을 준비 중인 엔서울 갤러리 그웬 박 (Gwen Park) 관장을 축축한 겨울비가 내리는 수요일 오후에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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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데 클레르크스트라트에 위치한 엔서울 갤러리 사진 엔서울 갤러리

갤러리 초기에는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했지만, 지금은 그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독일 등 인근 유럽 국가의 작가들, 또 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작가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예술계에 관심을 가진 유럽 작가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엔서울 갤러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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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엔서울 갤러리 그웬 박 관장 사진 엔서울 갤러리

박 관장은 엔서울의 방향성이 “국가”나 “정체성”이라는 경계 안에서만 정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이 출발점이긴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예술가 개인의 세계관과 그것이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엔서울은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의 질’과 ‘태도’를 우선시하는 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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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울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유현경 작가 전시사진 엔서울 갤러리

이는 엔서울 갤러리가 ‘단순한 전시 플랫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을 연결하는 ‘교차점(crossing point)’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박 관장은 “유럽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 작가를 네덜란드에 소개하고, 또 동시에 아시아 진출에 관심이 있는 유럽의 작가를 연결하는 것도 저희 갤러리의 주요 임무입니다.” 서로 배경이 다른 작가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그 과정에서 실제 협업이나 프로젝트로 이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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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울 갤러리 주요 전시 사진 엔서울 갤러리

박 관장이 작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바로 ‘진정성’이다. 예술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작업에 임하는 태도, 그 진정성이야말로 국적과 언어, 문화를 넘어 관객에게 닿는 힘이라고 그는 믿는다. 작품 속에 깃든 온전한 진심은 결국 어떤 설명보다 강한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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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울 갤러리 주요 전시 사진 엔서울 갤러리

작가만의 아이덴티티와 세계관, 독창성과 깊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을 발견하면 박 관장은 주저 없이 연락을 취한다. “그런 작품을 만나면 바로 미팅을 잡아요. 그리고 직접 스튜디오로 찾아갑니다.”

작가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업실에서 캔버스와 안료 냄새를 맡으며 마주 앉아, 작가가 자신의 예술관과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은 그에게 정말 특별하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공기,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 작가의 표정… 이런 모든 것들이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거든요. 갤러리스트로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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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울 갤러리의 작품을 감상 중인 관객들 사진 엔서울 갤러리

요즘 네덜란드에서도 앞에 ‘K’가 붙으면 유독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인데, 한국 미술 역시 이런 K-트렌드를 실감하고 있는지 물었다. 박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를 처음 열었던 3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작가들에 대한 호기심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여기 분들에게는 한국 작가 이름이 낯설기 때문에 작품을 본 뒤 이름을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보는 경우가 많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갤러리스트 입장에서, 한국 작가들의 활동 반경이 유럽에서 점점 넓어지는 걸 직접 체감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3년간 갤러리 운영과 더불어 네덜란드 국내외 아트페어에 꾸준히 참여한 박 관장에 따르면,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유행의 속도가 빠른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의 예술 시장은 훨씬 느긋하고 차분한 리듬을 따른다. “엔서울을 찾는 네덜란드 관객들은 연령도 성별도 정말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작품을 일단 ‘오래’ 봅니다. 본인들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고,자신과 교감할 수 있는 작품, 자신에게 연결된 작가를 찾죠. 그래서 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관계가 매우 오래 갑니다. 저는 이것이 네덜란드 예술 시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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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 Amsterdam2025에 참여한 엔서울 갤러리 전시장 사진 엔서울 갤러리

올 3월 아트 로테르담을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 덴마크 코펜하겐의 Enter Art Fair, 그리고 11월 초 PAN 암스테르담까지 쉼 없이 달려온 박 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올해는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다양한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집중했어요. 내년에도 기초를 더 탄탄히 다지고, 엔서울 갤러리를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는 갤러리 운영의 현실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결국 갤러리스트로서 자신의 가장 큰 역할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이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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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서울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유현경 작가 전시 사진 엔서울 갤러리\

“작가분들이 자신이 가진 역량과 창의성을 100% 발휘하도록, 그 중간 다리가 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연결이 잘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갤러리의 존재 이유도 분명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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