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디자이너와 마술사의 공통점 스테판 디에즈 Stefan Diez

뮌헨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위크(MCBW)가 한창이던 지난 3월 10일, 뮌헨 도심가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훌륭한 디자이너와 마술사의 공통점 스테판 디에즈 Stefan Diez
1971년 뮌헨 근교 소도시 프라이징 (Freising)에서 태어난 스테판 디에즈는 4대째 이어지는 목수 집안 출신으로, 공방에서 소목장 일을 하던 부모의 작업실을 놀이터 삼아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레 가구공으로서의 수공예 정신과 목공 기술을 익힌 뒤 1996년 슈투트가르트 예술학교 (State Academy of Fine Arts Stuttgart)에 진학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독일 출신의 디자인 거장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의 지도 아래 산업 디자인을 공부한 뒤 그의 어시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뮌헨으로 돌아와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의 오피스에서 일하다가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열었다. 2007~2014년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디자인학교에서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지냈고, 2015년에는 스웨덴의 룬드 산업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했다. 현재 모로소(Moroso), e15, 헤이(Hay), 로젠탈(Rosenthal), 토네트(Thonet), 비비아(Vibia), 빌칸(Wilkhahn) 등 세계적인 가구·리빙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www.diezoffice.com

독일 내 디자인 허브는 단연 뮌헨이다. 베를린이 패션과 아트를 하기 좋은 곳이라면 뮌헨은 수공예와 제조업, 상공업이 균형을 이루며 디자인 비즈니스를 하기 최적화된 도시다. 1907년 독일의 건축가, 장인, 산업 디자이너가 모여 독일공작연맹을 결성한 근거지답게 표준화와 생산 방식, 품질 향상을 아우르는 기능주의적 가치가 여전히 가격 경쟁력보다 우위를 점한다. 스테판 디에즈(Stefan Diez)는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그는 지난 1월 17일부터 오는 6월 17일까지 쾰른 응용 미술관(Museum fur Angewandte Kunst in Koln, 마크MAKK)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이는 중이기도 하다. 뮌헨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위크(MCBW)가 한창이던 지난 3월 10일, 뮌헨 도심가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글: 김은아 기자, 사진 제공: 디에즈오피스

2002년 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 디에즈오피스(DiezOffice)는 뮌헨 중심가의 광장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조용한 주택가 건물 뒤뜰에 있다. 과거 목공실로 쓰던 층고가 높은 헛간을 2008년 직접 레노베이션한 공간으로 7명의 디자이너가 3D 모델링 작업부터 목공, 용접까지 소화해낸다. 문을 두드리자 출입문 바로 옆 책상에 자리를 둔 스테판 디에즈가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간단히 인사하고 자연스레 최근 작업 중인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일일이 시연해 보였다. 완제품인 줄만 알았던 여러 개의 프로토타입 의자 위에 직접 앉아보는 사이 모카 포트로 진한 에스프레소를 끓여 내온 그는 스튜디오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데 매우 능숙해 보였다. 스튜디오는 다가오는 4월의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준비로 분주해 보였고, 직원들은 인터뷰 중인 스테판 디에즈에게 수시로 다가와 짧은 문답을 주고받았다.

밀라노 박람회를 앞두고 한창 바쁜 시기인 것 같다. 현재 어떤 작업을 하는 중인가?

밀라노에서 선보일 2개의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다. 독일의 의자 브랜드 바그너(Wagner), 스페인의 조명 브랜드 바비아(Vabia)와 각각 사무용 의자와 조명을 선보일 것이다. 두 클라이언트 모두 자기 분야에서 오랜 연구와 개발을 해온 기업으로 우리와 함께 일한 지 3년이 되어간다. 내 경험상 이만큼 장기적으로 디자이너가 연구와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협업 파트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덕분에 하나의 아이디어를 갖고 재료와 형태 등 여러 가지를 변주하는 실험을 즐기고 있다.

이 작업실에 사무용 의자의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제품이 여러 개 있다. 언뜻 형태가 다 비슷해 보이는데, 어떤 점이 다른가?

(손바닥만 한 네모난 장치를 보이며) 바그너 사무용 의자의 아이디어, 즉 디자인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 시험 중인 모든 의자가 무게와 각도가 조금씩 다른 이 장치를 달았기 때문에 사실 모두 다른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앉아보면 몸의 앞뒤 중심 잡기가 어려워서 좌우뿐 아니라 사방으로 마구 흔들릴 것이다. 자세를 꼿꼿이 해서 스스로 균형을 찾아야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좌석 아랫부분에 장착한 이 장치가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내부 메커니즘을 설계해 알루미늄 튜브로 좌석에 연결했다. 이런 식으로 부품의 메커니즘을 엔지니어링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 장치를 제외한 좌석이나 등받이 등의 요소를 다르게 만들면 100가지가 넘는 다른 디자인이 나오지만 결국 아이디어는 하나다.

