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건축,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전
300여 점의 모형과 도면을 통해 노먼 포스터의 건축 철학을 마주하다. 이번 전시는 4월 25일부터 7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홍콩의 HSBC 빌딩(1985), 오이 모양을 닮은 독특한 실루엣으로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된 ‘30 세인트 메리 엑스’(2004), 세계적인 IT기업 애플의 본사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플 파크’(2017)가 모두 이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이다.
처음 만나는 노먼 포스터
노먼 포스터의 건축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노먼 포스터의 한국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노먼 포스터와 그의 자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의 건축물 중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춰 대표작 50건을 건축 모형, 드로잉 아카이브, 영상 300여 점으로 소개한다.
포스터 + 파트너스는 노먼 포스터가 1967년 설립한 ‘포스터 연합(Foster Associates)’을 전신으로 한다. 영국을 기반으로 18개의 건축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2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설계회사이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 형식이 아닌 서울시립미술관과 포스터 + 파트너스가 새롭게 기획하고 구성해 더욱 의미 있다.
건축 철학을 담은 다섯 개의 섹션
전시명인 ‘미래긍정’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건축 철학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이들의 미래를 긍정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미래 건축’이라는 다섯 개의 섹션 구성으로 보여준다.
노먼 포스터는 공학적 접근과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하이테크 건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건축 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점이다. 전시는 노먼 포스터가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도시 설계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꾸준히 고민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다섯 개의 섹션 구성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가 가장 앞서 등장하는 이유다.
1971년 친환경 건축의 선구자이자 미래학자인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와 함께 고안한 ‘기후 사무소(Climatroffice)’, 1975년 스페인의 고메라 섬의 지역적 특성과 연계해 수립한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 등 노먼 포스터는 친환경 건축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던 1970년대부터 환경과 더불어 존재하는 건축에 대한 사유를 설계에 녹였다. 지속가능성은 노먼 포스터의 모든 작업에 내포된 개념이다. 이후 이어지는 섹션에서도 지속가능성, 친환경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는 ‘레트로핏(retrofit)’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에 현대적 해석으로 조화를 더한 레트로핏 접근을 통해 새롭게 확장하고 개조한 프로젝트를 다룬다. 존재감이 없던 안뜰에 유리 천장을 씌워 박물관의 중심 공간으로 변모시킨 런던 영국박물관의 대중정(1999)이 대표작이며, 뉴욕의 ‘허스트 타워’(2006), 독일의 ‘국회의사당’(1998)도 이에 해당한다. 단순히 옛것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건축 환경으로 사용자 경험을 이끌면서 공공 건축의 개념을 확장한다.
노먼 포스터는 일찍이 벅민스터 풀러와 함께 첨단 기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공유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이라는 섹션명에서 알 수 있듯 기술을 통해 일터를 어떻게 친환경적이고 일하기 즐거운 장소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미국 애플 파크, HSBC 빌딩과 같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건축물은 디자인적 성취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력이 응축된 실험적이고 앞선 건축물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와 기후 환경에 대한 다층적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한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립 박물관’(2025년 완공 예정)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사용자 경험을 앞세운 노먼 포스터의 건축의 철학은 건축물 그 주변을 모두 아우른다. 노먼 포스터는 대학 시절 건축과 함께 도시계획을 전공하기도 했는데,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에서는 그가 프로젝트에 사회, 경제, 환경을 어떻게 고려했는지 보여준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2003), 프랑스 ‘마르세유 구 항구’(2013) 설계 등을 통해 상실되었던 공간이 재생되며 도시가 어떻게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1991)은 자연 채광 유입을 통한 에너지 효율성 확보는 물론이고 공항에 대한 인식 자체를 탈바꿈시킨 사례. 하나의 아이디어가 도시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주여행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듯 노먼 포스터가 생각하는 ‘미래 건축’ 또한 지구 밖을 향해 있다.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는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달 거주지 프로젝트(2012)와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2015)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주력했던 부분 중 하나가 건설 자재를 지구에서부터 운송해오는 비효율성을 피하고 현지의 재료를 토대로 건축물을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달에서 로봇을 활용한 3D 프린팅과 달 표면에 있는 먼지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것을 고안됐다. 환경이 다른 화성에서는 닫혀 있는 건물을 건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타당성 조사를 통해 발견한 사실. 놀랍게도 두 프로젝트 모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실행되었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영감을 발전시켜 2016년 드론 공항을 고안했다. 드론 공항은 중앙아프리카의 고립된 지역에 긴급 생필품이나 의약품을 전달하기 위한 항공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
전시는 전시장 안으로 건축물을 들여오지 못하는 한계를 다양한 건축 모델과 설계 도면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초기 스터디 단계부터 따라갈 수 있으며, 건축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별도의 이머시브 룸을 둔 것도 돋보인다. 프랑스 나르본의 ‘나르보 비아 박물관’(2021)을 시작으로 영국 맨체스터의 ‘매기센터’(2016),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바티칸 예배당’(2018)까지 총 13개의 대표작을 몰입도 높은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관람이 즐겁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앱을 통해 음성 작품 해설을 함께 들으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노먼 포스터의 건축물을 단순히 랜드마크로 인식했다면 더욱 새롭게 다가올 전시. “50년에 걸쳐 이루어진 역사를 통해 영감을 얻고 ‘미래긍정’이라는 타이틀처럼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가길 바란다”는 포스터 + 파트너스의 마릴루 시콜리 시니어 파트너(건축가)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