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하루키 전시

1979년 데뷔 이후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너머 하루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

사람들은 하루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79년 데뷔 이후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1987년 발간된 ‘노르웨이의 숲’이 430만 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인 하루키 붐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일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재즈를 좋아하고 매일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아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 취향의 실물을 직접 마주할 기회는 드물었을 터. 소설 너머 하루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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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외관 전경 © Designplus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이하 플랫폼엘)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전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전시는 하루키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그를 구성해 온 취향과 삶의 태도까지 함께 조명한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국제문학관(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과 협력으로 작가가 소장해 온 도서와 LP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또 한국 현대미술 작가 5인의 신작과 하루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인물 9인의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펼친다.

이 전시의 안내자는 고양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름 없는 존재. 관람객은 이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하루키에게 고양이는 삶의 안과 밖을 오가는 동반자였다. 그의 소설에서도 고양이는 세계의 균열을 감지하거나 인간 중심의 시선을 흔드는 매개로 등장해왔다. 전시는 이 상징을 가져와, 고양이의 목소리를 빌린 텍스트로 관람객을 그의 세계 안으로 이끈다.

전시 속에서 하루키라는 인물의 윤곽은 구체적인 사물로 드러난다. 40여 개국에서 출간된 ‘노르웨이의 숲’ 실물 본의 한자리에 놓여 있고, 재즈 카페 ‘피터 캣(Peter Cat)’ 시절 수집한 LP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잡지 ‘뽀빠이’에 1년 반 동안 티셔츠를 주제로 연재할 만큼 수집에 몰두했던 면모부터 마라톤 완주 메달과 운동화까지. 소설 밖에서 이어져 온 그의 취향과 일상이 물성으로 전해진다.

글과 선으로 이어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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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 © Platform-L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구간은 하루키와 35년간 함께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Mizumaru Anzai, 1942–2014)의 세계다. 하루키는 그를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와세다에 기증된 협업 원화 800여 점 중 약 200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작업의 기반이 된 오브제 컬렉션 30점도 함께 선보인다. 색을 입힌 필름을 오리고 붙이는 팬톤 오버레이 기법으로 완성한 그림. 단순한 선과 색 안에 편안함과 위트가 담겨있다. 출판 과정에서 오간 낙서와 메모를 통해 두 작가가 주고받았을 창작의 호흡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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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자신과 무라카미 하루키 © Designplus

경계를 가로지르는 한국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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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란, The Towering of Intelligence, 2025, Wood, plastic, mirror, and LED, 277×370×323cm © Platform-L

한편 전시는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로 변주하는 공감각적 경험도 제안한다. 강애란, 김찬송, 순이지, 이원우, 한경우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세계를 해석했다. 특히 강애란은 하루키 소설 10편에서 발췌한 문장을 설치 작업으로 재구성했다. 전시장에 놓인 작은 라이팅 북을 선반 위에 올리면 센서가 반응해 문장이 영어와 일본어로 낭독되고, 영상과 사운드로 변환된다. 텍스트를 읽는 대신 감각으로 경험하도록 만든 작업이다. 다른 작가들 역시 이중 세계, 일상의 균열, 감각의 단절 같은 주제를 회화와 조각, 설치로 풀어내며 문학적 세계를 시각적 언어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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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시 전경 © Platform-L

하루키로 바라보는 삶의 면면

더불어 하루키로부터 각자의 의미를 발견한 이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뮤지션 장기하, 셰프 조광효, 위스키 칼럼니스트 정보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 9인이 참여해 애장품과 자필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하루키의 재즈 킷사를 재현한 리스닝 룸부터 러닝 세션, 연계 강연까지 4개월간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문학 전시의 외연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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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시 전경 © Platform-L

하루키의 열렬한 독자가 아니어도 이 전시는 충분히 흥미롭다. 한 작가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해석과 애정이 겹겹이 쌓이는 광경, 그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꽤 즐겁다. 전시 동선도 경험의 일부로 작동한다. 플랫폼엘은 전시관 사이를 이동할 때 잠시 건물 외부로 나가게 되는 구조인데, 중정을 내려다보며 맞는 바깥공기가 사이사이 짧은 환기가 되어준다. 하루키의 궤적을 따라 잠겼다 빠져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막바지에 이른다. 전시장 밖을 나서며 남는 건 하루키의 세계일 수도, 그 사이 떠오른 저마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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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기간 2026년 3월 27일 – 8월 2일
주소 플랫폼엘 (서울 강남구 언주로133길 11)
운영 시간 11:00 – 20:00 (월요일 휴관)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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