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되지 않은 옷의 미학, 로크(rokh)

움직임 속에서 완성되는 옷

해체와 재구성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로크(rohk)가 서울 장충동에서 국내 첫 팝업 공간을 열었다.

완결되지 않은 옷의 미학, 로크(rokh)

해체와 재구성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컨템포러리 브랜드, 로크(rokh)가 서울 장충동에서 국내 첫 팝업 공간을 연다. 그간 해외 리테일러를 중심으로 전개해온 로크가 브랜드의 세계관과 취향을 직접 전달하고자 기획한 첫 오프라인 공간이다.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로크의 옷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 이면의 미학을 보여주는 아틀리에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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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rokh 인스타그램

디자이너 황록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이후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시절의 셀린느(Celine)를 비롯해 클로에(Chloé), 루이 비통(Louis Vuitton) 등 유수의 패션 하우스를 거쳤다. 2016년 자신의 브랜드 로크를 설립한 그는 유연한 실루엣과 정교한 테일러링, 구조와 감정 사이의 균형을 중심으로 한 로크만의 미학을 구축해 왔다. 2018년 한국인 최초로 LVMH 프라이 특별상을 받으며 세계 패션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로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체와 재구성’이다. 정교한 테일러링이라는 토대 위에 해체적인 구조를 얹고 익숙한 형태를 낯설게 변주한다. 황록 디렉터는 이 과정을 재즈에 비유한다. 같은 음을 사용하더라도 박자를 어떻게 쪼개느냐에 따라 곡의 성격이 달라지듯, 옷의 구성 요소를 재배치해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것이 로크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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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rokh 인스타그램

브랜드 시그니처 아이템인 트렌치코트에 이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다. 론칭 초기부터 매 시즌 분해와 재조합을 반복해온 트렌치코트는 버튼을 잠그는 방식에 따라 정제된 클래식과 실험적인 스타일을 유연하게 오간다. 이번 2026 S/S 컬렉션에서도 트렌치를 유틸리티적으로 해석하거나, 부드러운 드레이프로 변주한 피스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해체와 재조합의 과정은 실험에만 머물지 않고 착용 경험과의 균형을 함께 탐구한다. “단순해 보이는 옷에도 더블 컬러나 레이어링 같은 장치를 넣어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만든다”고 황록은 말한다. 수차례 피팅을 거치며 입는 사람의 해석이 개입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유행 속에 휘발되는 옷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입게 되는 옷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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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 팝업 전시가 열리는 코브 더 장충 © rokh

제스처, 옷이 움직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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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 룸 © rokh

전시의 중심 테마는 ‘제스처(Gesture)’다. 소매를 걷는 동작, 단추를 여미는 행위, 걸을 때 코트 자락이 흩날리는 방식처럼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이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디렉터는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사소한 행위들이 옷을 디자인할 때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옷의 형태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입는 사람의 움직임 속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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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직조된 오간자 소재의 트렌치코트가 빛과 공간을 매개하는 오브제로 기능한다. © rokh

공간 기획도 직접 맡았다. 방마다 다른 주제를 두고 옷의 유동적인 성질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첫 번째 방 트렌치 룸에는 오간자 소재로 제작된 트렌치코트가 빛을 투과하며 패턴의 절개선과 구조를 드러낸다. 옷의 내부를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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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위에 무심하게 흐트러진 옷은 하루의 끝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과 착용자의 제스처를 보여준다. © rokh

이어지는 비디오 룸에서는 2026 S/S 캠페인 영상 속 역동적인 움직임과 대비되도록, 그 옆에 정지된 상태의 옷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동작과 정지 사이에서 같은 옷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인상을 비교하게 한다. 라운지 공간 소파 위에 무심하게 흐트러진 옷은 하루의 끝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과 착용자의 제스처를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준다.

브랜드 미학을 응축한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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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작업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 황록 디렉터가 개인 소장한 피에르 샤포(Pierre Chapo)의 느릅나무 원목 가구가 놓여 있다. © rokh

이윽고 마주하는 아틀리에는 황록 디렉터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그가 개인 소장한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피에르 샤포(Pierre Chapo)의 느릅나무 원목 가구가 놓여 있다. 구조적이면서도 절제된 형태의 가구 옆에는 로크가 실제 작업에 사용하는 가위, 도구, 원단, 그리고 그가 평소 탐독하는 책과 음악이 함께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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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작업에 사용하는 가위와 도구, 평소 읽는 책, 작업실에서 듣는 음악까지 디렉터가 직접 선곡해 배치했다. © rokh

전시 안에서 디렉터의 취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제 삶이 그렇게 특별하게 재밌진 않거든요. 직원들과 아틀리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커팅도 하고 재단도 하고요.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들이나 읽는 책, 듣는 음악 같은 것들을 편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출된 세트가 아니라 일상의 작업 풍경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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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스 바스크 지역의 세라믹 아티스트 루드밀라 발키스(Ludmilla Balkis)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하나의 형태를 위해 수작업으로 수없이 실험하고 반복하는 그의 작업 방식이 로크의 제작 과정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 협업이다. 장르를 넘어 창작의 태도에서 발견한 접점이 공간 곳곳에 드러난다.

로크는 H&M, GU 등 글로벌 SPA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황록 디렉터는 이를 “실험적인 옷을 일반 고객들이 즐기는 모습을 확인하는 소통의 창구”라고 설명한다. 서울 팝업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간다. 협업이 로크의 외연을 넓히는 방식이었다면, 장충동 코브의 공간은 브랜드의 내면을 깊이 보여주는 자리다. 옷과 가구, 오브제, 창작의 흔적이 겹쳐진 공간에서 로크가 서울에 처음 펼쳐 보이는 정교한 아카이브를 4월 5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로크(rokh) 서울 전시
기간 2026년 4월 2일 – 4월 5일
주소 코브 더 장충 (서울 중구 장충단로 8길 11-18)
운영 시간 12:00 – 21:00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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