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뒤에 있는 디자이너들

브랜드를 만드는 수많은 이름들

창립 세대의 실용주의, 인간 중심의 감각, 빛이라는 재료, 일상의 유머,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성까지. 이케아를 거쳐 간 디자이너 다섯 명의 궤적을 소개한다.

이케아 뒤에 있는 디자이너들

“이케아 제품을 샀더니 이케아 디자이너가 따라왔다.” 최근 공개된 이케아 광고는 이 문장으로 깊은 각인을 남긴다. 가격도, 기능도 아닌 디자이너를 이야기하는 광고는 지금의 이케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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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광고 스틸컷 ©IKEA

책장 하나, 조명 하나, 의자 하나는 저마다 다른 저자성을 가질 터. 다만 이케아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 저자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좋은 디자인’을 표방해온 민주적 디자인 원칙은 개별 디자이너의 이름보다 브랜드 전체의 일관성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이에 디자이너는 이케아와 협업하며 브랜드의 언어를 함께 만들어왔지만, 그 이름은 제품보다 앞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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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광고 스틸컷 ©IKEA

최근 광고는 그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제품들 하나하나의 이면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유수 디자이너와 협업했다는 마케팅 문법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짚어볼 지점은 다른 데 있다. 좋은 디자인은 결국 한 사람의 사유에서 출발하고, 그 사유가 대량생산이라는 필터를 통과해 수많은 집의 일상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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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광고 스틸컷 ©IKEA

이케아를 거쳐 간 디자이너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브랜드의 철학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갈라지고 다시 모였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다섯 개의 지점을 소개한다. 창립 세대의 실용주의, 인간 중심의 감각, 빛이라는 재료, 일상의 유머, 그리고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성까지, 다섯 명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사람을 위한 디자인, 일세 크로퍼드

일세 크로퍼드(Ilse Crawford)는 공간과 사물을 통해 사람이 더 편안하고 인간 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해온 영국의 디자이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육자인 그는 2003년 ‘스튜디오일세(Studioilse)’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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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세 크로퍼드 ©Studioilse

이케아와의 인연은 2015년 신넬리그(SINNERLIG) 컬렉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코르크와 대나무, 천연 섬유 등 촉감이 살아 있는 소재를 활용한 이 컬렉션은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서도 인간적인 온기와 감각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대나무 격자 구조의 펜던트 조명은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지금까지도 이케아를 대표하는 장수 제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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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가트 컬렉션 ©IKEA

2026년에는 할가트(HALGATT) 램프를 선보이며 협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톤 웨어와 리넨, 황동처럼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소재를 사용해 유행을 타지 않는 조명을 완성했다. 공간을 지배하지 않으며, 일상을 조용히 받쳐주는 은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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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Ett Hem_Stockholm 2022 사진 Magnus Marding, (오) 코펜하겐 Aesop 2016 사진 Felix Odel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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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Moods_2022 ©amesgmbh 사진 Andrés Valbuena

그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배경이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크로퍼드의 이러한 철학은 이케아와 공명하며 2021년부터 장기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빛을 디자인하는 법, 사빈 마르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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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 마르셀리스 ©IKEA

사빈 마르셀리스(Sabine Marcelis)는 빛과 색, 소재가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을 탐구하는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다. 유리와 레진, 천연석처럼 빛과 상호작용하는 소재를 활용해 공간과 제품을 디자인하며, 형태보다 경험을 중심에 두는 작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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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바름블릭스트 컬렉션 ©IKEA

마르셀리스의 디자인 철학은 이케아 바름블릭스트(VARMBLIXT) 컬렉션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3년 출시된 오렌지색 원형 조명은 ‘도넛 램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단순한 원형 오브제처럼 보이지만, 유리를 통과한 빛이 공간 전체를 물들이도록 설계해 분위기를 디자인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6년에는 바름블릭스트를 스마트 조명으로 확장했다. 기존의 조형미를 유지하면서도 색온도와 색상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기능을 더해 빛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도록 만들었다. 2027년에는 새로운 컬렉션도 예고돼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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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kum Petrol Green 2026 사진 Letizia Cigliutti, Alberto Strada, Lorenzo Cappellini Ba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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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ier exhibition design 2026 사진 Sean Fenne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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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 2025 사진 Scheltens & Abbene

마르셀리스의 디자인은 형태보다 빛이 먼저 기억된다. 조명을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감정을 만드는 재료로 다루는 꾸준함이 엿보인다.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구스타프 웨스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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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웨스트만 ©IKEA

구스타프 웨스트만(Gustaf Westman)은 유쾌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주목받는 스웨덴의 디자이너다. 건축을 전공한 그는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맞춤 가구와 세라믹, 유리 제품 등을 선보이며 동시대 디자인 신을 대표하는 창작자로 떠올랐다.

