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K-로고 연대기: 20세기 대한민국의 초상〉이라는 방대한 디자인 아카이빙 북을 펴낸 김성천 CDR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약 2년 만에 새로운 아카이빙 북으로 돌아왔다.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매뉴얼 1970~1990년대〉
지난 1월 프로파간다에서 출간한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매뉴얼 1970~1990년대〉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된 국내 기업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매뉴얼을 종합한 책이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가 시작되면서 기업 경영의 합리화·현대화가 요구되었고,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이 본격화됨에 따라 많은 기업이 해외 진출을 위해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매뉴얼 1970~1990년대〉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주목한 이유다. OB맥주, 신세계백화점, 쌍용그룹, 대전엑스포 등 총 17개의 매뉴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매뉴얼을 제작하던 당시 활약한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또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핵심인 기업 전용 서체도 함께 수록했다.
매뉴얼을 소개하는 1권과 기업 전용 서체를 아카이빙한 2권의 디자인, 판형, 제본이 모두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1권은 스프링 제본으로 자료에 따라 내지에 색지를 일부 활용한 반면, 2권은 무선 제본으로 내지는 백지만 사용했는데 이는 두 권이 다루는 자료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디자인을 맡은 노네임프레스는 1권에서 각기 다른 형식과 디자인의 자료를 하나의 톤 앤 매너에 맞추는 데 초점을 두는 반면, 비교적 일관된 형식의 자료를 수록한 2권에선 개별 서체의 개성과 조형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명료한 정보 전달을 위해 서체 선택, 인쇄, 제본 방식 등에서 과도한 장식은 지양했다. 에디터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무심한 인상을 가진 책’을 만들고자 했다는 노네임프레스는 “툴 사용법과 트렌드 중심의 디자인 전문 서적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 디자인의 여명기 시절을 다룬 자료집을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내 디자인계에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다채로운 컬러 활용이 돋보이는 1권의 내지 디자인.
박수연 노네임프레스 공동대표
장영웅 노네임프레스 공동대표
“책에 실린 이미지 중 대부분이 김성천 대표가 30년간 수집한 자료를 스캔한 것이다 보니, 접힌 자국이나 습기로 인한 얼룩, 열화된 부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자료의 훼손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자료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한국 디자인사의 공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성천 CDR어소시에이츠 대표
“이 책에 실린 전용 서체들은 기업의 시각 언어로서 제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감성을 반영한다. 서체는 브랜드가 지닌 성격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였으며, 이를 통해 기업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즉 전용 서체는 글자로 만든 인상이자 한국 사회의 시각 문화를 반영한 시대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전용 서체를 명확히 보여주는데 집중하기 위해 컬러 활용을 최대한 절제한 2권의 내지 디자인.
디자인노네임프레스(대표 박수연·장영웅) 참여 디자이너 박수연, 장영웅, 심정원 글 김성천(CDR어소시에이츠) 출판프로파간다(대표 김광철) 판형 225×297mm(1권), 230×305mm(2권) 제본 스프링 제본(1권), 무선 제본(2권)
정해리가 일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호오를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주위에서 내민 손을 기꺼이 맞잡는다. 시시각각 업역을 넓히면서도 여전히 가본 적 없는 곳을 향해 방향키를 튼다. 정해리가 지금껏 그려온 궤적은 여정의 서문에 가까우며, 이 젊은 디자이너는 아직 시작점에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