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솔올미술관에서 비로소 마주한, 아그네스 마틴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미술관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이 솔올미술관에서 8월 25일까지 열린다.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비로소 마주한, 아그네스 마틴

“You go there and sit and look.”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이 자신의 그림을 보러 오는 모든 사람에게 준 조언에 따라, 그곳에 가서 앉아서 보기 위해 강원도 강릉으로 향했다.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 ‘솔올’이라 불렸다는 강릉시 교동 일대의 높은 언덕에 고고하게 자리한 하얀 건물은 “세상을 등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아그네스 마틴을 처음 만나기에 가장 좋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 솔올미술관 제공

지금 솔올미술관에서는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국내 첫 미술관 전시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이 열리고 있다. 리움미술관, 일본의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과 나고야시 미술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디아파운데이션을 비롯해 페이스 갤러리, 조지 에코노무 컬렉션을 포함한 해외 소장자의 협력을 통해 순수 추상을 추구한 마틴의 주요 작품 54점이 두 개의 전시실에 배치되었다. 테이트 모던 관장을 역임했으며 2015년 아그네스 마틴의 회고전을 기획한 프란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가 객원 큐레이터로 기획에 참여해 더욱 기대감을 높였음은 물론이다.

“내 그림에는 사물도 공간도 선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형태도 없다. 내 그림들은 빛이고, 가벼움이고, 합쳐지는 것, 무정형성에 관한 것이어서 형태를 무너트린다. 당신은 바다를 보고 형태를 떠올리지 않는다. 마주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물들이 없는, 방해가 없는 세계, 장애물의 방해가 없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은, 바다를 보려고 텅 빈 해변을 가로지르듯 시야 속으로 그저 직행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966, 아그네스 마틴
‘무제’, 1955, 캔버스에 유채, 금속 페인트, 118.1 x 168.3 cm, 페이스 갤러리 ©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1912년 태어난 아그네스 마틴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캐나다 서스캐처원의 농장에서 성장한 후 193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컬럼비아대학 시절 선불교와 도교 사상을 접했고 이는 그녀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0년대 이후 미국 미술계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성장했다. 1967년 뉴욕에서의 작품 활동 돌연 중단하고 다시 시골로 향한 그녀는 이후 뉴멕시코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며 스스로 고립되길 선택했다. 그리고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도자 같은 삶을 살며 매일 그림을 그렸다.

‘나무’, 1964,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90.5 x 190.5 cm, 리움미술관 ©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어느 맑은 날에’, 1973, 일본 종이에 실크스크린 프린트 포트폴리오 30점, 30.5 x 30.5 cm (각), 페이스 갤러리 ©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객원 큐레이터 프란시스 모리스는 지난 3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 전시를 기획하며 오랜 경력과 많은 작품을 보유한 예술가를 단순히 조망하는 전시가 아니라 전시명처럼 핵심적인 순간, 즉 ‘완벽의 순간들’에 집중하며 그녀의 작품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955년 마틴이 구상 회화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출발했다. 재현과 모방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선과 격자로 완성된 ‘나무(The Tree)’(1964)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어떤 순수의 본질과 마주한 듯했다. 이어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 30점으로 구성된 ‘어느 맑은 날에(On a clear day)’(1973)는 선으로 완성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예술 같았다.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 솔올미술관 제공
‘무제 #9’, 1990,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82.6 x 182.6 cm, 휘트니 미술관 ©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마틴은 뉴멕시코에 거주하던 1974년부터 명상을 통해 얻은 영감을 회회적으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아갔다. 작품의 크기, 색상, 기법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그 안에서 색과 선을 무한해 반복하고 변주했다. 그리고 30여 년간 이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어느 맑은 날에’와 같은 공간에 전시된 회색 모노크롬 회화는 마틴이 1977년에서 1992년 사이에 그린 작품이다. 철저하게 절제하고 고립된 마틴의 생활처럼 제한된 조건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회색의 선과 면 너머로 그녀가 내면에서 기어 올렸을 순수성과 아름다움이 와닿았다.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확실한 감응이다.”

1989, 아그네스 마틴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 솔올미술관 제공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 솔올미술관 제공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 솔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마틴이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몰입했던 시리즈도 만날 수 있었다. 1993년 건강상의 이유로 양로원에서 지내던 마틴은 매일 작업실을 찾으며 붓을 놓지 않았다. 몸이 쇠약해지며 작품의 크기는 줄었지만, 작업에 대한 그녀의 열정만큼은 줄지 않은 것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8점의 연작 ‘순수한 사랑(Innocent Love)’(1999)이 한 곳의 전시실에 있다. 마틴은 이 연작에 대해 “고요한 명상 속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랑, 충만, 순수한 삶, 행복, 순수한 행복, 완벽한 행복… 각각의 작품명처럼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는 기쁨과 예찬, ‘순수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아기들이 오는 곳’(순수한 사랑 시리즈), 1999,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52.4 x 152.4 cm, 디아파운데이션 ©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쯤에서 마틴은 자신의 그림을 앉아서 보라고 조언했지만 서서, 더군다나 여러 번 움직이며 보았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녀의 작품은 다양한 거리에서 보았을 때 더 풍성한 감흥을 준다. 멀리서 보면 흰색이나 회색이 흐릿한 여백처럼 보이기도 했고, 가까이 다가가면 연필로 그린 희미한 선이나 부드럽게 흐려지는 테두리 등 마틴의 세심한 작업 과정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관해 마틴은 여러 이야기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를 더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음악을 듣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고 즉각적인 감상을 떠올리는 것처럼, 작품의 가치는 감상자에게 있다는 마틴의 뜻에 따라 그저 직접 그곳에 가서 마주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아그네스 마틴이, 그리고 이 전시가 우리에게 주려는 ‘완벽의 순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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