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파리 2024 이모저모
예술과 공예를 아우르는 프랑스 아트페어
지난 4월 초,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에페메르에서 <아트 파리 2024>가 열렸다. 행사는 유명 작가, 갤러리를 유치하기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예술을 소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예술과 공예를 아우르는 흥미로운 현장을 소개한다.
국제적인 유명 갤러리, 작가의 명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추구하며 근현대 예술을 소개하는 제26회 아트 파리 2024(Art Paris 2024)가 4월 4일부터 7일까지 그랑 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에서 진행됐다.
주최측은, “올해는 25개국에서 온 갤러리 136곳이 참가(그 중 60%가 프랑스 갤러리)했으며, 컬렉터를 포함해 7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을 유치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유럽에서 방문했으며,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한 수치입니다. 4월 3일 프리 오프닝 기간은 다소 천천히 시작하는 가 싶더니, 마지막 이틀 동안 판매가 가속화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2개의 전시, 2명의 큐레이터
국립미술사연구소(Institut National d’Histoire de l’Art)의 소장인 에릭 드 샤세(Éric de Chassey)와 아트 비평가이자 작가인 니콜라스 트렘블리(Nicolas Trembley)는 게스트 큐레이터로서, 서로를 보완하는 각각의 주제를 제안했다. 먼저, 에릭 드 샤세는 <깨지기 쉬운 유토피아, 프랑스 현장의 모습(Fragile Utopias, a view of the French scene)>을 주제로 21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늘 새롭고 불연속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계보학’으로 묘사되는 프랑스 아트 신의 유토피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니콜라스 트렘블리는 ‘아트 앤 크라프트(Art & Craft)’를 테마로 예술과 장인 정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가 20명의 작품을 통해 다채로운 공예의 세계로 대중을 안내했다. 여기에는 폴란드의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와 바바라 레비투-스와이더스카(Barbara Levittoux-Swiderska), 스페인의 호셉 그라우-가리가(Josep Grau-Garriga)와 같은 1960년대 선구자들의 작품을 포함한다.
또한 이번 행사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 현대 예술가로는 독창적인 섬유 작업을 보여준 마다가스카르의 조엘 안드리아노메리소아(Joël Andrianomearisoa), 도예를 선택한 프랑스의 제롬 일송(Jérôme Hirson), 유리 공예에 이탈리아의 미켈레 치아치오페라(Michele Ciacciofera)가 있다.
눈길을 끈 갤러리와 작가는?
특히, 아트 앤 크라프트 테마에서 눈길을 끈 작품 중, 뉴욕 기반의 아트 갤러리 비앙베뉴 스타인버그 앤 제이(Bienvenu Steinberg & J )부스 내 제인 양 데엔(Jane Yang-d’Haene) 작가의 ‘무제(Untitled)’ 시리즈는 단연 흥미로웠다. 한국에서 태어나 1984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녀는 자신의 뿌리 그리고 추억에서 유래한, 하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는 초자연적이며 추상적이고 동시에 기능성을 갖춘 조각적 오브제를 만든다.
(오른쪽) Untitled, 2024, Jane Yang-d’Haene, Sculpture, Stoneware, Glaze. Courtesy of Bienvenu Steinberg & J
조선시대의 달 항아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토기는 매끄러운 흰색 외관이 아닌 다양한 유약과 기술을 사용해 독창적인 질감, 색조의 변화, 드라마틱 하지만 동시에 정적인 움직임을 드러낸다. 불완전함을 의도적으로 포용하면서 그 우연함이 창조해 내는 미학적인 가치를 포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창작 과정을 거치며 그렇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의, 디자인과 공예,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을 완성해낸다.
(오른쪽) Katia Kameli, Galerie 110 Véronique Rie!el. ©Art Paris 2024 – Marc Domage
아트 파리의 프리미엄 파트너로, 프랑스 예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최대 상업은행인 BNP 파리바(BNP Paribas)는 이봉 랑베르 갤러리(Galerie Yvon Lambert)의 나탈리 두 파스퀴에(Nathalie Du Pasquier)에게 BNP 파리바 은행 개인상(BNP Paribas Banque Privée Prize)을 수여했다.
1957년생인 나탈리 두 파스퀴에는 독특한 경력을 지닌 중견 예술가로, 1980년대 멤피스 그룹의 창립 멤버로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경력 전반에 걸쳐 사물과 공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학제적인 관점을 지닌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설립한 지 6년 이하의 신진 갤러리가 지닌 현대적인 비전에 포커싱하는 프로메스(Promesses)에서는 브뤼셀의 펠릭스 프라숑 갤러리(Galerie Felix Frachon), 런던의 소호 레뷰(Soho Revue)를 포함한 9개 갤러리를 소개했다.
메종 파리지엔 갤러리 15주년 기념전
한편, 같은 기간에 맞춰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렸으니, 메종 파리지엔(maison parisienne) 갤러리의 15년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15 Years, 15 Artists, 15 Works》가 파리의 장식 미술 박물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진행됐다.
(오른쪽) Simone Pheulpin, L’intemporelle, 2023. ©Vincent Leroux
갤러리의 설립자 플로렌스 길리에 베르나르(Florence Guillier Bernard)는 “메종 파리지엔은 15년간 70회의 전시를 기획해 왔으며, 프랑스의 장인 정신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접근 방식으로 현대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이거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메종 파리지엔느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목재, 도자기, 금속, 종이, 깃털, 직물, 유리 등의 소재를 활용해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15명의 예술가들은 15개의 특별한 작품을 공개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장식 미술 박물관 내 역사적이면서도 동시에 비밀스러운 장소인 올 데 마레쇼(Hall des Maréchaux)의 웅장한 공간은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이상 집중력과 영감을 잃지 않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 온 인내심 강한 창작가들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83세의 시몬 플팡(Simone Pheulpin)은 면과 바느질 핀 만으로 완성한, 타임리스를 의미하는, ‘랑탕포렐(L’intemporelle)’을, 줄리앙 베르뮐렌(Julien Vermeulen)의 ‘블랙 아르고스(Black Argos)’는 칠면조와 공작새의 깃털로 만든 몰입적이고 명상적인 작품을, 릴리안 도비스(Lilian Daubisse)의 ‘코라일(Corail)’은 산호를 의미하는데, 유기적인 형태의 골판지 오브제로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희귀한 수종인 지르코테를 활용해 곡선미 넘치는 긴 의자 ‘메리디엔 웨이브(Meridienne Wave)’를 제작한 1990년생 작가 피에르 르나르(Pierre Renart), 자수로 새로운 차원을 탐구하는 오렐리 마티고(Aurélie Mathigot)의 ‘오마주 아 칼레(Hommage à Calais)’, 팽이를 닮아 어딘가 친근한 형태의 참나무 조각품 ‘트리부(Tribu)’의 제롬 블랑(Jérôme Blanc) 등 각각의 작품이 지닌 고유성이 충분히 돋보이는 전시로 기념적인 순간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