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

취약함 속에 피어난 단단한 안식처

2026년 프리츠커 건축상의 영예는 칠레의 건축가 스밀랸 라디치(Smiljan Radić)에게 돌아갔다. 그는 영속적인 기념비를 짓는 대신, 현실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취약함’을 건축의 핵심 가치로 끌어올린다. 건축을 부지의 지배자가 아닌 ‘정중한 손님’으로 정의하며, 장소가 품은 비연속적인 역사를 재료의 질감으로 번역해 내는 그의 독보적인 철학을 짚어본다.

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

건축계의 노벨상, 2026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하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주인공은 칠레의 건축가 스밀랸 라디치 클라르케(Smiljan Radić Clarke, 이하 스밀랸 라디치)다. 그는 2016년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에 이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두 번째 칠레 건축가로, 조형적 과시보다는 재료의 실험과 문화적 기억, 그리고 인간의 취약함을 탐구하는 건축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아왔다.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그는 불확실성과 재료 실험, 문화적 기억의 교차점에서 근거 없는 확신보다 취약함을 지향한다”라며 “그의 건물은 일시적이고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취약함을 삶의 본질적 조건으로 포용하는 조용한 안식처를 제공한다”라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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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jan Radić Clarke, photo courtesy of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특히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건축이 지녀야 할 인간적 척도와 정서적 지능을 놓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높게 평가되었다. 심사위원장이자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라디치는 매 작업에서 건축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로 돌아가 아직 만져지지 않은 한계를 탐구하며 급진적인 독창성을 보여준다”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를 인공 환경과 인간 조건의 가장 깊은 본질로 인도하는 건축가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뿌리를 내린 건축가

1965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라디치는 아버지는 크로아티아, 어머니는 영국 출신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이러한 배경은 그에게 소속감에 대한 깊은 인식을 심어주었으며, 삶을 ‘단순히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립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게 했다. 그는 “때로는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자유를 준다”라고 회상했다.

건축으로의 길은 점진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드로잉을 즐겼던 그는 14세 때 미술 교사의 과제로 건축 디자인을 처음 접했다. 그는 칠레 가톨릭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나 졸업 시험에서 한차례 낙방하는 고배를 마셨다. 좌절은 오히려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세상을 여행하며 건축가로서의 단단한 자양분을 쌓았다.

아이디어는 사물 안에 깃든다. 나는 항상 타인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

스밀랸 라디치

1995년, 그는 산티아고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무소 ‘스밀랸 라디치 클라르케’를 설립했다. 대형 사무소로 확장하기보다 의도적으로 소규모의 친밀한 체제를 유지하며 건축의 본질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라디치는 개인적인 탐구를 넘어 국제적인 무대로 커리어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일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가 기획한 제12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화강암과 삼나무를 활용한 설치 작품 ‘물고기 속에 숨은 소년(The Boy Hidden in a Fish)’을 선보였다. 거대한 덩어리 안에 인간의 형상을 수용하는 이 독특한 구조물은 신체적,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며 그를 주목받는 건축가의 반열에 올렸다. 이어 2014년에는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설계자로 선정되어, 거대한 천연석 위에 반투명 섬유유리 쉘을 얹은 독창적인 임시 안식처를 구현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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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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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Iwan Baan

그의 작업은 학문적, 예술적 가치를 모두 인정받아 2018년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로부터 아놀드 W. 브루너 기념상을 받았으며, 2022년에는 파나메리칸 건축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2017년부터 그는 자신의 홈 스튜디오 내에 ‘가냘픈 건축 재단(Fundación de Arquitectura Frágil)’을 설립해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시도와 공공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시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건축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해 온 여정이다.

취약함을 옹호하는 건축

스밀랸 라디치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이나 조형미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반복 가능한 건축 언어를 거부하고, 대신 각 프로젝트가 놓인 맥락과 인류학적 인식, 그리고 ‘비연속적인 역사’에 기반해 고유한 해법을 도출한다. 이러한 건축가의 태도는 건축이 영구적인 기념비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연약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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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tero,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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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tero,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그는 불확실성과 재료의 실험, 그리고 문화적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서 건축의 ‘완전함’보다는 ‘취약함(Fragility)’에 주목한다. 라디치의 건물들이 때로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며 의도적으로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취약함을 우리 삶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물들을 통해 오히려 낙관적이고 조용한 기쁨이 깃든 안식처를 제공한다.

건축은 거대하고 영속적인 형태와 파리의 생명처럼 덧없고 가냘픈 구조물 사이의 긴장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 이질적인 시간의 긴장 속에서 정서적 현존감을 지닌 경험을 창조하여,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세상을 멈춰 서서 재고하도록 독려한다.

스밀랸 라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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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e House, photo courtesy of Hisao Suz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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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e House,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이러한 ‘취약한 건축’의 실천은 대지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라디치는 건축을 부지의 지배자가 아닌 ‘손님’으로 정의하며, 풍경과 집단 기억의 우선순위를 존중한다. 대표적으로 칠레 파푸도에 위치한 ‘피테 하우스(2005)’는 거센 바람과 강렬한 빛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건물이 지면에 거의 닿지 않은 채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며 부지와의 섬세한 접점을 형성한다. 또한 ‘시의 직각을 위한 집'(2013)은 전통적인 좌표 축을 거부하고 위를 향해 열린 개구부를 통해 빛과 시간을 포착하며, 인간의 내면적 취약함을 정적으로 응시하게 하는 은신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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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for the Poem of the Right Angle,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라디치에게 건축의 외연은 복합적인 탐구의 대상이다. 그에게 안식처는 현실로부터의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며, 은신처는 그 안의 삶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그는 “우리에겐 취약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정적인 장소로서의 보호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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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Mestizo, photo courtesy of Gonzalo Pu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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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Gonzalo Puga

그의 건축은 엄격한 형식적 주장보다는 정교한 시공의 규율을 통해 그 가치를 드러낸다. 콘크리트, 돌, 목재, 유리는 서로 의도적인 관계를 맺으며 무게, 빛, 소리, 그리고 둘러싸임을 형성한다. 라디치에게 시공은 질감과 질량이 형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나르는 일종의 ‘이야기하기’와도 같다. 결과적으로 그의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 유물에 머물지 않고 신체적 현존을 요구하며, 사람들을 더 깊은 근원과 연결하려는 지속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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