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칸 라이언즈 수상작 리뷰

칸 라이언즈(Cannes Lions)는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브 축제다. 올해는 전 세계 92개국에서 2만여 점이 출품됐으며, 그중 33점이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월간 〈디자인〉이 그랑프리 수상작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엄선해 소개한다.

2026 칸 라이언즈 수상작 리뷰

인쇄·출판 부문 – 하인즈 케첩 ‘Looks Famili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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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출판 부문 그랑프리는 하인즈 케첩이 차지했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리싱크(Rethink)가 제작한 이 캠페인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자튀김 포장 용기가 하인즈 케첩 로고와 닮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제품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도 감자튀김만으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옥외광고, 포스터,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도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는 흐려지지 않았다. ‘It Has to Be Heinz’. 전 세계인이 즐기는 감자튀김에는 결국 누구나 아는 하인즈 케첩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클라이언트 하인즈 케첩
디자인 리싱크

인더스트리 크래프트 부문 – 드롱기 ‘Tiny Coffee Shops’

가전제품 브랜드 드롱기는 커피 머신을 작은 카페로 변신시켰다. 제품 위에 설치한 5개의 정교한 미니어처 카페는 각각 밀라노, 파리, 도쿄, 코펜하겐, 베를린의 커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통 모형 제작 기법으로 건물에 깃든 세월의 흔적과 작은 디테일까지 일일이 손으로 구현해, 실제 동네 카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집 안에서도 카페에 있는 듯한 느낌을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번 캠페인은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공개했다. 밀라노 현지에 팝업 스토어를 열어 캠페인을 오프라인 경험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 드롱기
디자인 롤라

엔터테인먼트 부문 – 아디다스 ‘오리지널 포에버’

오아시스의 두 형제, 리암과 노엘 갤러거는 종종 아디다스 트랙슈트와 운동화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특유의 스타일은 팬들에게까지 확산되며 밴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2024년 오아시스의 극적인 재결합은 아디다스에게 더없이 좋은 마케팅 기회였다. 밴드 재결합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를 선보이는 한편, 오아시스의 영원한 대표곡 ‘Live Forever’를 배경음악으로 한 캠페인 영상을 전 세계에서 상영하며 오아시스와 아디다스의 문화적 유대를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렸다. 캠페인 영상을 제작한 요하네스 레오나르도(Johannes Leonardo)는 아카이브 영상과 새로 촬영한 장면을 교차 편집해 3분짜리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업을 위해 수십 벌의 빈티지 아디다스 의상과 300명이 넘는 오아시스 팬들을 섭외했다고. 아디다스 캠페인 영상은 칸 라이언즈 엔터테인먼트 음악 부문에서도 수상했다.

클라이언트 아디다스
디자인 요하네스 레오나르도

디자인 부문 – 애플 TV 리브랜드

디자인 부문 그랑프리는 애플 TV에 돌아갔다. 지난해 11월에 공개한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언뜻 디지털 작업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롯이 손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사과 로고 형태의 유리 구조물에 조명을 비추고, 유리에 반사된 빛과 색을 카메라에 담았다. 애플 TV는 이 제작 과정을 기록한 메이킹 영상으로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을 드러냈다. AI가 올해 칸 라이언즈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가장 아날로그한 작품이 디자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클라이언트 애플
디자인 TBWA \ Media Arts Lab

필름 크래프트 부문 – 코인베이스 ‘Your Way Out’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의 캠페인 영상은 완성도 높은 연출력과 명확한 브랜드 전략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 배경은 비디오게임 세계다. 자아를 자각한 NPC 캐릭터가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면은 거칠고 투박한 저해상도 그래픽을 연상시키지만, 실제 제작은 대부분 실물 특수 효과에 의존했다. 코인베이스 크리에이티브 부문 부사장 조 스테이플스(Joe Staples)는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 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돈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유를 비디오게임에 빗대며 브랜드 메시지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클라이언트 코인베이스
디자인 Isle of Any


Interview

송창렬 크랙더넛츠 대표 & 2026 칸 라이언즈 PR 카테고리 심사위원

심사 과정에서 자주 논의된 기준은 무엇이었나?

가장 많이 오간 질문은 “왜 브랜드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였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좋은 의도만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참신한 아이디어, 의미 있는 주제보다 중요한 것은 캠페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브랜드 정체성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됐는지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메시지를 내세우는 건 더 이상 특별할 게 없다. 실제 행동으로 브랜드 철학을 증명했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사회에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는지가 심사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올해 출품작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나 화두가 있었나?

많은 사람이 올해 칸 라이언즈의 화두는 AI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심사를 하며 느낀 것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AI를 활용했다는 사실 자체를 차별점으로 내세운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AI는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하는 기본 도구가 된 것이다. 반면 AI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었다. 광고업계는 AI를 어디까지나 창작의 보조 수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AI는 도구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으로 이미 시작된 변화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구글, 오픈AI 같은 테크 기업은 AI를 단순히 제작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바라본다. 나 역시 이 관점에 공감한다. AI는 창작 과정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아니라, 그 기술 위에 어떤 관점과 해석을 더할 수 있느냐다.

출품작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애플 TV 리브랜드 프로젝트다. 모두가 AI를 외치는 시대에 이 프로젝트는 정반대를 보여 줬다. 디자이너의 집요한 장인 정신으로 이 정도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에 놀랐다. 영상 속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The process is the story. The process is the art.” 결과물보다도 그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곧 애플의 철학이라는 걸 드러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도 고민이 많아졌다. 그동안은 AI가 가져올 변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히려 AI가 평균값의 결과물을 쏟아낼수록 집요한 고민과 장인 정신이 깃든 디자인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칸 라이언즈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칸 라이언즈에 출품하려면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는 ‘케이스 필름’을 먼저 제출해야 하는데, 한국인이 만든 케이스 필름은 대체로 설명적이다.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 과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보여주는 구조다. 반면 글로벌 수상작은 케이스 필름부터 이미 완성 단계다. 캠페인을 만드는 능력 못지않게 그것을 보여주는 능력도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는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글로벌 PR의 필요성이다. 심사위원의 주목을 받는 작품 중에는 출품 전부터 해외 미디어와 업계 커뮤니티에서 회자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심사는 제출된 작품만으로 이루어지지만, 글로벌 업계에서 형성된 담론과 논의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카테고리 전략도 중요하다. 똑같은 프로젝트라도 어떤 카테고리에 출품하느냐에 따라 경쟁률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귀띔해 주고 싶다.

한국의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I 시대에는 기술이나 도구보다도 감각이 경쟁력을 만든다. 무엇을 선택하고 덜어낼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얼마나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켰는지에 달려 있다.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글로벌 어워드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내가 만든 작품을 전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은 결과물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8호(2026.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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