디에즈오피스 내부 전경 과거 목공실로 쓰던 공간을 직접 레노베이션해 2008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스튜디오 한쪽에 목공실과 용접실이 있어 모든 프로토타입을 구현해낼 수 있다. 후디니 의자와 뉴 오더 선반, 로프 트릭 조명을 실제로 사용 중인 스튜디오 모습.
또 하나의 새로운 프로젝트, 바비아와 협업한 조명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발표하는 제품은 완제품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인 방법론을 시각화한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제품’보다 ‘아이디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다. 바비아와의 협업은 우리가 LED 빛을 가장 밝고 고르게 퍼뜨려줄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사무 노구치의 작업인 종이 조명의 은은한 느낌처럼 마치 조명 안에 전구가 없는 듯 자연스럽게 LED 빛을 내는 소재를 원했다. PVC, 아크릴 등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택한 유리를 활용한 조명이 바비아와의 프로젝트다. 납작하고 둥근 판, 천장용 기다란 실린더 등의 다양한 형태에 LED 전구를 숨기듯 최소한의 면적에 설치했다. 광원이 두드러지지 않게 해 유리 자체에서 마법같이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자 했다.

대학 시절 스테판 디에즈와 동료 크리스토페 데 라 퐁텐(Christophe de la Fontaine)은 2차원 형태의 소재를 구부리고 접어서 3차원으로 만드는 실험에 흥미를 느꼈다. 3D 모델링 소프트웨어 라이노세로스(Rhinoceros)를 사용해 그린 모델을 입체 다각형으로 출력한 뒤 선을 따라 접어 입체적으로 구현해내는 접근 방식이었다. 이를 카드보드지에 적용해 탄생한 게 1999년 ‘인스턴트 라운지’ 시리즈다. 이름 그대로 두꺼운 종이 판자가 순식간에 테이블이나 의자가 되었고 계속해서 크기, 형태, 소재를 달리하며 표현 방식을 확장해나갔다. 그리고 2006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모로소와 협업해 선보인 벤트(Bent) 시리즈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카드보드지 대신 알루미늄 판자에 레이저 커팅을 가해 눌러 접어 만든 것이었는데, 소재나 스케일이 달라도 기계와 손을 모두 사용하는 원칙은 고수했다. 그는 컴퓨터로 아이디어를 디지털화하고 기계 작업 공정을 거치지만 마지막으로 구부리고 누르는 작업에는 다시 손맛을 담는 것을 중시한다. 이렇게 하면 “나와 내가 디자인한 사물 간 관계를 정립하는 느낌이 들어 좋다”라는 스테판 디에즈는 “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다시 말해 ‘빅데이터로 분류할 수 없는 감각적 측면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아닐까?” 하고 되묻는다.

2012년 서울의 리움에서 렘 콜하스가 건축한 블랙 박스 라운지(Black Box Lounge)의 리모델링을 맡은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와 협업해 모로소의 ‘벤트’를 변주한 테이블과 의자를 선보였다. 납작한 알루미늄판을 접어서 입체로 표현한 가구를 보고 국내 언론은 당신을 ‘사물의 입체화에 능한 디자이너’로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평면을 입체로 만드는 실험에 주력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주어진 재료와 핵심적인 표현 방식을 최대한 변주해서 색다르게 시각화하는 것이 내 관심사다. 디자인은 요리와 마찬가지로 재료를 최대한 단순하게 사용해야 명료한 맛이 난다. 되도록이면 한 프로젝트당 하나의 원리, 하나의 재료만 강조하려는 이유다. 화려한 형태나 알록달록한 색깔을 무조건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명료히 보여주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이다.

모로소(Moroso)의 ‘벤트(Bent)’ 벤치와 소파, 2006 얇은 알루미늄판을 용도에 맞게 레이저로 이음매를 살짝 커팅해 프레스기로 접어 완성한 뒤 손으로 직접 구부려 마무리했다. 가구 형태가 곧 과정을 말해주는 디자인 방식을 실험한 결과다. ©Gerhardt Kellermann
2016년에는 일본의 아리타 도자 마을과 협업해 25개의 테이블웨어 ‘2016/SD’(아리타가 2016년에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한 모든 프로젝트 이름은 ‘2016/’ 뒤에 각 디자이너의 이니셜을 적어 넣은 것이다)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로서 일본 전통 공예가와의 협업 과정은 어땠나?

