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 아를에서 열리는 자하 하디드 회고전
프리츠커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대규모 회고전
2026년 5월 1일부터 2027년 3월 31일까지, 프랑스 아를의 루마 아를에서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업을 조명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6년 5월 1일부터 2027년 3월 31일까지, 프랑스 아를의 루마 아를(Luma Arles)에서는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업을 조명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건축가의 사망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영향력 있는 문화계 인물을 재조명하는 루마의 연례 아카이브 전시 시리즈의 여섯 번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전시는 하디드의 초기 작업부터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건축가의 작업 세계가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보는 동시에 건축적 접근 방식을 예술적·이론적 탐구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추상 회화를 공간 창조의 방법으로 활용하여 현대 건축의 지평을 새롭게 연 선구적인 건축가의 유산을 되새기고 있다.
루마 아를에서 진행되는 자하 하디드의 회고전
이번 전시에서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건축가 사이의 오랜 대화를 되짚어 본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오브리스트는 로마 아카데미 드 프랑스(Académie de France à Rome)가 이탈리아 로마의 빌라 메디치(Villa Medici)에서 개최한 연작 전시 〈도시, 정원, 기억(La Ville, le Jardin, la Mémoire, 1998-2000)〉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었다. 오브리스트는 2000년 전시의 일환으로 하디드에게 ‘메쉬웍스(Meshworks)’의 실현을 제안했고, 이후 이 작업은 건축가가 기존 도시와 건축의 경계를 넘어 21세기적 공간 개념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시 이후 이들의 만남은 런던, 바젤, 뮌헨, 파리를 오가며 이어졌고, 도시와 미술관, 그리고 21세기 도시주의의 미완의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로 발전했다.

이들의 인연은 독창적인 전시 기획으로 잘 알려진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하디드에게 있어 서펜타인은 자신의 건축적 비전을 널리 알린 중요한 무대였다. 건축가는 1996년부터 서펜타인 갤러리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디렉터인 줄리아 페이튼 존스(Julia Peyton-Jones)의 초청으로 2000년 제1회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2006년 오브리스트가 서펜타인에 합류한 이후에 건축가는 서펜타인의 여러 마라톤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07년 서머 파티에서는 설치 작품 ‘릴라스(Lilas)’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바탕으로 하디드 사후에 서펜타인 갤러리에서는 〈자하 하디드: 초기 회화와 드로잉(Zaha Hadid: Early Paintings and Drawings)〉 전시가 진행되며 건축가를 기렸다.

그리고 그 전시 이후 처음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건축가의 초기 회화와 스케치 작품이 대거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절대주의(Suprematist) 기하학을 탐구한 이 습작들은 하디드가 최초로 완공한 건축물인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의 비트라 소방서부터 마르세유의 CMA CGM 타워, 몽펠리에의 피에르비브(Pierresvives)에 이르기까지 주요 건축 프로젝트의 개념적 토대가 되었다.

회화와 드로잉, 각종 아카이브 자료는 물론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촬영된 미공개 영상 인터뷰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건축·미술·출판·담론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한 하디드의 다층적인 면모를 조망한다. 이를 통해 전시는 하디드를 그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긴 건축가가 아니라, 공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했던 사상가이자 실험가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자하 하디드는 어떤 인물?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업가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하 하디드는 어린 시절 이라크 남부에 있는 고대 수메르 도시를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렘 쿨하스(Rem Koolhaas)와 엘리아 젠겔리스(Elia Zenghelis)의 영향을 받으며 모더니즘과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남긴 미완의 실험과 가능성을 탐구했다.

하디드는 첨단 소프트웨어가 복잡한 건축 설계를 구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미래지향적인 건축 비전을 제시한 선구자였다. 축측 투영법1을 비롯해 다중 시점, 서예적인 선묘, 아크릴 레이어링 등과 같은 기법을 활용하며 독창적인 공간 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기에 오랫동안 도면과 이미지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문에 하디드는 한때 ‘종이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에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 사무소를 설립한 하디드는 1983년 홍콩 더 피크(The Peak) 레저 클럽 국제 설계 공모전 우승을 계기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 비트라 소방서가 완공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건축적 비전을 현실 공간에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건축 기술의 발전과 함께 건축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수상 경력은 하디드의 건축적 성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4년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과 2011년 스털링상, 2012년 대영제국 훈장(DBE), 2016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 등을 받으며 현대 건축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지만, 오늘날에도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가 계속해서 건축가의 철학과 실험 정신을 계승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 루마 아를에 대하여

하디드의 건축 철학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가 진행되는 루마 아를은 하디드의 절친했던 친구이자 이제는 고인이 된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했다. 게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적으로 지정된 아를의 로마 원형 경기장을 상징하는 동시에, 아를 주변에서 발견되는 울퉁불퉁한 암석 지형을 반영하기 위해 원통형의 구조 위에 유리와 금속 입면을 불규칙하게 쌓아 올린 독창적인 형태를 구현했다. 약 1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이 햇빛에 반사되며 빛나는 이 건축물은 빈센트 반 고흐가 수많은 걸작을 남긴 도시 아를의 현대적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시는 파르크 데 자틀리에(Parc des Ateliers) 내 ‘더 타워(The Tower)’에서 개최되며, 건축가의 커리어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초기 실험을 시작으로 주요 프로젝트와 프랑스 건축계에서의 수용 과정을 거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오랜 교류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오늘날 자하 하디드는 곡선미가 돋보이는 미래적 건축물의 창조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완성된 건축물보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회화와 드로잉, 대화와 기록에 주목함으로써 건축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건축이 현실이 되기 전 수많은 실험과 사유의 흔적들은 자하 하디드의 건축 세계가 형성된 과정들을 보여주며, 왜 하디드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혁신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Hans Ulrich Obrist Archives: Zaha Hadid
기간 2026년 5월 1일 – 2027년 3월 31일
주소 프랑스 루마 아를 더 타워 아카이브 갤러리
운영 시간 매일 10:00 – 18:30
웹사이트 luma.org
- 축측 투영법(Axonometric projection): 하나 이상의 축을 기준으로 물체를 회전시켜 여러 면을 동시에 표현하는 평행투영 기법. ↩︎
글 박민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