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직업 뒤에 숨는다”라며 현대인의 모호함에 대해 일갈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21세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봤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직업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자신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스스로 고유의 차별성을 갖추는 동시에 시장의 니즈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직함이 애매하기 때문일까? 그들의 예술성과 전문성은 과소평가 혹은 과대평가되기 십상이다. 월간 〈디자인〉은 2024년에 주목해야 할 유능한 일꾼들의 입을 빌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광고, 그래픽, 제품, 영화, 음악, 패션, 미디어 등 여러 범주의 산업군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함께 엿볼 수 있다.
우리는 18년 동안 함께 일해온 건축가다. 밀라노 폴리테크니크 대학교에서 도시계획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제품 디자인, 시노그래피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4년간 플로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고, 현재는 자노타에서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의 대표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2022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플로스의 컬렉션을 선보인 전시 〈별을 다시 보다(See the Stars Again)〉, 베네치아 인근 무라노섬의 팔라초 바로비에르 & 토소Palazzo Barovier & Toso 인테리어, 수전 브랜드 콰드로Quadro의 ‘슈퍼 탭Super Tap’.
스스로 (혹은 타인이)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명명한 시점은?
우리는 수년 동안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제품을 한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를 맡아왔다. 갤러리나 박물관의 큐레이터, 학예사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서로 다른 사물이나 작품을 일관성 있게 보여줘야 하는 이 작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됐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규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그 기업이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근본적 가치는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2022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자노타는 헤리티지, 이탈리아 장인 정신, 선구적 디자인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지향한다.
부드러운 형태를 강조한 모듈형 소파, ‘범퍼Bumper’.
‘크리에이티브’와 ‘디렉터’ 관점에서 꼭 해야 할 일 혹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것, 관대할 것.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잘 영입했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는?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노티에서 업적을 이룬 로돌포 도르도니Rodolfo Dordoni를 존경하지 않을까. 그는 브랜드를 크게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 방식을 개발했다. 공간의 모든 제품이 가구와 어우러져 일관된 환경을 조성하는 일련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최초로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다양한 악기 연주를 아우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 그의 말에 동의한다.
평소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디자인 서적과 잡지를 수집한다. 우리는 인쇄 매체의 힘을 믿는다. 거대한 도서관도 보유하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다. 전자 음악부터 로켓 과학까지 모든 것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한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말처럼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라노에 있는 자노타 플래그십 스토어.재생 가능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커버를 만든 소형 암체어 ‘주노Giuno’.카를로 몰리노를 오마주한 소파 ‘아르데아 Ardea’.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자노타의 ‘자자 베드Zaza Bed’.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다른 사람보다 변화를 먼저 파악하는 능력, 상반된 요구를 하나로 모으는 능력. 타협의 기술도 필요한데,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성이기도 하다.
미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재정의한다면?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 사람이 진두지휘해 회사를 이끈다는 얘기가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매우 큰 규모의 팀에서 작업을 수행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이자 가장 중요한 디자인위크로도 손꼽히는 ‘밀라노 디자인위크(Milan Design Week) 2024’가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디자인위크 기간에 밀라노 시내 각지에서 펼쳐지는 장외 전시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가 주요한 볼거리인데, 삼성전자가 이에 참가하여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인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6일간,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과학기술박물관 부지에 있는 레 카발레리제(Le Cavallerizze)에서 <공존의 미래(Newfound Equilibrium)> 전시를 열었다.
포르마 판타스마는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가 앞다투어 찾는 디자이너지만 최근 이들의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철학과 인류학을 토대로 한 광범위한 연구로 시작해 미술관에서의 전시로 끝을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만 해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뮤지엄Rijksmuseum,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필립 스탁, 재스퍼 모리슨, 마르셀 반더스 등 기존에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