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 하이타이드
1990년대 이후 확산된 라이프스타일 중심 소비 문화는 문구 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두각을 나타낸 브랜드가 바로 하이타이드다. 서핑을 즐기던 창립자는 문구를 기능적 도구가 아닌 개인의 취향과 일상을 드러내는 매개로 바라보고 그래픽과 색채, 문화적 레퍼런스를 적극 도입했다. 기능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을 탐구하며 문구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그 역할을 재정의한 하이타이드의 크리에이티브 팀을 만났다.


하이타이드는 후쿠오카를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1994년 서퍼 출신의 창립자 시바자키 기미오가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의 다이어리 시장은 기능 중심의 비즈니스 수첩이 주를 이뤘고 디자인은 무척 단조로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바자키는 개인의 일상과 취향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수첩이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캐주얼하고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이어리를 개발했다. 일과 학업, 사적인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을 자신답게 즐기는 것. 이는 창립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온 브랜드의 견고한 철학이다. 하이타이드라는 이름은 ‘밀물이 차오르듯 일상이 충만해지는 물건’을 만들고자 한 창립자의 신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경쾌한 컬러와 과감한 그래픽은 하이타이드 문구의 특징적인 요소다. 문구를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문구는 도구다. 이 도구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무언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구의 본질인 기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색과 그래픽 요소를 활용해 사용자에게 감정을 불어넣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단순히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하이타이드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 우리는 문구가 사용자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물건이라고 믿는다. 문구는 책상 위에 놓이기도 하고, 휴대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늘 곁에 있는 도구인 만큼 눈에 거슬리지 않는 형태와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색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용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문구를 디자인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일본 문구 하면 흔히 떠올리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이나 키치한 디자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독자적인 정체성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해외 제품을 보면 인쇄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거나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 점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 매끈하게 정제된 결과물보다는 약간의 불완전함에서 드러나는 개성과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이 사용자에게 익숙한 기억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요소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 역시 하이타이드의 특징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결국 일본의 미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대표 라인인 펜코Penco를 비롯해 다양한 라인업을 전개하고 있다. 각 라인이 지닌 특징과 차별점을 소개해달라.
각 라인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형태에 큰 차이가 없는 문구 디자인의 특성상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데 그래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펜코는 1980~1990년대 미국 오피스와 서브컬처에서 영감받은 라인이다. 단순히 레트로를 재현하기보다 현대 생활에 맞게 문구를 재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서핑과 미국 문화의 감각을 접목해 고유의 세계관을 구축한 펜코는 하이타이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그런가 하면 뉴 레트로New Retro는 사뭇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일본 쇼와 시대의 그래픽과 패키지 디자인을 모티브로 밝은 색감과 유머러스한 일러스트, 키치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일상에 가벼운 즐거움을 더한다. 네헤nähe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라인으로, 독일어로 ‘가까움’을 뜻하는 이름처럼 일상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는 오거나이저 제품군을 다룬다. 투명 PVC 소재와 지퍼 포켓, 모듈형 구조 등 기능적인 디테일로 정리와 수납의 효율성을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하이타이드가 전개하는 다양한 문구 라인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디자인 언어를 바탕으로 하지만, 일상을 더욱 즐겁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철학 안에서 그 지향점이 같다.



단일 브랜드가 아닌 다양한 라인업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구는 일상과 함께하는 물건이다. 일상은 한 갈래로 설명되지 않고 여러 상황과 취향이 겹쳐 만들어진다. 다채로운 일상을 담아내는 데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고집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다양한 맥락에 적합한 라인을 구축했다. 또한 문구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제품의 기능뿐 아니라 문화적 맥락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오피스 문화와 서브컬처, 일본 쇼와 시대의 그래픽, 유럽식 기능주의 등 서로 다른 문화적 레퍼런스를 재해석해 보다 입체적인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냈다. 이는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이타이드는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일상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드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안하는 브랜드로 남고자 한다.
최근 문구를 라이프스타일로 바라보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하이타이드는 일찍이 문구를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정의했다. 책상 위 환경은 곧 개인의 삶의 일부다. 그런 관점에서 문구가 데스크 오브제와 생활용품으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가령 펜코의 펜 스탠드나 데스크 트레이, 하이타이드의 모래시계 같은 제품은 일상의 감각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또 네헤의 오거나이저 시리즈처럼 실용적인 제품은 수납 기능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정리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문구는 오래 전부터 이미 라이프스타일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문구 문화는 어떻게 달라질까?
디지털 도구는 효율적이지만, 종이에 쓰는 행위와 시간은 신체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감각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창작이 결국 연필과 종이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종이의 촉감이나 도구의 질감, 잉크의 향과 같은 감각적 경험은 디지털로 결코 대체할 수 없다. 하이타이드는 앞으로도 이러한 경험을 지탱하는 도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