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미술관을 180도 뒤집은 김수자 작가
19세기 프레스코 천장화가 발밑에 펼쳐지는 황홀한 경험 <To Breathe—Constellation(호흡 – 별자리)>
파리에 위치한 부르스 드 코메로스 미술관에서 김수자 작가의 <To Breathe—Constellation(호흡 – 별자리)> 작품이 전시 중이다. 400장이 넘는 엄청난 양의 거울을 바닥에 설치해 끝 없이 펼쳐지는 무한의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 특징.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없어진 거울 공간에서 관람객은 두 영역을 이어주는 하나의 '바늘'이 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장.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을 아이가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뒤집힌 발밑의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 대체 이 멋진 공간은 어디이며, 왜 이러한 공간을 구현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여기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Bourse de Commerce(부르스 드 코메로스)다. 근현대 미술품 1만여 점을 소장한 프랑수아 피노의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파리의 옛 상업거래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다. 2021년 개관 당시 안도 다다오가 공간 리모델링에 참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술 애호가는 물론, 건축 애호가의 관심도 한 몸에 받았다.
이 미술관의 메인 공간은 19세기 프레스코 천장화가 돋보이는 돔 구조의 ‘로툰다’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건축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는 이 공간을 우리에게 보따리 작가로 알려진 김수자 작가가 180도 뒤집어 버렸다. 작가는 로툰다 바닥에 400장 이상의 거울을 설치하여 프레스코 천장화와 돔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이 관람객의 발 아래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작품 <To Breathe—Constellation(호흡 – 별자리)>을 선보였다.
로툰다를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버린 이 작품은 3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열리는 전시 <Le monde comme il va(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일부로, 김수자는 전시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을 작가에게 부여하는 ‘The carte blanche(까르트 블랑쉬)’로 초청받았다. 이에 작가는 높이 9m, 지름 29m의 돔 구조의 건축물 바닥 전면에 거울을 설치하여 황홀한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작가는 돔 천장을 바닥으로 이끌어 내림으로써 건축 구조를 강조하고,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대표했던 보따리를 건축적으로 구현했다.
천장과 바닥을 이어주는 바늘이 되다
거울로 하나의 구체가 된 돔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보따리를 의미합니다.
이 작품은 건축적 보따리를 암시합니다
김수자 작가
작가가 자기 몸을, 세계를 얽는 바늘처럼 사용했듯이 관람객은 천장과 바닥을 하나로 잇는 작품 안에서 바늘이 되어 여러 가지를 엮는다. 전시장을 걸어 다니면서 관람객은 거울에 비친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보고 개인과 공간의 관계를 신체적으로 느끼면서 정체성과 나와 타자, 삶과 죽음, 현실과 가상 사이에 있는 자기의 위치를 질문하고 깨닫는다.
관객이 거울을 바라볼 때, 그와 공간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의 신체와 가상의 신체가 만나며 대화가 일어나죠.
관람객의 시선은 재봉틀이 되어 나와 타인을 연결하고, 내면과 현실이 연결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느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자 작가
‘보따리 작가’로 유명한 김수자는 자기 몸을 바늘에 비유하며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사람과 삶의 궤적은 엮었다. 이 과정을 담은 작품들은 정체성, 개인과 집단,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현실과 예술 등과 같은 이슈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주제들은 김수자 작가를 대표하는 오브제 – 바늘, 보따리를 넘어 거울로도 표현된다. “거울은 하나의 경계이자 캔버스로, 혹은 천으로서 실재를 감싸는 동시에 펼쳐집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끊임없이 바느질하며 대화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울을 하나의 펼쳐진 바늘로 보고 있습니다.”
김수자 작가에게 거울이란,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비추는 오브제로서 존재를 각성하게 만드는 오브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화인류학적, 종교적, 정치적 이슈까지 성찰하게 하며 곧 우주까지 바라보는 통시적인 시각을 깨닫도록 만드는 오브제인 것이다.
