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벵: 나다운 브랜드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법

유벵 도나오피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젠틀몬스터와 뉴모던서비스를 거쳐 지금의 도나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유벵 디렉터가 디자인한 공간은 성격이 뚜렷하다. 이는 브랜드의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를 기반으로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유벵디렉터의 노력 덕분이다.

[Creato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벵: 나다운 브랜드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법

editor’s note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엽니다. 한국은 워낙 트렌드에 민감하고 디자인 감성도 높아 그 어느 곳 하나 안 예쁜 곳이 없죠. 하지만 공간은 디자인보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뻐도 머무는 사람이 불편하면 좋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젠틀몬스터와 호텔더일마, 카멜커피로 대중에게 친숙한 유벵 디렉터는 디자인과 경험을 모두 잡은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항상 그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많은 이가 그를 공간 디자이너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브랜딩이 첫 번째 업이며, 공간은 브랜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뿐입니다. 경험이라는 개념이 브랜딩에서 중요해진 시대, 유벵 디렉터에게 좋은 브랜드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들어봤습니다.

20260408140411 01 02

PLUS 1. 유벵이라는 존재를 만드는 시간

유벵이라는 이름이 제가 알기로는 가명이라고 들었거든요. 혹시 뜻이 있나요?

특별한 뜻은 없어요. 할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제 이름을 ‘벵’이라고 부르셨거든요. 제가 부산 출신인데, 부산 사람들은 몇몇 글자를 그렇게 불러요. 그 이름이 고등학교때까지 불렸고,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불렸어요. 한국 이름은 발음하기 힘든데 ‘벵’이라는 발음은 쉬우니까요. 이후 회사에 들어가서 명함에도 영어 이름처럼 ‘유벵’이라고 적었어요.

그럼 이제는 본명보다 더 이름같겠어요.

저에겐 유벵이라는 이름이 본명보다 더 나다운 것 같아요. 본명보다 유벵으로 들어온 삶의 시간이 더 길어요. 어떨 때는 제 본명이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인 것 같아요. 또, 본명으로서의 제 모습을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이처럼 유벵과 본명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저만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고 들었어요.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땠나요?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프랑스로 미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어요. 4년 동안 프랑스에 있으면서 학교 수업보다 동기 친구들과 우리를 어떻게 알리고, 어떻게 표현할 지를 고민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시중에 돈이 생기면 직접 전시회도 열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수준의 전시였지만,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지냈거든요. 그렇게 제가 보낸 시간과 함께 주변 친구들의 배경이 함께 쌓이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 공간에 대한 취향이 몸에 쌓인 것 같아요.

계속 프랑스에서 활동한 건가요?

그 뒤에 벨기에의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가구와 공간을 좋아해서 친구가 오픈한 패션 브랜드 매장을 디자인해준 적도 있어요. 또, 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브랜딩 스튜디오를 차려서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고요. 벨기에 한국 문화원과도 2~3년 함께 일했죠. 문화원에서 열리는 행사, 전시, 공연의 브랜딩 작업을 담당했거든요.

전공을 살려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셨군요.

3년 넘게 브랜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제 성향이 그래픽만으로 시각화하는 건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그래픽을 좋아하지만, 브랜딩이나 공간으로 더 풀어내고 싶었어요. 그 깨달음을 얻고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우연치 않게 젠틀몬스터에 입사하게 되었죠. 젠틀몬스터가 막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였어요. 당시엔 공간팀과 아트비주얼팀이 나눠져 있어서 저는 아트비주얼팀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아트비주얼팀의 세 번째? 네 번째 멤버였던 것 같아요.

PLUS 2. 도나오피스까지의 여정

20260408140726 01 05
젠틀몬스터는 지금 도나 오피스의 분위기와 다른데요. 어떤 결과물이 디렉터님이 추구하는 방향인가요?

지금의 분위기가 더 ‘나답다’고 할 수 있어요. 젠틀몬스터에 있을 때 행복했어요. ‘또 언제 이런 멋진 동료들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저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나다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젠틀몬스터에서 멋진 경험을 통해 브랜딩이라는 걸 배웠으니, 독립해서 오래 지속되는 걸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젠틀몬스터는 패션 브랜드이니까 시즌에 따라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데 저의 성향은 세월을 보내는 것에 대한 멋스러움을 지향했었으니까요.

20260408140704 01 06
뤼도 발루즈. 원래 ‘빠말’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했으나 작년에 변경되었다. © inandout studio
독립 후, 더모던서비스를 설립하셨죠.

콜렉트라는 미드센추리모던 빈티지 숍 대표였던 제이미와 함께 설립한 회사였어요. 재미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가 F&B 분야로 집중되었어요. 그런 점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더 다양한 분야의 브랜딩을 하고 싶어서 다시 독립해서 도나 오피스를 설립하게 되었죠.