일본 규슈 사가현 서쪽에 있는 조용한 산간 마을 아리타는 마을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도자 문화와 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200곳이 넘는 공방들끼리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은 2016년 아리타 도자기 탄생 400주년을 맞아 다양한 디자이너와 새로운 협업을 모색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우리와도 연이 닿았다. 우리가 뮌헨의 작업실에서 회반죽을 사용해 직접 손으로 실물 사이즈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일본으로 보내면, 아리타 지역 장인 가와조에 세이잔(Kawazoe Seizan) 팀이 공방에서 하나하나 대량생산할 수 있는 정교한 몰드를 제작하는 식이었다. 아리타의 미니멀한 접근법을 차용한 우리의 디자인을 다시 아리타 장인의 손길로 섬세히 산업화하는 실험이었다.

스테판 디에즈의 작업실 곳곳에 헤이와 2012년에 협업한 선반 & 가구 시스템 ‘뉴 오더(New Order)’를 사용하고 있다. 기본 선반으로는 물론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책상이나 옷장으로 활용한 것이 돋보였다. 뉴 오더는 원래 압축 알루미늄 소재의 선반으로 2010년 이스태블리시드 & 선스(Established & Sons)와 협업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지만, 제작 방식과 투자금이 어긋나 이후 양산이 중단된 적이 있는 프로젝트다. 다행히 곧 헤이를 만났고 알루미늄 축이 모이는 부분을 집게처럼 서로 맞물리는 처리 방식으로 모듈화에 최적화해 새로 설계했다. 모든 조합의 기본이 되는 알루미늄 선반을 다리 길이를 조정하고 상판을 달아 책상으로 변형했고, MDF 나무 판자를 끼워 넣어 옷장으로도 선보여 생산 비용을 크게 감소시켰다 뉴 오더는 스테판 디에즈가 생산 방식과 디자인, 단가 조절 등 복잡한 협업 과정을 특유의 시스템 설계로 풀어나간 점에서 특히 돋보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현재 쾰른의 마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는 9m 가까이 높게 쌓은 뉴 오더 선반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작품 자체가 거대한 전시 부스로 기능하며 그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선보이는 셈이다.

현재 마크에서 대규모 개인전 <풀 하우스: 디자인 by 스테판 디에즈>를 열고 있는데, 데뷔 15년 만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어떤 콘셉트로 구성했나?

풀 하우스란 말 그대로 ‘꽉 찼다’는 뜻이다. 나의 디자인이 물리적으로 박물관 구석구석을 채웠다는 의미다. 의자와 조명, 테이블 등 지난 15년간의 작업을 모아 나열하는 전시 방식은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회고전이라기보다 미래지향적인 현재를 담고 싶어 시장에 공식 론칭하지 않은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이겠다고 클라이언트에게 양해를 구했다. 바그너의 사무용 의자, e15의 메탈 폴딩 테이블, 바비아의 LED 조명 등이 그것이다.

전시 콘셉트 구상부터 전시 디자인까지 도맡았는데 공간의 높은 층고를 활용한 전시 디자인도 주목받고 있다.

마크는 1층부터 3층을 관통하는 9m의 높은 층고가 특징인 미술관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스케일의 공간에 일상 속 가구를 놓으면 전시가 평면적으로 지루해 보일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헤이와 협업한 선반이자 오피스 모듈 시스템인 뉴 오더를 전시 부스 삼아 늘어놓거나 높이 쌓았다. 뉴 오더 책상에는 전선이 안 보이게 정리하는 케이블 덕트도 있었고, 압축 알루미늄으로 만든 간결한 테이블 다리는 필요한 높이에 맞게 자르기도 수월했다.

2016/아리타의 테이블웨어 ‘SD’, 2016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 40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본 도자 장인 가와조에 세이잔과 협업한 25개의 테이블웨어. 기존 도자기 밑에 달린 다리나 그릇 테두리를 없애 얇은 두께감과 볼륨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그림 속 찻주전자에서 볼 수 있듯 가장 단순한 형태를 위해 뚜껑 손잡이마저 생략했는데, 이는 기울기에 따라 뚜껑 한쪽이 살짝 들리는 균형을 고안해냈기에 가능했다. ©Gerhardt Kellermann
“전시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같았다”라고 말한 전시 소개 인터뷰를 봤다. 준비 과정이 어땠나?

