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김동해 2인전, 〈비로소 밤〉
오는 3월 11일부터 4월 4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비로소 밤>전은 비가시의 영역을 넘나드는 두 작가의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두 작가, 이선과 김동해가 만났다. 오는 3월 11일부터 4월 4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비가시의 영역을 넘나드는 두 작가의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공예와 디자인이라는 일상적 예술을 통해 삶의 표면 너머를 이야기한다.

전시 제목인 ‘비로소 밤’은 낮의 소란에 가려진 것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 어떤 대상이나 흔적에 관심을 갖고 있나?
김동해 얼마 전 개인전을 열었는데, 전시 제목을 ‘고유한 연루’라고 지었다. 작고 사소한 존재일지라도 우주와 맞닿아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나는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종종 영감을 받는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 잔잔한 호수의 파동을 유심히 바라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존재가 얽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평소 망각하고 있던 것을 감각한 순간,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즐긴다.
이선 나는 경제적 효율과 제도적 서사에서 밀려난 것,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공예에 국한해 말하자면, 완성된 기법과 형식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흔적에 주목한다. 떨어져 나온 한지 파편, 반복적인 손의 노동이 남긴 섬유의 결, 경제적 이유 탓에 지속되지 못한 제작 방식 같은 것 말이다. 전통 공예를 복원하려는 접근 방식과는 다르다. 오히려 공예가 어떤 기준을 두고 재료와 기법을 선택하고 배제했는지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 전통을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끊임없이 편집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선 작가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때 경험이 ‘버려진 것’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선 옷을 한 벌 완성하면 폐기물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손질한 원단이 가위질 한 번에 옷이 되기도 하지만 자투리가 되어 버려지는 부분도 있다. 왜인지는 몰라도 학생 때부터 완성된 옷보다 버려진 것에 더 눈길이 갔다. 그때부터 옷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을 다시 생산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투리 실과 원단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션 산업의 작동 구조, 그리고 그것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버려진 것에 대한 나의 관심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에 대한 구조적 인식에 가깝다.


(오른쪽) 이선, ‘한지탑’
패스트 패션과 일회성 소비문화에 대항할 수 있는 소재로 한지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선 한지는 쉽게 찢어지는 연약한 소재인 동시에 오랜 시간 보존할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 재료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기록과 보존의 매체로 사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작업의 주재료로 한지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지속 가능하거나 자연 친화적이라는 이유를 넘어, 패션 산업 내부에서의 시간과 소비의 관계를 가시화하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의 문제는 옷의 물리적 수명보다 상징적·사회적 수명이 먼저 다하도록 유도하는데 있다. 업계 안팎에 팽배한 일회성, 일시성, 폐기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한지에 주목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내게 한지는 단순한 전통 소재 이상이다. 소비의 속도와 물질의 시간성 사이의 간극을 시각화하는 재료이고, 쉽게 만들고 버려지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할 수 있는 도구다.
최근에는 한지를 소재로 한 오브제 작업도 선보인다. 옷을 넘어 추상적인 오브제의 영역까지 매체를 확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선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옮겨갔다. 과거에는 패션 산업의 생산 구조와 소비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데 치중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전통-공예 인간-사회의 근본적인 상호작용 자체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오브제 작업은 이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추상적인 오브제로의 확장은 매체의 변화라기보다 문제의식을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다루기 위한 방식의 전환에 가깝다.

김동해 작가는 빛, 그림자, 바람 등 물성이 없는 대상에 관심이 많다. 사물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김동해 종종 여행지의 유명한 건축물을 구경하러 다니곤 했다. 근사한 건축물에 들어설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낀 감각이 있는데, 바로 ‘맥락’이었다. 건물 자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팎을 둘러싼 무형의 가치와 맥락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어떤 건물은 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또 어떤 건물은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 마치 악기에서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건축이 선사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경험한 뒤 나의 작업에도 물질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의 비물질적인 상호작용을 포착하기 위한 도구로 금속을 선택한 게 다소 의아하다. 강도가 높고 변형이 적은 소재인데.
김동해 금속은 풍부한 조형적 가능성을 지닌 소재다. 변형이 적고 단단한 덕분에 작은 면적만으로도 강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금속 선을 성기게 엮는 나의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기억과 시간, 물질과 공간을 연결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한편 얼기설기 연결된 금속 선 사이로 배경이 엿보이는데, 이 역시 소재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나는 단단한 금속을 재료로 다루지만 언제나 그 안에 여백을 포함하려고 한다. 때로는 덜어냄으로써 더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작품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주변 환경과 상보적인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더하기보다는 어떻게 덜어낼지 고민한다.


지우헌의 공간적 특성이 작품에 영향을 준 지점이 있나?
이선 지우헌은 수평과 수직 구조가 분명하면서도 여백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절제된 구조가 작품의 물성과 밀도를 뚜렷하게 드러내더라.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으로 공간을 채우기보다, 전시 공간과 작품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도록 구성하는 데 치중했다. 공간이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로 작동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해 특별히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한옥과 화이트 큐브가 뒤섞인 전시 공간이 내 작업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돌과 금속을, 이선 작가는 한지를 사용하니 소재 면에서도 조화로울 듯하다. 지우헌 전시를 통해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 있나?
이선 2023년 작인 ‘한지탑’을 변주한 ‘돌탑’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한지탑’은 한지로 만든 돌을 쌓아 올린 3차원 조형 작업으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상징적 행위인 돌 쌓기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한지탑’의 3차원적 조형성을 평면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돌탑을 유기적인 선으로 분할해 여러 조각으로 나눈 뒤 각각을 다시 독립된 단위로 분리했다. 분리된 조각들은 관람객에 의해 서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흩어진 돌이 하나로 모여 탑을 이루는 구작의 구조와는 반대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과정은 여전히 내게 돌을 쌓는 것과 유사한 수행적 경험을 선사한다. 물리적 형태는 추상적으로 전환되었지만 축적된 시간과 몸짓은 여전히 작업의 중심에 존재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이선 무언가를 새롭게 이해하기보다는 잠시 속도를 늦춰보기를 바란다. 일상에서는 대개 선택된 것, 조명된 것을 고민 없이 소비하고 버리는 걸 반복하지 않나.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보이지 않던 결, 침전된 시간, 사소한 표면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쉼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김동해 멈춘 듯 보이는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세계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관람객이 가만히 서서 작품을 바라보고 감각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선, ‘Padding D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