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봐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악동과 거장, 그 사이의 예술가 '데이미언 허스트'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2026년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는 35년여에 걸친 작가의 여정을 50여 점의 대표작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삶과 죽음의 잔혹한 실체, 영생을 향한 인간의 집착,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자본과 과학의 논리. 오는 2026년 3월 2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는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어온 가치들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1988년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영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꾼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주축이자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작가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 성격으로 기획되었으며, 작가의 초기 콜라주부터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대형 설치작,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미공개 연작까지 총 50여 점을 소개한다.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국제적인 작가의 혁신적 실험과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현대사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장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는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단순한 관람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이 거장의 전시를 보아야 할까? 다섯 가지 핵심적인 이유로 그 답을 대신한다.
신화의 시작, YBA의 정수를 만나다
우리가 지금 데이미언 허스트를 이야기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인 ‘YBA 신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1988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시절, 그는 방치된 부두 창고에서 그룹전 <프리즈>를 직접 기획하며 기성의 제도와 고정 관념에 도전했다. 전시의 1부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서는 당시 작가가 정체성을 고민하며 만든 ‘자화상'(1987)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재배열한 애너그램 ‘데님 셔츠(a denim shirt)’를 활용해 자수를 새긴 이 작품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하던 청년 허스트의 재치 있는 조형 실험을 보여준다. 또한 노인의 빈집에서 수집한 잡동사니로 만든 초기 콜라주 ‘작고 붉은 바퀴로부터의 확장'(1985)은 죽음을 향해 이어지는 인간의 삶 자체를 구현하려 한 작가의 초기 의도를 드러내어 눈길을 끈다.


(오른쪽) <자화상〉, 1987 데님 셔츠, 자수, 옷걸이, 나사, 벽면 플러그, 95 × 6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유통과 기획, 수집과 전시 전 과정에 관여하며 미술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재편하는 데 몰두했다. 이는 오늘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편집자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어 디자인과 기획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프리즈> 전시는 참여 학생들이 공간을 직접 연출하고 기업 후원을 통해 도록을 만들어 홍보하는 등 현대적인 브랜딩 전략을 미술계에 도입한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낡은 폐허 위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디자인’해 낸 그의 행보는 동시대 크리에이터들이 가져야 할 입체적인 시각을 다시금 일깨운다.
죽음이라는 물리적 실체와의 대면
두 번째 이유는 허스트 예술의 핵심 주제인 ‘죽음’을 가장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부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서는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속에 거대한 상어를 넣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을 만날 수 있다.

2012년 영국 테이트 모던 전시 이후 무려 13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관객이 죽음의 공포를 물리적 실체로 직면하게 만든다. 금방이라도 관객을 덮칠 듯 생생한 모습으로 박제된 상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동시에 이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불멸에 대한 욕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어 인상적이다.

함께 전시된 ‘천년'(1990) 역시 주목해야 한다.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 살충기로 구성된 이 거대한 설치작은 삶과 죽음의 순환이 얼마나 냉정하고 잔혹한 자연의 섭리인지를 날 것 그대로 시각화한다. 파리가 부화하고 피가 흐르는 소 머리를 찾아 이동하다가 살충기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실시간의 과정은 생존과 소멸의 무작위성을 암시한다. 아울러 관객이 내부를 볼 수는 있지만 개입할 수는 없게 설계된 유리 구조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연상시킨다.
욕망을 투영한 극단적인 아름다움
눈을 멀게 할 만큼 찬란한 빛 이면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마주하는 경험 또한 이번 전시의 백미다. 3부 ‘침묵의 사치’ 섹션은 그 제목처럼 시각적 위용 뒤에 숨겨진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파고든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백금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다. 두개골의 치아는 18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제 인간 해골이다. 작가는 백금으로 주조한 두개골 형상에 결합하고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어 작품을 완성했다.
영원함의 상징인 다이아몬드와 소멸을 의미하는 해골의 결합은 인간의 집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에(For the love of God), 다음엔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니?”라는 작가 어머니의 탄식 섞인 감탄사에서 제목을 따온 이 오브제는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허무를 대변한다.


나비 날개를 사용한 대형 연작 역시 극단적인 아름다움의 이면을 보여준다. 수천 마리의 실제 나비 날개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배열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가 대표적이다. 멀리서는 찬란하고 숭고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이것이 수천 개의 사체로 이루어졌다는 잔혹한 실체를 마주한다. 또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다는 성인의 도상을 빌려온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2007)과 같은 은 조각은 종교와 과학, 예술의 미묘한 접점을 파격적으로 보여준다.
자본과 의학을 제단에 올린 전략가
네 번째 이유는 예술을 단순히 창작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유통과 경영, 자본의 영역으로 확장한 허스트만의 독보적인 전략이다. 그는 미술 시장의 관례를 깨고 경매사와 직접 계약하여 작품을 판매하거나 자신의 작품 콘셉트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 전례 없는 시도로 늘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전시장 내부에 일부 재현된 레스토랑 ‘약국(Pharmacy)’ 공간은 그가 1998년 런던에 오픈해 운영했던 곳으로, 우리가 현대 의학에 부여하는 권위가 어떠한 시각적·공간적 경험에 기반하는지 자각하게 만든다.


한편 알약과 약장을 이용한 ‘죄인'(1988) 등의 작품들은 삶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강박적 욕망에 주목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약장을 보며 마치 절대적 믿음이 투영된 ‘제단’처럼 느꼈고, 이를 현대인이 의학과 자본에 거는 영생의 믿음으로 연결했다. 그의 작품이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을 비롯해 영국박물관, MoMA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 또한 창작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고민하는 이들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강물처럼 흐르는 사유, 완성이 아닌 과정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창작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할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4부 ‘작가의 스튜디오: 진행 중인 연작’은 런던에 있는 허스트의 작업실 ‘리버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와 재구성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전시 직전까지 작가가 작업하던 미완의 상태인 ‘리버 페인팅’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사용했던 붓과 페인트, 손때 묻은 작업복과 신발, 그리고 그가 직접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는 예술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사람은 강과 같고 그 강은 우리 모두를 관통해 흘러간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곳은 예술이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과정임을 몸소 체험하게 한다. 관객은 이곳에서 미완의 캔버스를 보며 작가의 사유와 행위가 축적되는 창작의 최전선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35년에 걸친 데이미언 허스트의 여정을 통해 현대사회의 가치와 우리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안한다. 허스트의 작품은 명확한 해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과 욕망의 실체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될 터. 전시 기간 중 상시 운영되는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와 퍼포먼스 ‘말하지 않는 약국’ 등을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기간 2026년 3월 20일 – 6월 28일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한미약품, 한미사이언스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