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되지 않은 경험을 설계하다,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

접두사 ‘막’이 붙은 단어에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성질이 담겨 있다. 그래서 디스트릭트는 ‘막’이라는 키워드와 잘 어울리는 회사다. 디스트릭트는 하나의 단어로 스스로를 규정하기보다 시대와 대중의 감각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갱신해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를 디자인과 결합해 또 다른 경험을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디스트릭트의 콘텐츠를 이끄는 이상진 부사장이 있다.

규정되지 않은 경험을 설계하다, 이상진 디스트릭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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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디스트릭트 코리아 부사장이자 아르떼뮤지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라이브 파빌리온, 알렉산더 맥퀸 MCQ 런던 숍 설치, GD·싸이·빅뱅 등 K-팝 아티스트 홀로그램 콘서트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또한 ‘스태리 비치’, ‘워터폴-NYC’ 등의 작업으로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2025년 앤어워드 인재상 부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dstrictholdings
아르떼뮤지엄이 벌써 전 세계 여덟 곳에 문을 열었다. 나고야, 가오슝, LA 등에도 추가 오픈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감회가 남다르다. 아르떼뮤지엄은 회사가 정말 어려울 때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이게 성공하지 못하면 회사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반응을 얻었다. 우리가 고민해 온 경험과 감각이 세계 여러 도시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아르떼뮤지엄이 지금까지 계속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이유는 디스트릭트가 본질적으로 디자인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기술 회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디자인 회사다. 기술 중심으로 접근하는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는 콘텐츠와 디자인을 분리해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우리는 처음부터 디자인 조직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콘텐츠와 공간, 그래픽을 내부에서 긴밀하게 조율하며 작업한다. 그러다 보니 디테일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쓴다. 미디어 아트는 결국 공간 경험을 다루는 작업이고, 그 경험은 작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터의 컬러감, 공간의 밝기와 어둠, 벽의 질감, 관객의 동선 같은 요소도 굉장히 세밀하게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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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초현실적 해변을 표현한 아르떼뮤지엄 ‘비치Beach 존’.
미디어 아트를 다뤄온 경험의 축적 역시 큰 차이로 이어졌을 것 같다.

맞다. 2012년에는 디지털 테마파크 ‘라이브 파크’를, 2015년에는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플레이 케이팝’을 선보였다. 하지만 두 프로젝트 모두 시행착오에 가까웠다. 라이브 파크는 달 뒤편이나 우주처럼 상상 속 공간을 구현한 것인데, 사람들이 잘 공감하지 못했다. 플레이 케이팝 역시 당시에는 지금처럼 K-팝의 위상이 높지 않아 국내외에서 모두 타깃층이 제한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연 어떤 콘텐츠가 오래 살아남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도달한 키워드가 ‘이터널 네이처’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연이라는 주제에 디스트릭트만의 감각을 입혀 보자는 생각이었다. 또 우리는 미디어 아트뿐 아니라 다양한 하이엔드 브랜드의 상업 광고 작업도 함께 해왔다. 그런 경험이 공간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르떼뮤지엄은 ‘이터널 네이처’라는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지역마다 공간 분위기가 꽤 다르게 느껴진다. 각 도시의 감각이나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공간에 반영하나?

지역마다 분위기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공간의 레이아웃 역시 다르게 접근하려고 한다. 처음 제주에 문을 열었을 때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아일랜드’라는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탁 트인 공간감을 강조하며 자연 속을 유영하는 듯한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 반면강릉은 산세와 ‘관동별곡’ 같은 지역적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밸리’라는 콘셉트를 적용했다. 계단과 높낮이를 활용해 관람객이 바다와 꽃밭 사이를 오르내리며 이동하도록 구성했다. 최근 부산에 선보인 공간은 조금 다르다. 아르떼 뮤지엄의 여덟 번째 공간이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를 담아 ‘서클’을 콘셉트로 삼았다. 원형 구조를 활용해 순환의 이미지를 녹여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

국내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지역에 맞는 큐레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가든’ 공간은 지역마다 전혀 다른 콘텐츠로 구성한다. 뉴욕에서는 현지인에게 친숙한 장미를 활용하고 배경음악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을 깔아 도시의 정서가 느껴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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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선보인 아르떼뮤지엄 ‘가든Garden 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자유의 여신상 디지털 아트를 선보였다.
같은 공간이라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국가마다 꽤 다를 것 같다.

한국 관람객은 전시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새로운 경험을 수용하는 속도도 빠른 편이다. 그래서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체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과정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 자체보다 기술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비치(Beach)’ 같은 작품은 끝없는 바다를 실내 공간으로 옮겨온 듯한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인터랙션 자체에 몰입하면 그런 경험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국내 공간에선 일부러 인터랙티브 요소를 덜어내기도 한다. 반면 미국 관람객들은 공간 자체를 조금 더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편이다. 같은 ‘비치’라도 실제 해변에 온 것처럼 오래 머무르며 쉬다 가는 경우가 많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역시 아이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즐기는 편이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국가마다 피드백 방식도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 관람객이 전체적인 인상이나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면, 일본 관람객은 그래픽 스타일이나 공간 연출의 차이를 굉장히 세세하게 짚어주는 편이다.

아르떼뮤지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스트릭트 부사장을 맡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스스로 지금의 역할을 어떻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나?

회사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렇게 일해 왔다. 웹 에이전시로 시작해 TVC, 론칭 쇼, BTL, ATL, UI, UX까지 정말 안 해본 게 없다. 코딩도 직접 해봤다. 그렇게 계속 여러 영역을 넘나들다 보니 새로운 기술이나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의 아르떼뮤지엄 역시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결과다. 또 나는 디자이너이면서 기획자의 시선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깊게 파고드는 동시에 전체 흐름을 보며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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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뮤지엄 ‘로맨틱 선더Romantic Thunder 존’.
규정되지 않은 영역을 계속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이상진과 디스트릭트 모두 ‘막’의 미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전에 본 적 없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이제야 이해했다’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부모님조차 ‘그래서 너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회사에 다니는 거냐’고 물으실 정도였다(웃음). 그런데 오히려 그 점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하더라도 일단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공간의 의미와 쓰임을 발견한다. 나는 그 지점이 ‘막’의 정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막사발이나 막국수 역시 한 가지 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지 않나. 디스트릭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도를 ‘막’ 해봤기에 가능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렇다. 다만 우리는 ‘막’ 해왔을지는 몰라도 무작정 해온 것은 아니다. 예전에 ‘무작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계획 없이 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런데 우리가 해온 일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지만, 그 안에는 늘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경험과 방향성이 있었다. 또 우리는 아무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완성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회사다. 오히려 그 집요함 때문에 힘들 때도 많다. 결국 디스트릭트에게 ‘막’은 아무렇게나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 아직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을 계속 실험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6호(2026.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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