20260408140844 01 07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사무 노구치 조명을 한발 빠르게 두었던 더호텔일마 내 카페 © inandout studio
도나 오피스의 뜻은 무엇인가요?

젠틀몬스터를 다닐 때부터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어요. 다음 시대의 비주얼은 무엇이 될지를 매일 고민하다보니까 그 단어가 공기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에게 다음 세대는 새로운 공기로 해석되었고, 제 회사가 다음 세대의 공기를 제안하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Distributor of Next Air 라는 이름을 지었고, 줄여서 도나(DONA)라고 했어요. 그런데 구글에 도나를 검색하면 흑인 아줌마 이미지가 뜨거든요. 알고 보니까 흑인 여성들 이름 중에 도나를 많이 지어준데요. 그런 스토리도 좋았어요. 뜻을 묵직한데 막상 줄여놓으니까 귀여운 사람 이름이 되었고, 덕분에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친근하고 편안한 게 더 좋아요.

앞서 두 번의 커리어와 달리 지금은 혼자 일하고 계시죠.

일을 하며 한창 배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서 게을러지고 싶지 않아서 혼자 일하고 있어요. 대신 제 프로젝트만을 함께 하는 시공팀과 가구팀은 있어요. 제 디자인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분들이에요. 제가 디자인한 공간 중엔 도면으로 표현이 잘 안되는 부분이 꽤 있어요. 그래서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함께 작업한 지 6년 가까이 되었어요. 최근엔 경기도 남양주에 가구 제작소를 열었어요. 프로젝트가 많아지다 보니까 넓은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20260408140930 01 08
필요하다면 공간에 둘 가구와 오브제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 inandout studio
어쩌면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거네요.

저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어요. 저는 그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마음이 맞는 팀과 일할 때 분위기는 어떤가요?

저는 제 현장이 모두가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걸 지향해요. 인테리어 작업 현장은 마감 때문에 모두가 예민해지는데, 몇 개월 고생했는데 마지막만큼은 웃으면서 끝내면 좋겠어요. 작업 시간마저도 그 브랜드와 공간의 스토리가 될 수 있고, 멋스러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PLUS 3. 브랜드의 나다움을 찾는 사람

도나 오피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정말 다양한 브랜드, 분야와 일하고 있어요. 혹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저를 찾는 클라이언트는 새로운 것을 원해서 오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걸 하려고 하지 않아요. 가장 본질적인 것을 먼저 접근하려고 하거든요. 예를 들면 카페라면 앉을 곳과 커피만 있으면 되는 공간이죠. 그 이상의 요소들은 다 옵션일 뿐이죠. 오히려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지금까지와 달랐던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이든 원초적인 요소들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공간을 디자인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운영하는가’예요. 그 사람이 공간의 주인공이자 브랜드라고 생각하든요. 공간에서 누리는 경험인 콘텐츠와 브랜드의 ‘나다움’이 만났을 때의 새로움을 풀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20260408141115 01 10
대표 부부의 이탈리아의 햇살처럼 밝은 성격을 표현하고자 했던 푸페또 클럽 © inandout studio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요?

무조건 첫번째, 두번째도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에요. 단순히 프로젝트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눠요. 그러면서 브랜드(공간)의 오너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긴장하지 않을 때 나오는 위트에서 포인트를 잡아서 브랜드화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결국 브랜딩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게 만들 것이냐’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은연 중에 나누는 농담들 사이에서 무의식 중에 피식- 하고 웃는 포인트가 매우 중요한 지점이에요. 저는 그 포인트를 진지하고 묵직하게 해석하고, 시각화하는 걸 좋아해요.

팝업 공간도 디자인하시는데, 일반 공간과 작업 과정이 다른가요?

이 역시 브랜드와 콘텐츠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만약 한 번으로 끝날 공간이라면 인상에 깊게 남을 경험에 초점을 맞춰서 기획하겠지만, 오래 유지되는 공간이라면 마음이 편안한 분위기로 디자인해야겠죠. 너무 좋아서 친구, 가족 다 데리고 오고 싶은 공간으로요. 만약 프로젝트를 온탕과 냉탕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저는 두 탕을 왔다, 갔다할 수 있는 디자이너였으면 좋겠어요. 사람으로 치면 어느 날은 멋 부리고 나가고 싶다면, 다른 날은 추리닝을 입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요. 그렇게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 디자이너이자 디렉터가 되었으면 해요.

20260408141222 01 11
공간을 디자인할 때,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나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감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는지, 고객이 그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지를 물어보고 저도 스스로 생각해요. 최근 한국은 옛것이 많이 사라졌고,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표면적으로 따뜻함 보단 차가운 감정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차갑고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실내에 들어왔을 때는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공간에 목제를 많이 사용하는 건가요!