웨스트만의 작업은 기능보다 즐거운 경험에 무게를 둔다. 대표작인 ‘블롭Blob’ 시리즈와 독특한 형태의 테이블 웨어는 특유의 위트가 두드러진다. 이는 진지함보다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상적 사물에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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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테르핀트(VINTERFINT) 컬렉션 ©IKEA

이러한 디자인 언어는 이케아와의 협업에서도 이어졌다. 화려한 색감과 둥근 형태를 강조한 테이블 웨어와 홈 액세서리 컬렉션을 통해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평범한 하루를 축제처럼 즐길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실용적인 생활용품에 조형적인 재미를 더하며, 이케아가 오랫동안 이어온 컬러와 놀이의 디자인 DNA를 새로운 세대의 감각으로 해석했다.


이케아의 다음 세대, 엘렌 할스트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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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할스트룀 ©IKEA

엘렌 할스트룀(Ellen Hallström)은 이케아에서 인턴으로 경력을 시작한 뒤, 현재는 프리랜스 제품·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이케아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스웨덴 말뫼를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룬드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영화도 함께 공부했다. 그는 스스로를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문제 해결형 디자이너로 소개한다. 관심은 형태보다 순환성, 생산 방식, 소재 효율 같은 시스템적 조건에 맞닿아 있다.

최근에 출시된 IKEA PS 컬렉션 2026의 접이식 의자는 톡톡 튀는 색감과 기능성으로 주목받았다. 사용하지 않을 때 벽에 걸어 하나의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각 구조 요소에 서로 다른 색을 적용해 입체파 회화를 연상시키는 인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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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EA PS 컬렉션 2026 ©IKEA

그가 디자인한 컬렉션의 또 다른 제품인 이지 체어는 자작나무 합판만으로 편안함과 합리적 가격을 구현했다. 최근에는 모듈형 다이닝 가구 시스템인 스콜스타(SKÅLSTA)도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며, 상판과 다리, 좌판과 프레임을 조합하는 구조를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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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wood 2021 ©Ellen Hallström

할스트룀은 생산과 사용, 공간의 제약을 함께 고민하는 디자이너다. 형태보다 만드는 과정과 시스템에서 출발하는 그의 작업은 이케아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길러내는지 보여준다.


이케아 디자인의 출발점, 길리스 룬드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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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스 룬드그렌 ©IKEA

이케아 하면 이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길리스 룬드그렌(Gillis Lundgren).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케아 디자인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룬드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말뫼 공과대학에서 드로잉을 배운 그는 23세에 이케아 카탈로그 제작을 돕는 컨설턴트로 이케아의 창업주인 잉바르 캄프라드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로고 개발을 돕고 카탈로그 표지를 제작하는가 하면 제품 사진까지 찍었다. 1954년에는 광고 매니저로 정식 채용되며 이케아의 네 번째 직원이 됐고, 이후 제품 개발과 크리에이티브 디렉션까지 영역을 넓히며 평생 400개가 넘는 제품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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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tajt-denim-catalogue-cover 1973 ©IKEA (오) 3. mila-swivel-chair-footstool-blue-1966 ©IK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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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ala-seating-furniture-catalogue-1972 ©IKEA

그는 디자인을 거창한 예술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생활 도구로 바라봤다. 단순한 형태와 합리적인 가격,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결합해 이케아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었고, 새로운 소재와 제조 방식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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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책장 시리즈 ©IKEA

대표작인 빌리(BILLY) 책장은 기술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냅킨 뒷면에 그린 스케치에서 시작해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외에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가 있는 회전 암체어인 뒤블링에(DYVLINGE)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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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a-swivel-chair-sweden-2023 ©IKEA

그는 디자인과 생산, 물류를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봤고, 조립식 가구와 플랫팩 시스템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가 ‘이케아다운 디자인’이라고 떠올리는 단순함과 실용성은 대부분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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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블링에 컬랙션 ©IKEA

이케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가구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가구만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공간, 빛이 만드는 분위기, 유쾌한 일상, 지속가능한 생산, 그리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함께 제안한다.

익숙한 브랜드를 다시 읽는 기쁨은 그 뒤에 있었던 사람들과 만나는 데에서 나온다. 늘 같은 이름으로 기억했던 이케아는 사실 수많은 디자이너의 시선과 철학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우리는 종종 브랜드를 소비하지만, 그 브랜드를 이루는 이름들은 지나친다. 그들의 작업을 알고 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매번 무심히 스치던 곳이 소중해진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사들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을 있게 한 어떤 생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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