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디자인으로 모든 걸 말하다, 조현열

글자 디자인으로 모든 걸 말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글자 디자인으로 모든 걸 말하다, 조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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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디자인으로 모든 걸 말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단국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유학길에 올랐다.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010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헤이조를 오픈했다. 현재는 출판, 미술관, 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관련 프로젝트로 바쁘게 생활하면서 반려견 조조와 여유롭게 산책할 날을 꿈에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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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조현열은 시끄럽게 떠들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글자 디자인으로 전시의 정보와 목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능통하다. 최근 그가 디자인한 일민미술관의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 포스터는 이미지 하나 없이 한글과 한자, 숫자로 구성된 전시 제목만 가지고 디자인했다. 1920년대 민간 신문과 잡지의 기록을 통해 100년의 시공간을 이동하며 잊힌 당대 사건을 살펴보는 전시인데, 당시 한글과 한자를 병행해 사용한 신문과 잡지의 문장 형태를 그대로 제목에 적용하고 골드러시로 경성에 모여든 사람들의 광기를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불완전하게 좁아지고 늘어난 글자들은 골드러시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또 일본 소설가 온다 리쿠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꿀벌과 천둥〉의 포스터는 일본어 원제(蜜蜂と遠雷)를 그대로 사용한 글자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피아노 건반의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색의 두꺼운 획과 가는 획의 구성으로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의 내면의 갈등과 경쟁을 표현했다. 이처럼 조현열이 디자인한 포스터에는 뻔한 클리셰가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이 곧 그에게는 디자인 소스이고 글자 자체가 훌륭한 도구이자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마지막 전시였던 〈스펙트럼-스펙트럼〉이 오랜 시간 흘러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효과적인 글자 나열로 강렬한 인상의 전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것이 한몫했다.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리움미술관이 역량 있는 신진 작가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전시) 출신 작가 7명과 그들이 추천하는 7명이 함께 쌍(팀)을 이루어 만들어나간 전시 〈스펙트럼-스펙트럼〉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시각적으로도 ‘쌍’의 개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나갔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를 한 번 더 반복해 만든 제목처럼, 동등한 위치에서 팀을 이루어 작품을 선보인 작가들처럼 글자 크기와 형식도 대칭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고정된 글자 크기와 대칭이라는 단순한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이지만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전시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조현열의 디자인에는 화려한 색채도 이미지도 없다. 하지만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야기가 있는 구성과 탄탄함이 있다. 어릴 적 서예 학원에서 붓글씨 쓰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는 그는 글자 디자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남다르다. 프로젝트마다 대부분 그에 맞는 성격의 글자를 디자인하는데, 이러한 모든 작업은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꾸준히 해온 연습이나 습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일을 의뢰받는 디자이너이기에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 디자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조현열을 ‘작가적 디자이너’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적절하게 녹여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패션만큼 그래픽 디자인 또한 빠른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영역이지만 출판, 미술관 등의 문화계에서 1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렌드 좇기가 아닌 일관된 작업 태도와 연습이 그를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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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기억극장 황금광시대〉(2020). 1920년대 신문과 잡지의 기록을 통해 100년의 시공간을 이동하며 삭제되거나 잊힌 당시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붉은색 한자와 함께 가로와 세로로 늘어진 글자 표현은 1920년대 황금에 대한 집착, 금과 부에 대한 광기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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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스펙트럼〉 전시 아이덴티티(2014). 〈아트스펙트럼〉 출신 작가 7명과 그들이 추천하는 7팀이 함께했다. 메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쌍을 이루는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페스티벌 아이덴티티(2020). ‘J’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영문 이니셜이자 영화제 창립 20주년을 성료하고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알파벳 캐릭터다. 찢어 붙인 종이 형상을 한 ‘J’는 온갖 유형의 규범에 도전하는 독립 영화의 파격과 자유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페스티벌 아이덴티티(2016). 글자 ‘전주’의 첫 닿자 ㅈ, ㅈ과 ‘필름 페스티벌’에서 첫 글자의 초성 ㅍ, ㅍ을 활용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다.

베이시스트 박현준의 앨범 〈More Lovers Than Haters〉의 음반 디자인(2019). ‘Lovers’와 ‘Haters’ 두 가지 상반되는 의미를 중첩한 타이포그래피를 메인 이미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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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주국제영화제 ‘100필름 100 포스터’에서 선보인 〈꿀벌과 천둥〉(2020) 포스터. 온다 리쿠의 장편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꿀벌과 천둥〉의 일본어 원제를 활용해 디자인했다. 검은색의 두꺼운 획과 가는 획의 구성으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의 내면의 갈등과 경쟁을 표현했다.

〈더 빌리지The Village〉
다이어그램 아이덴티티 디자인(2016). 평소 습작처럼 했던 디자인 을 프로젝트에 활용한 사례다.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 시티 비엔날레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위한 다이어그램 디자인으로 배움과 수업의 과정을 손 글씨로 표현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11호(2021.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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