제일 저렴한 미송 합판을 자주 사용해요. 저에겐 청바지에 흰 티 같은 소재거든요. 어떻게 스타일링하느냐에 따라 저렴한 합판이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 또, 저렴하고 친숙한 소재라 막 지내도 부담없잖아요. 무언가를 흘려도 크게 신경쓰이지 않고, 그 자국마저도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어요. 이러면 사람들도 그 공간을 편하게 느껴요.

저는 디렉터님이 디자인한 공간을 볼 때마다 가구와 오브제가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디렉터님에게 가구와 오브제는 어떤 의미이자 존재인지 궁금하더라고요.

공간에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감을 녹여줄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죠. 공간의 기준점을 건축적인 시선으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정으로 잡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이 공간을 편안함이 우선인지, 혹은 무겁고 진중함이 느껴질 것인지, 위트로 즐거운 공간이 될 것인지 등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기준으로 삼는 거죠. 그럴 때, 오브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디자인적으로 멋진 가구와 오브제도 좋지만, 저는 브랜드의 취향과 감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오브제를 선택하고, 각 가구와 오브제가 만났을 때의 조화와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구와 오브제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가구와 오브제를 선택할 때는 제 관점과 취향이 크게 작용해요. 프랑스에서 순수미술 학교를 다니면서 개념미술에 대해서 배웠거든요. 그러다 보니 바닥에 놓인 캔 하나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고, 별 것이 아닌 게 큰 의미를 지닌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좋아해요. 그래서 길 가다가 본 밀대 걸레도 하나의 오브제로 느껴지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주 사소한 오브제도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여기고, 그 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20260408141410 01 16
흑백으로 이뤄진 풍경화와 나무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낸 아틀리에폰드 공간 디자인 © inandout studio
공간을 브랜딩할 때, 시각 부분 외에 사운드도 설계하신다고 들었어요.

브랜딩이라는 건 결국 하나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요. 브랜딩과 공간을 설계하다보면 그 안을 돌아다니는 동선, 직원들의 제스처와 말투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라요. 그런 부분까지도 공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간 디자인의 제일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에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상한 공간 혹은 인테리어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공간이라도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멋있다면 공간도 멋있어요. 즉, 공간 브랜딩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포인트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애티튜드로 경험을 만들어내느냐라고 생각해요.

브랜딩 작업을 하다보면 신생 브랜드를 디자인할 때도 있지만, 기존에 있던 브랜드를 리뉴얼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브랜드의 새로움을 찾으려고 하는 편인가요?

새로움에 초점을 두며 작업하진 않아요. 오히려 그 브랜드만이 가진 ‘나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분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고요. 쉽게 설명하면, 똑같은 청바지도 누가 입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혹은 흰 티에 청바지를 입었을 때 마지막으로 신발을 어떻게 스타일링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요. 그래서 저는 이 청바지를 이 사람(브랜드)에게 어떻게 입혀야 빛이 날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인 거죠. 선택은 제 관점으로 하긴 하지만, 그것이 클라이언트나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어요.

PLUS 4. 모두가 편안한 따뜻한 공간

20260408141455 01 17
가운데에 보이는 기둥을 쨍한 노란색으로 칠함으로써 공간에 위트를 주고자 했다.  © inandout studio
디렉터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패션으로 비유하자면 뮤즈 같은 브랜드 혹은 공간이 있을까요?

제 배경과 삶의 태도에서 유래한 거 같아요. 어머니께서 워낙 패션과 음악을 좋아하시고, 그림도 꾸준히 그리셨어요. 덕분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 많은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특히 색에 대한 감각을 어머니로부터 배웠어요. 예를 들면 이 파란색이 예뻐보이는 이유는 옆에 검은색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고, 검은색 옆에 분홍색을 두면 또 느낌이 달라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계속 해주셨거든요.

그렇다면 디렉터님이 디자인한 공간이 어떤 곳이 되었으면 하나요?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어 보였으면 해요. 힙스터와 평범한 사람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는, 그리고 각자가 주인공처럼 보이는 공간이 되는 것이 저에겐 매우 중요한 포인트예요. 유학 시절때부터 남녀노소, 인종, 직업군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모습을 좋아했어요. 저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으니까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공간을 좋아했고, 안정감을 느꼈어요. 그런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20260408141713 resize 01 18
© inandout studio
브랜드와 공간 모두 오래 가기 위한 조건 브랜드가 오래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브랜드는 잘 될 때가 있으면 힘들 때도 있어요. 특히 힘들거나 새로움이 필요할 때는 ‘나다움’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가 그 시기를 극복할 수 있더라고요. 나다움이 명확하게 있는 브랜드는 흔들리지도 않고요. 사실,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 중에 순탄했던 브랜드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힘든 시기를 나다움을 가지고 이겨내서 성취했을 때, 그 브랜드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죠.