디자이너의 전시는 주제에 상관없이 ‘디자인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주어진 예산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전시란 각각의 프로젝트와 이를 둘러싼 공간의 구성 요소와 다양한 협업 기업이라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뉴 오더를 협업한 헤이에게 이번 전시 콘셉트를 설명해 흥미를 유발한 덕분에 조금 더 큰 사이즈로 뉴 오더를 제작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또한 전시에는 좋은 조명이 필수다. 전시가 열린 쾰른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조명 전문 기업 부슈펠트(Buschfeld)와의 협업도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단순히 그들의 핀 조명과 세트를 협찬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내가 헤이와 협업한 선반과 테이블로 전시를 하는데 여기에 최적화된 조명이 필요하다. 부슈펠트에도 헤이와 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새로운 제품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쾰른에 있는 마크는 1989년 문을 연 이래 유럽의 아트 & 크래프트 800여 년의 역사를 담아온 미술관이다. 2008년을 기점으로 마크는 디자인 섹션을 추가해 20세기, 21세기 북미와 서유럽의 디자인을 다루기 시작했다. 마크가 처음 선보인 디자인 전시는 특정 디자인과 관련 있는 순수 미술 사조를 병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입지를 다졌는데, 이를테면 몬드리안과 네덜란드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헤릿 릿펠트(Gerrit Thomas Rietveld)를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또한 종종 저명한 외부 큐레이터를 초빙해 공간을 내주는데, 2015년에는 디자인 저술가 레네 슈피츠(Rene Spitz)가 큐레이터를 맡아 일상 속 벽면 스위치부터 최초의 아이폰, 빅토리녹스의 맥가이버 나이프 등을 아우르는 시스템 디자인을 다룬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풀 하우스: 디자인 by 스테판 디에즈>가 장장 6개월에 걸쳐 열리고 있다.

디자이너는 최종 제작까지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먼저 질문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즉 가장 올바른 질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질문을 똑바로 아는 게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 클라이언트에게 우리의 아이디어를 들려주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설득한다. 클라이언트의 판타지를 공유하면서도 우리만의 관점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클라이언트도 열의가 생기고 우리가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를 잘 설득하는 스테판 디에즈의 구체적인 ‘영업 전략’이 있다면? (웃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꼽자면 시제품을 최대한 여러 개, 자세하게 만든다. 전략이라기보다 클라이언트가 우리의 아이디어에 기꺼이 투자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눈앞에 작동하는 모델이 있으면 이해도 설득도 훨씬 쉽다. 우리 스튜디오에서 만들 수 있다면 공장에서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된다. 이런 모델은 물론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도어 오프너(door opener) 역할을 해야 한다.

15년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접근 방식, 명확한 방향성이 생긴 것 같다. 초기에는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고군분투하며 완성한 뒤 과정을 다시 곱씹어봤다면, 이제는 모든 과정을 확실히 알고 계획적으로 실행한달까? 우리가 하는 일을 훨씬 더 잘하는 것 말고 획기적인 계획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뚜렷한 한계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마음껏 실험하도록 영감을 주는 협업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제약이지만 무궁무진한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옳은 디자인,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실제로 구현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면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롱 런던(Wrong.London)의 ‘로프 트릭(Rope Trick)’ 조명, 2015 인젝션 몰딩으로 제작한 알루미늄 전등갓이 달린 LED 플로어 램프. 플라스틱 압출 프로필 위에 텍스타일을 입힌 유연한 루프 손잡이가 특징으로, 180도로 전등 방향을 조절하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구성 요소별로 모듈화할 수 있게 디자인해 생산 단가를 낮춘 것도 중요 포인트. ©Jonathan-Mauloubier
‘너무 힘든 사랑은 옳은 사랑이 아니다’와 같은 맥락인가? (웃음)

(웃음) 바로 그거다. 나는 디자인을 마술사나 곡예사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곡예사가 경이로운 이유는 그가 구사하는 동작은 분명 누가 봐도 어렵고 대단하지만 이를 너무 자연스럽고 쉽게 해낸다는 데 있다. 이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의 전환이 너무 버거워 보이면 절대 멋지지 않다. 타고난 듯이, 자연스럽게, 마법처럼 연결되어야 탄성이 나온다.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어도 그렇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산업 디자이너가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여러 분야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과정별로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보유한 단 하나의 회사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협업은 필수적이고 종종 유익하다. 협업에 자신 있다고 말하는 스테판 디에즈에게 제조사는 곧 출판사와 같다. 출판사는 기획 의도와 전문성에 따라 다양한 필자를 섭외한다. 이때 필자가 훌륭한 글솜씨는 물론 제작과 출판, 유통 전 과정을 꿰뚫고 있다면 출판사는 그를 더 선호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조사 역시 제조와 직결되는 테크를 다루고 프레젠테이션에 능한 디자이너를 당연히 선호할 것이며, 스테판 디에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독보적인 업력을 지닌 디자이너다. 다양한 협업 파트너를 적절히 중재해 관심 있는 아이디어를 파고드는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지금 가장 주목할 만한 산업 디자이너 스테판 디에즈의 공공연한 영업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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