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하여, 포스트스탠다즈

그 많은 전시 폐기물은 어디로 갈까?

조립, 이동, 확장, 축소, 해체에 용이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다. 변주 가능한 모듈 시스템이다. 이 전시 디자인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이후를 상상하게 만든다.

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하여, 포스트스탠다즈
(왼쪽부터) 함석영, 허윤, 김민수

포스트스탠다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김민수가 2016년 설립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의 당위성을 찾는 데 집중하며 포스트스탠다즈만의 직관과 문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고자 한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에이랜드와 보틀벙커, 아모레퍼시픽 스토리가든의 공간 디자인을 맡았으며 2022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피크닉에서 열린 〈정원 만들기〉 전시 디자인을 했다. 2018년부터 매년 〈포스트호텔〉 전시를 개최해 가구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요즘처럼 폭발적으로 전시가 열린 적도 없을 것이다. 전시 대부분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수개월간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설령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 맘속에 영원히 남는다고 한들 현실적인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전시 디스플레이에 사용한 저 수많은 가구는 다 어디로 갈까?’ 안타깝게도 전시 디자인에 사용한 물리적 구조물은 여전히 거대한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기후 재앙 시대를 지나며 전시업계도 차츰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미 전 세계 많은 전시 주체가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 폐자재를 활용해 구조물을 제작하거나, 모듈 시스템을 개발해 폐기물을 줄이거나, 제작 공정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인다.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목표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역시 폐기물 없는 도시건축비엔날레를 목표로 한다. 조병수 총감독과 서울시는 전시 디자인을 맡은 포스트스탠다즈에 ‘재활용이 가능한 모듈 시스템’을 요청했다. 최소한의 기능적 요소를 조합해 전체를 구성하는 모듈 시스템은 미리 정해진 표준과 매뉴얼을 따르기에 조립, 이동, 확장, 축소, 해체가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해체한 설치물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미리 계획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했다. 포스트스탠다즈 또한 이러한 뜻에 적극 동조하며 전시 디자인을 차근차근 도출했다.

초반에는 박스 형태를 만들 수 있는 벽체를 중심으로 디자인했으나 큐레이터들과 회의를 통해 다양한 전시 콘텐츠를 수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자유로운 조형을 만들 수 있는 구조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모듈화된 파이프를 조합해 기본 구조물을 짜고 철판이나 타이백을 덧대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재료 또한 재활용을 전제로 했다. 파이프 재료인 스테인리스강은 강철보다 비싸지만 내구성이 강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철은 산화 방지를 위한 분체 도장을 입히거나 추가적인 가공이 이루어져 재활용하기 어려운 반면 스테인리스강은 재활용도가 95%에 이른다.

디자이너는 이를 고려해 소재에 추가적인 가공이나 표면 처리를 하지 않았다. 원자재를 그대로 활용하고 용접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패널로 출력해 사용할 타이백은 건축 방수 자재로도 쓰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섬유인데 이 또한 재활용이 가능하며 인체에 무해하다. 구체적 체계를 갖춘 모듈 시스템은 세 가지 기본 자재로 구성된다. 기둥 역할을 하는 40×40×1800mm의 각파이프, 가로로 연결되는 150mm 길이의 원형 파이프, 2mm 두께의 철판이 모듈의 기본 단위다. 면이 채워진 박스 형태가 아닌, 정글짐 형태의 뼈대가 기본 모듈이기에 더욱 다양한 규모와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테이블, 벽, 라이트 박스, 모니터 거치 벽, 전시 부스 등의 구조물이 되고, 지그재그나 곡선 형태로도 구축할 수 있다.

전시에는 3000개 이상의 각파이프를 사용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규모가 큰 만큼 참여 작가와 작품 수도 많기 때문에 전시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016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은 연례행사를 위한 임시 인포메이션 허브로 파빌리온을 마련하면서 목재와 철재로 이루어진 벤치를 하나의 모듈로 삼아 파빌리온 전체 구조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후 2017년 파빌리온을 해체하면서 278개의 책상 또는 벤치로 변환해 도시 전역에서 재사용했다. 서울시도 전시 총감독 및 큐레이터들과 비엔날레 이후 이를 어떻게 재활용할지 협의 중인데, 가급적 건축·디자인 분야의 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포스트스탠다즈의 전시 디자인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전시를 모색한 것뿐 아니라 그 이후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최용준

지속 가능한 전시를 실현하려면?

포스트스탠다즈
김민수, 허윤, 함석영

“재활용을 고려한 전시 디자인은 일종의 투자다. 전시 가구의 행방에 대한 계획이 철저하고 세심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이다.”

모듈 시스템은 분명 기능적으로 뛰어나지만 심미적 한계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모듈의 체계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결국 기능적 완성도가 높을 때 미적 완성도도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기능을 충족하는 동시에 치수, 비례, 디테일에서의 미적 요소 또한 당연히 수반되는 과업으로 여긴다. 물론 모듈 시스템 특성상 조형적 한계도 분명히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각 전시 큐레이터와 참여 작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형태와 용도에 따라 다양화할 수 있는 조형을 도출했다. 전시 디자인 첫 리뷰 때 “모듈 디자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모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의견이 있었는데, 칭찬으로 받아들였다.(웃음) 유연하게 변주할 수 있는 모듈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재활용을 고려한 디자인에서 오히려 더 큰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일종의 투자인 셈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시가 개최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참여 작가뿐 아니라 기획자, 큐레이터, 디자이너, 제작자, 운영사 등 수많은 주체가 있다. 그런데 전시 이후에 디자인 결과물을 책임질 수 있는 주체는 불분명하다. 실제로 재활용을 염두에 둔 디자인은 정말 많지만 현실적으로 2~3년 정도 보관한 뒤 폐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작뿐 아니라 운송과 보관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런 디자인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해지려면 전시 이후에 대한 계획을 더 철저하고 세심하게 세워야 한다.

©최용준

개인적으로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 디자인의 모듈 시스템이 어떻게 활용되길 바라는가?
제일 좋은 것은 앞으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재활용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결국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위해 설계한 만큼 이 전시에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활용이라고 생각한다. 이 디자인이 장기적 가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다면, 다음 전시에서 절감된 예산이 전시 콘텐츠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관람객은 전시 디자인이 아닌 전시를 보지만, 전시 디자인이 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태도의 기반을 마련한다. 디자이너가 개발한 시스템을 같은 전시에 연속적으로 사용한다면 전시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할 뿐 아니라 사용 방식이 진화하는 모습도 흥미로운 요소가 될 것이다. 그것이 곧 모듈 시스템의 매력이기도 하다. 전시 디자인은 전시의 배경으로 존재하지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같은 정기적 전시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하면 또 하나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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