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보(DELVAUX)가 만들어가는 구조의 미학

가죽 핸드백이라는 개념은 언제, 누구의 손에서 시작됐을까?

핸드백. 명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템은 바로 가죽 핸드백이다. 그렇다면 현대 핸드백의 정형이 된 가죽 핸드백이라는 아이템은 언제 등장했고, 그 시작은 누구의 손에서 시작됐을까?

델보(DELVAUX)가 만들어가는 구조의 미학

핸드백. 명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템은 바로 가죽 핸드백이다. 그렇다면 현대 핸드백의 정형이 된 가죽 핸드백이라는 아이템은 언제 등장했고, 그 시작은 누구의 손에서 시작됐을까?

DELVAUX FW25 Brillant Savoir Faire 7
델보(DELVAUX)의 브리앙(Brillant)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다 보면 델보(DELVAUX)가 있다. 182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설립된 델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레더 하우스로, 가죽 핸드백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이 아이템을 다뤄온 브랜드다. 1908년, 델보는 ‘프린세스(Princesse)’ 모델로 세계 최초의 가죽 핸드백 특허를 출원하며 핸드백을 하나의 독립된 제품군이자 구조를 가진 오브제로 정의했다. 손에 들고, 여닫고, 수납하는 방식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핸드백의 정형은 바로 이 시점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60203 033813
벨기에 파올라 왕비의 결혼선물로 제작된 델보의 몽 그랜드 보뇌르 백

이후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선보인 ‘브리앙(Brillant)’은 메탈 D 로고 버클과 플랩 구조, 아름다운 비율을 통해 델보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줬다. 그 철학은 핸드백을 가죽으로 만든 하나의 구조물로 바라보는 데 있다. 이런 구조적인 접근 때문에 델보는 ‘가죽의 건축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VAL DELVAUX Arsenal 3
브뤼셀에 위치한 아뜰리에 ‘아스날(L’Arsenal)’

이 철학은 브뤼셀에 위치한 아뜰리에 ‘아스날(L’Arsenal)’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1994년 벨기에 옛 군수공장을 개조한 이곳으로 이전한 이후, 아스날은 델보의 본사이자 핵심 제작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20세기 초 네오 튜더 양식의 건축물 내부에는 주철과 철제 구조가 드러나 있으며, 건물 중심에는 아뜰리에가, 이를 내려다보는 상부 중이층에는 사무와 창작 공간이 배치돼 디자인과 제작, 운영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된다.

20260203 033935
제품 설명과 스케치를 담은 ‘르 리브르 도르’

델보의 가방은 가죽 선택, 절단, 봉제, 조립까지 모든 과정이 이곳에 있는 장인들의 손에 완성된다. 특히 브리앙 백은 64개의 가죽 조각과 메탈 부자재로 구성되며, 하나의 가방이 완성되기까지 최소 8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제품에서도 그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예술가와의 긴밀한 호흡

델보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태도를 확장해 왔다. 가죽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예술이라는 매개를 만나, 전통을 현재의 언어로 이어가는 방식이 됐다. 그중에서도 르네 마그리트와의 파트너십은 델보의 벨기에적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다.

초현실주의 선언 100주년을 맞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전시 〈Surrealism〉과 함께 공개된 25SS 마그리트 캡슐 컬렉션은, 브리앙 미니 웨이비(Brillant Mini Wavy)와 브리앙 휴머(Brillant L’Humour)를 통해 초현실주의적 위트와 개념을 공예로 번역했다. 물결 형태의 핸들과 문장 표현은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작품의 개념을 전달하는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다. 르네 마그리트의 문장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를 변주한 ‘Ceci n’est pas un Delvaux(이것은 델보가 아닙니다)’는 초현실주의적 위트에 대한 오마주다. 이 문구는 예술적 개념을 가방 위에 공예적으로 구현하며, 델보가 추구해 온 방식을 보여준다.

24SS 시즌에는 벨기에 아티스트 캐스퍼 보스만스와 협업을 진행했다. 두 개 이상의 유기체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뮤추얼리즘(Mutualism)’을 주제로, 브리앙 블랙 에디션 레전드(Brillant Black Edition Legend)를 선보였다. 보스만스가 꾸준히 탐구해 온 정체성과 공동체, 역사적 상징은 브리앙 백의 구조 위에 레더 마르퀘트리(Leather marquetry) 공법으로 표현됐다. 서로 다른 가죽 조각을 잘라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이는 이 기법은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며, 패턴과 색의 조합으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뉴욕 5번가 플래그십에서 사울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의 설치 전시를 개최하며 또 다른 방향의 예술적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시의 중심에는 1958년 브뤼셀 만국박람회를 위해 제작된 스타인버그의 벽화 ‘The Americans’ 시리즈가 자리한다. 흥미롭게도 이 해는 델보의 아이콘 브리앙이 처음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두 사건이 같은 해에 교차한다는 점은, 델보가 예술과 역사를 하나의 시간 축 위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캐스퍼 보스만스와(Kasper Bosmans)의 두 번째 만남

델보는 이번 시즌에 캐스퍼 보스만스(Kasper Bosmans)와 다시 한번 만났다. 조각과 설치, 회화, 드로잉을 넘나드는 보스만스의 작업은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 신화와 인류학적 서사를 편집적으로 엮어낸다. 역사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이야기나 규범에서 벗어난 서사를 끌어와, 정체성과 공동체라는 주제를 새롭게 질문해 온 작가다.

20260203 034220
벨기에 아티스트 캐스퍼 보스만스(KasperBosmans)

델보가 보스만스와의 협업을 지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 방식은 건축적으로 가죽을 바라보는 델보의 태도와도 닮아있다. 보스만스의 시선을 통해 브랜드의 유산을 다시 바라보고 이를 동시대의 언어로 확장한다.

델보 X 캐스퍼 보스만스 애니메이션

이번 협업은 2월 4일 더현대 서울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팝업 공간은 옐로우 소르베(Yellow Sorbet)와 기모브(Guimauve) 컬러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아스날 아뜰리에에서 영감받은 벽장 구조와 부드러운 곡선의 건축적 요소를 통해 델보의 구조적 미학을 공간 안에 풀어낸다. 이번 팝업을 기념해 캐스퍼 보스만스가 직접 핸드페인팅 한 ‘26SS 캐스퍼 보스만스 코리아 익스클루시브’ 레더 컬렉션 13점이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각 제품은 단 하나의 피스로 제작돼, 가방을 넘어 기능성과 예술적 가치를 함께 지닌 오브제로 제시된다. 이와 함께 브리앙 템포 S의 신규 컬러도 이번 팝업을 통해 처음 선보인다.

DELVAUX 2026 SS26 BRILLANT TEMPO S ORAGE 16x9 00001.jpg

또, 2월 6일에는 캐스퍼 보스만스의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현장에서 완성되는 작품은 팝업 공간의 주요 비주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델보의 장인정신과 보스만스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팝업은 5월까지 이어진다. 델보가 예술과 호흡하는 방식을 공간 안에서 천천히 따라가며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것은 어떨까.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