<호흡 – 별자리>의 거울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닌다. 다만, 이전에는 거울이 이미지 혹은 설치 작품으로 다가왔다면, <호흡 – 별자리>에서는 관람객의 경험을 이끄는 초대장이 된다. 거울의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의 시선과 호흡, 걷기, 서기 등 모든 행위가 작품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돔 공간을 비추는 거울로 인해 관람객은 자기 몸이 수직 축이 되는 구체 안에 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관객이 이 공간에서 하는 모든 무의식적 활동은 작품의 구성요소가 됩니다.”
작가의 지난 40년을 돌아보다
한편, 미술관은 작가에게 또 다른 공간을 선사했다. 로툰다를 둘러싼 복도에 있는 24개의 쇼케이스에는 작가의 지난 40년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따리부터 바느질하는 손 모양을 본뜬 조각, 점토로 빚은 구, 달항아리, 모래알, 곡물 등 단순한 색과 형태를 지닌 작품에는 작가가 평생 이야기한 주제- 정체성, 경계, 기억, 망명, 이동, 바느질 -가 담겨 있다. 고풍스러운 고가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작품들은 공간 속의 또 다른 공간, 우주 속의 소우주가 된다.
미술관 지하 2층에는 김수자 작가의 영상 작품이 상영된다. FOYER & STUDIO(추아이에&스튜디오) 관에서는 피노 컬렉션이 보유한 작가의 영상 작품 <바늘 여인(1999-2000)>이 상영된다. 이 작품은 카메라를 등지고 홀로 보따리 위에 앉아서 세계의 4개 도시(상하이, 델리, 도쿄, 뉴욕)를 부유하는 작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보따리라는 우리나라의 정서가 담긴 사물을 통해 정체성, 경계, 망명, 인간의 삶 등을 이야기한다.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서 도시와 상호작용을 하는 작가의 뒷모습은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축이면서 서로 다른 세상을 꿰매고 엮는 바늘이 된다. <바늘 여인>은 로툰다에서 전시되고 있는 <호흡 – 별자리>와 결을 함께 하고 있으며, 작가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같은 지하 2층, AUDITORIUM(오디토리움) 관에서는 김수자 작가의 16mm 영화 시리즈 <실의 궤적> 전 편이 최초로 한곳에 모여서 상영된다. 세계 여러 대륙을 이동하며 촬영한 본 영화는 총 6편이다. 관계, 몸짓, 장인의 작업, 건축, 자연, 농업 등이 직물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얽혀 한 편의 문화 모자이크 같다. 인류학적 시선까지 느껴지는 영화들은 서사시처럼 느껴져 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다.
김수자 작가의 작품이 포함된 <Le monde comme il va(있는 그대로의 세상)>는 피노 컬렉션 중 1980년대 이후의 작품을 선별한 전시다. 데미안 허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 안네 임호프, 폴 타부레 등 현대 예술을 이끈 유명 작가와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는 현시대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철학자이자 선지자, 시인 혹은 공상가라고 말한다. 예술가는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시대를 비판하면서도 희망과 우아함을 말하기도 한다. 현재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 속에서 관람객은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하기보단, 세상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며 우리는 그 사이에 서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A와 B 사이에 있는 존재. 김수자 작가의 <호흡 – 별자리>에서도 관람객은 동일한 위치에 있게 된다. 거울로 구체가 된 공간에서 관람객은 수직 축이 되어 머리 위 세상과 발 아래 세상 사이에 서 있는다. 부르스 드 코메로스는 “미술관의 역사적인 공간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수자 작가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관람객에게 단순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난 공간에서 주체가 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역사적인 공간을 뒤엎은 작품을 경험하기 위해 많은 이가 미술관을 방문하고 있다. 혹 프랑스 파리에 방문해서 이 작품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사진 찍는 걸 잠시 멈추고 천천히 걷고 서서 혹은 앉거나 누워서 공간에 울리는 호흡과 소리, 움직임을 가만히 느껴보자. 앞선 작가의 말처럼, 공간이 뒤집힌 신기함보단 나와 타인의 움직임을 느끼고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한 작품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