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에 내려앉은 개인의 궤적, 〈가구에게 일어난 일〉전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워키토키갤러리는 디자이너와 기획자, 소비자, 사물 사이의 경쾌한 소통을 지향하는 디자인 갤러리다. 갤러리 대표이자 기획자인 임나리의 주거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전시 기간 홈갤러리로 탈바꿈해 디자이너의 사고와 상상력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가구에 내려앉은 개인의 궤적, 〈가구에게 일어난 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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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에게 일어난 일〉전 포스터. 디자인 김유나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워키토키갤러리는 디자이너와 기획자, 소비자, 사물 사이의 경쾌한 소통을 지향하는 디자인 갤러리다. 갤러리 대표이자 기획자인 임나리의 주거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전시 기간 홈갤러리로 탈바꿈해 디자이너의 사고와 상상력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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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사사건건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구기동 자택을 채우고 있던 내밀한 원본 가구와, 이를 전시장이라는 공적 언어로 다시 번역한 사물들을 병치한다. 사적인 삶의 궤적을 따라온 가구들은 단순한 집기를 넘어, 닫힌 방과 공적 공간을 가로지르는 입체적 조형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그는 반복되는 이주를 경험하며 집이 고정된 건축이 아닌, 계약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거처임을 체감했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이동 속에서도 지속적인 안도감을 제공한 것은 건축이 아닌 작가의 일상을 늘 곁에서 지킨 사물들이었다. 정작 견고하게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건물은 사용자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데 필요에 따라 옮길 수 있는 가구와 사물들이 위안을 준다는 아이러니. 사사건건이 이동성과 유동성을 이번 전시의 핵심 키워드로 삼은 이유다.

이는 평소 건축 설계와 공간, 가구 디자인을 아우르는 사사건건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이 건축사 사무소는 가구를 고정된 형태가 아닌 필요에 따라 분해되고 결합되는 ‘유연한 도구’로 정의해 왔다. 또한 이것은 가구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어에서 ‘가구’는 공간에 종속된 사물로 이해되지만,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구를 뜻하는 라틴어 ‘모빌리스(mobilis)’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가구가 애초에 예속되고 고정된 사물이 아닌 유연함을 지닌 사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전시에서 사사건건의 가구는 공간을 횡단하며 경계를 허문다. 벽과 바닥조차 해체해 이동 가능한 구조로 설계하고, 건축과 가구 사이의 위계를 흔든다. 그렇게 확보한 구조적 자유 위에 작가의 개인적 기억이 장식처럼 내려앉는다. 예를 들어 1인용 소파 sskk-1은 오랫동안 작가의 일상을 함께한 낡은 소파와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한 작품을 병치한 작품인데 이국적인 그림이 직조된 천을 얹어 쓰던 기성품 소파의 기억을 붉은 실로 사람의 얼굴을 꿰매 넣은 새로운 소파로 연결했다.

작가가 가구에 각인한 기억 중에는 친근한 일상의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제기한 푼크툼(punctum)과 같이 강렬하고 순간적인 여운과 감정을 오롯이 전이한 작품도 있다. 이를 테면 소나무 합판 옷장 sskk-2의 경우, 작가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본 철제 구조물의 기억을 새겼다. 버려질 뻔한 문짝들로 제작한 병풍 sskk-4 역시 얇은 나무판 위에 작가가 유럽에서 본 웅장한 아치형 천장 구조와 다빈치의 별 문양을 금속으로 장식했다.

​이처럼 작가는 이탈리아 중세 건축의 볼트나 르네상스 천장화에서 차용한 도상을 밋밋한 표면 위에 각인하고, 산업재의 매끈함도 의도적으로 훼손했다. 표면에 상처를 내고, 물감을 채우고 비뚤어진 철사를 손수 엮는 행위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는, 사물을 공산품에서 삶의 동반자로 격상시키는 적극적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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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k-3. 바닥에 세워 쓰던 작가의 원본 책장과 이를 새롭게 조율한 전시용 벽장이 전시장 내에서 짝을 이룬다. 원래의 책장은 벽에 가려지는 뒷면의 못남을 탈피하고자 전통 ‘방풍널’ 구조를 적용했던 가구다. 작가는 이 책장에 경첩을 달아 벽에 매달고 밋밋한 면 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 전시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극도로 개인적인 사물들이 공적인 전시장에 놓일 때 발생하는 태도의 변환이다. 작가는 자신의 취향과 기억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그것을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치환한다. 지극히 내밀한 취향과 사적인 흔적을 면과 면을 연결하는 경첩, 뼈대를 지탱하는 보철 같은 기능적 장치 등으로 번역해 보편성을 확보한다. 매끈한 경제성이 아닌 투박하고 ‘미련한 표면’을 선택해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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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말한다. “사물을 집을 규정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끊임없이 이주해야 하는 삶에서 유용한 태도”라고. 이번 전시는 개인의 방에서 출발한 사물이 어떻게 보편적 쓸모를 입고 타인의 공간으로 이동하는지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 과정을 통해 집이라는 개념이 물리적 구조가 아닌, 시간과 기억을 머금은 사물의 집합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구에게 일어난 일〉전
주최 워키토키갤러리, walkietalkiegallery.com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모래내로17길 59-6
운영 시간 화 – 일요일(월요일 휴관), 13:00 – 19:00
참여 작가 사사건건(전중섭), saasaakunkun.com
기획 임나리
그래픽 디자인 김유나 @yu_na_kim_c
사진 맹민화(자료 제공: 워키토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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