오래된 것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요.

유럽에 10년 넘게 살면서 나이를 멋있게 먹어가는 것에 대한 로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빈티지를 좋아하게 된 것도 있어요. 이런 성향 때문인지 지금 제가 디렉팅하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잘 해온 브랜드라는 인식을 느낄 정도로,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게금 노력하는 것 같아요.

20260408141807 01 19
레노마 한남 © inandout studio
디렉터님은 브랜드의 ‘나다움’을 발견해주는 사람이겠네요. 그렇다면 브랜드의 나다움을 찾아주는 비법이 있으세요?

비법은 없고 오너의 말을 열심히 들으면서 그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고 추구하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브랜딩을 설계하고 공간을 디자인해주지만, 결국 그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오너니까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 분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방향성을 더 멋있게 보일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뿐, 브랜드의 본질은 오너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나만의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공간을 오픈하고 싶은 갈증은 없으세요?

제가 맡은 브랜드를 통해 저를 표현한다고도 생각해서 갈증은 없어요. 저는 ‘좋은 브랜드’, ‘좋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지, 제가 디자인한 가구나 오브제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게 행복하고 그 모습에서 성취감을 얻어요. 그래서 만약 제가 만든 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도 좋아했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일까요?

그런 마음도 있지만, 저는 스타일리스트와 비슷한 것 같아요. 브랜드에게 더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까, 보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멋있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옷을 골라서 입혀주는 사람인 거죠. 저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해요.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또 오고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20260408141855 01 20
차가운 소재와 따뜻한 빈티지 가구가 조화롭게 배치된 OLD GOOD THINGS by oror © inandout studi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결정을 해야하는 위치에 있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잖아요.

제 눈에 멋있으니까 사람들에게 함께 보자고 제안하는 거죠. 담당하게 된 브랜드가 제 눈에 안 멋있고, 저 스스로 자신이 없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어서 브랜드와 그를 운영하는 오너에게서 장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요. 일종의 동기 부여라고 할까요? 아직 감정없이 일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감정이 담겨야 결과물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제 일의 모양이에요. 이런 생각이 삶의 태도도 바꾸더라고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를 대신해서 브랜딩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 거짓 같은 삶을 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더 일과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심플하게 사는 것 같아요. 나다운 게 뭔지 알아야 다른 사람의 나다움을 찾아내고, 그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작업하신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포인트가 있더라고요.

제 삶에서 위트는 중요한 요소여서 작업에도 넣는 것 같아요. 웃음 포인트보다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 것 만났을 때의 흥미로움이 저에겐 위트이고 새로움이예요. 즉, 새로움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유와 유가 만났을 때. 그게 새로움이고 위트인 것 같아요.

유와 유가 만나려면 엄청난 레퍼런스와 경험이 저장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제가 스케치북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뇌와 감정이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편견 없이 브랜딩 작업을 할 수 있거든요.

20260408142031 01 23
혹시 먼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도 있나요?

저는 죽기전에 공대와 예술대만 있는, 예를 들면 카이스트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학교가 묶어 있는 기관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 전공이 서로를 이해하면 시너지가 나면서 더 대단한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큰 꿈이라 평생 해도 될까, 말까라서 꿈만 가지고 있어요. 40대 이후에는 제 이름을 건 리조트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리조트라는 공간이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잖아요. 복합 공간이기도 하고, 시대와 당시 사람들의 니즈와도 잘 맞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PLUS LIST

유벵 디렉터가 생각하는 ‘나다움’을 잘 보여주는 브랜드와 공간 3

-카펠라 우붓 발리

로컬라이징이 자연스럽게 잘 된 공간이라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카펠라가 정글이라는 콘텐츠와 만났을 때,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했고, 왠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스투시

개인적으로 패션을 좋아하고, 스투시라는 브랜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브랜드의 나다움과 서브 컬처를 접목해서 멋있게 걸어가고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언제나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애매한 선을 잘 유지한다는 점에서 멋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더일마

더일마는 대표 두 분의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브랜드입니다. 작은 것 하나도 소흘히 하지 않으려고 하고, 공간마다 그분들의 생각과 철학을 담고자 하세요. 그래서 꾸준히 멋진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TIPPING POINT

유벵 디렉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일 자주 언급되었던 단어는 ‘나다움’이었습니다. 좋은 브랜드와 공간이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벵 디렉터는 더욱 누구나 가깝게 느끼고,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브랜드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나다움은 그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고 오래 유지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AD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