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너머의 디자인을 상상하다, 오창섭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하우스는 한국인의 삶에 깃든 '막'의 의미를 조명하는 창립 50주년 기념 문화 캠페인을 선보인다. 이에 한 달에 한번 '막'을 바라보는 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한다. 첫 주인공은 오창섭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다.

디자인 너머의 디자인을 상상하다, 오창섭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월간 <디자인>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문화 캠페인을 전개한다. ‘긍정적 ‘막’ 정신’으로 명명한 캠페인의 취지는 한국 문화의 핵심 요소를 정립하는 데 있다. 막사발, 막국수, 막걸리 등 한국인의 삶에 깃든 ‘막’의 의미를 동시대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편린처럼 존재하던 개념을 다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논의는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윤곽이 잡힐 것이다. 이에 월간 <디자인>은 디자인 관점에서 ‘막’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와 인터뷰 시리즈를 마련했다. 첫 주인공은 디자인 연구자인 오창섭 교수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메타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디자인을 비평해온 그에게 ‘막’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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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우리는 너희가 아니며, 너희는 우리가 아니다> <근대의 역습> <내 곁의 키치> <디자인의 유령들> 등을 집필했다. 2006년부터 메타디자인랩을 이끌며 과거의 디자인을 기록하고 비평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상업적인 가치를 좇는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도 지속하고 있다. 출판 프로젝트 ‘지난해’, ‘메타디자인’을 이끌었으며, 전시로는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 <디자인, 피맛골을 추억하다> <안녕, 낯선 사람> 등을 기획했다. metadesignlab.kr

“‘막’을 통해 전형적인 디자인의 질서를 흔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부임 후 현재까지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흔히 대학교의 산업디자인학과는 제품 디자인 영역을 주로 가르치는데, 건국대학교는 조금 다르다. 디자인 분야가 갈수록 확장되고 학생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커리큘럼에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제품·공간·UX 디자인뿐 아니라 디자인 큐레이션, 디자인 읽기와 쓰기, 디자인 문화 기획 등을 도입했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 현상을 비평하거나 깊이 사유하고, 현재와는 다른 형태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오히려 문제를 정확히 설명하고 도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메타디자인랩’이라는 이름의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여기서 ‘메타디자인’이란 어떤 의미인가?

2000년 즈음에 ‘메타디자인의 가능성’이라는 짧은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 논문에서 이야기의 대상은 디자인 자체였다. 디자인은 흔히 스타일 혹은 문제 해결의 맥락에서 이해하지만, 그러한 역량 외에 생각을 자극하고 촉진시키는 사유의 역량 또한 가지고 있다. 논문에서는 디자인의 사유 역량과 비평적 역할을 가시화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메타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개념은 2000년 11월 <메타디자인실험전>이라는 전시와 2001년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메타디자인을 찾아서>라는 저서로 발전했다. 이후 2003년에 건국대학교에 부임해 이 개념을 활용한 연구 방법을 고민했고, 2006년 ‘생각이 있는 디자인’이라는 졸업 작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메타디자인랩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는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디자인 역사·비평·문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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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시각문화 디자인 40년>전. 일상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시각 문화’로 규정하고, 한국 디자인 신에서 시각 문화가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지를 조명하고자 했다. 오창섭 교수는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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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 갤러리에서 열린 <디자인, 피맛골을 추억하다>전. 메타디자인랩이 주최하고 오창섭 교수가 기획 총괄을 맡았다. 경제 논리에 의해 사라진 피맛골을 디자인 전시 형식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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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일환으로 열린 <서울 디자이너의 꿈>전. 디자인 전공 학생 및 현역 디자이너, 교수 등 디자인과 관련된 291명의 기발하거나 의미 있는 포트폴리오와 생각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오창섭 교수가 전시 기획 총괄을 맡았다.
디자인은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평 담론이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동의한다. 대부분의 예술 분야에는 각자 자신만의 역사와 계보, 논리가 있다. 밀란 쿤데라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에서 “하나의 작품이 우리가 분간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역사 안에서일 뿐이다”라고 했는데, 오늘날 디자인은 역사 안에서 판단되지 않는다. 그저 대중의 선호도와 판매 실적만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끊임없이 현재만 반복되는 셈이다. 과거의 디자인을 기록하고 비평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그중에서도 비평이 굉장히 중요하다. 흔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비평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개인적으로 비평은 ‘음미’에 더 가깝다고 본다. 특정 현상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의미와 가치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선보인 ‘지난해’ 출판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

디자인 관점에서 전년도의 중요한 이슈나 사회 현상을 되짚어보는 프로젝트였다. 팬데믹 직전에 DDP로부터 일상용품과 관련된 전시 기획 제안을 받았을 때, 국내에서 생산한 디자인 결과물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과거의 디자인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당장 지난해부터 기록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잠정적으로 중지한 상태이다. 새로운 디자인을 표방하지만, 구조적인 변화 없이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 안에서 기존 것을 리뉴얼한 결과물에 불과한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움마저 진부하게 느껴졌달까? 지난 3년간 지속해온 포맷을 반복하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2024년에 디자인 비평지 <메타디자인>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2000년대 한국 디자인사를 종합한 <디자인의 유령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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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한 출판 프로젝트 ‘지난해’. 전년도의 사회 현상을 디자인 관점에서 되짚어보는 기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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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디자인 01: 디자이너의 일>.
만일 ‘지난해’ 프로젝트를 올해에 진행한다면, 2025년의 주요 이슈는 무엇일까?

AI에 대한 기대와 공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AI가 인류에게 좋은 미래를 가져다주리라는 기대가 가득하지만, 그만큼 우려도 존재한다. 디자인의 개념과 존재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의자에 대한 관심이다. 매거진 <C>가 등장하는 한편, 몇 년 사이 디자인계에 의자를 활용한 전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매체가 되었다고 보이는데, 기회가 되면 자세히 연구하고 싶다.

올해 디자인하우스의 연간 캠페인의 주제는 ‘막’ 정신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통적인 개념의 디자인은 합리적인 이성을 발휘해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신뢰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근대적인 믿음이 20세기부터 이어져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빈부격차 심화, 젠더 이슈, 기후변화 등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디자인이라는 논리적인 행위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와 동등하며, 그동안 대상화했던 존재들이 주체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막’이라는 개념이 디자인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막’이 기존의 디자인을 벗어난 행위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명확한 질서 대신 특정한 방향과 믿음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행위에 가까운 것 같다. 예를 들어 ‘막회’는 회를 썰어야 한다는 지향점과 잘 썰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해 완성되는 것이지, 회의 길이와 두께에 대한 치밀한 계획은 없지 않나? 이처럼 ‘막’을 통해 전형적인 디자인의 질서를 흔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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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행복의 기호들: 디자인과 일상의 탄생>의 온라인 전시. 팬데믹 이전의 일상을 각종 사물과 광고를 통해 되짚는 데 집중했다. 오창섭 교수가 전시 기획을 담당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2호(2026.02)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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