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패션 하우스의 내러티브를 명확하게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공간, 그는 이곳을 감정의 놀이터라고 말한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지난 6년간의 여정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패션 하우스의 내러티브를 명확하게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공간, 그는 이곳을 감정의 놀이터라고 말한다.
미술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한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예술의 종말을 고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을 종말 이후의 예술로 해석하고 ‘컨템퍼러리’라고 규정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어떤 경계나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 ‘무엇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고 설파했는데 이는 전통적 미학에서 벗어나 예술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시대, 작품의 물리적 형태보다 철학으로 예술을 정의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암시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지난 6년간 선보인 캠페인을 재해석한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전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패션 하우스의 아카이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멀티미디어 전시다. 성격이 전혀 다른 오브제를 기능과 무관하게 조합하고 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냄으로써 브랜드 헤리티지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포스트 젠더리스와 맥시멀리즘을 테마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전개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미켈레의 자취를 따라 각기 다른 13개의 공간이 DDP 디자인 박물관에 구현된다. 관람객을 맞는 첫 공간은 ‘컨트롤 룸’. 마치 무대의 백스테이지처럼 전시회 곳곳을 분할된 스크린으로 보여준다. 이곳을 지나면 다양한 테마 공간과 복도가 연결되어 구찌 캠페인의 다감각적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데, 발걸음을 옮기기에 앞서 전시명의 ‘아키타이프archetype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키타이프는 모든 복제품의 원형을 뜻한다. 20세기 프랑스 대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원본이 없는 복제품인 시뮬라르크를 반복해서 생산하는 행위 시뮬라시옹(simulation)으로 인해 복제품이 원본을 대체하며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구분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이론을 펼쳤지만 구찌는 여기에 반기를 들 듯 결코 재현할 수 없는 본래의 형태 ‘절대적 전형’을 기록한다. 모든 캠페인이 독특하고 반복될 수 없는 순간이라는 명제를 자유롭고 담대하게 표현함으로써 컬렉션의 고유성을 전달한다. 특히 미켈레는 구찌의 장인 정신과 복고주의를 보전하면서도 과거, 현재, 미래의 아이템을 결합하는 데 탁월하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68혁명, 노아의 방주, 은하계, 말, 무용수, 천사, 외계인 등 그의 풍부한 서사에 담긴 폭넓은 대중문화 요소와 영감의 원천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최첨단 기술과 정교한 수공예를 넘나드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아르키비오 페르소날레Archivio Personale는 미켈레의 미학이 한층 돋보이도록 몰입형 공간을 구축했다. 강렬하고 몽환적인 향기로 모든 장면을 에덴동산으로 바꿔놓는 현대판 물의 정령 ‘구찌 블룸’, 프레스코화가 미로 속에서 끊임없이 증식하는 패러독스의 공간 ‘2016 크루즈 컬렉션 디오니서스 댄스’, 즉흥적인 몸짓 혹은 치밀하게 계산한 춤사위로 자신을 표현하라고 손짓하는 ‘2017 프리폴 컬렉션 소울 씬’.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구찌의 비전은 그동안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며 개성을 상실해버린 패션계에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무규칙, 무시대, 무성별’의 취향을 대변하는 미켈레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시적 감성을 최대치로 표현하고 그 선언문을 패션 하우스의 면밀한 현장으로 탈바꿈한 결과다. 화사한 색채, 예상치 못한 조합, 대범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패턴 등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은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이 감독한 구찌의 2020 크루즈 컬렉션 캠페인의 짧은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구찌는 그 자체로 파티이고, 모두가 초대받았습니다.”
글 정인호 기자
몰입형 멀티미디어로 구현한 구찌 캠페인
컨트롤 룸Control Room 어둡고 몽환적인 방에서 만화경 같은 모니터가 빛난다. 쉴 새 없이 바뀌는 이미지와 소리로 이루어진 구조물. 그 안에 담긴 동시대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멀티버스를 들여다본다. 곳곳에 흩어진 영상은 앞으로 이어질 공간에서 영감을 얻은 지형도와 같다.
구찌 블룸Gucci Bloom 이곳은 여성을 예찬하는 동시에 젊음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불러낸다. 구찌 블룸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첫 향수로 포용력과 진정성, 자유로운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향기를 조합해 강렬한 경험을 농축한 전시 공간은 관람객에게 ‘꽃이 만개한 나만의 정원’을 선사한다.
2016 크루즈 컬렉션 디오니서스 댄스(Cruise 2016 The Dionysus Dance) 미로처럼 복잡하게 서 있는 거울과 영상, 황홀한 눈속임과 기분 좋은 착시. 피렌체 몬테스페르톨리Montespertoli에 위치한 유서 깊은 손니노성(Castello Sonnino)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배경으로 우아한 파티가 열린다. 프레스코화는 미로 속에서 끊임없이 증식하며, 전시 공간은 패러독스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2018 프리폴 컬렉션 거리로 나온 구찌(Pre-Fall 2018 Dans les Rues) 1968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18년 68혁명 기념일에 구찌는 프랑스의 청춘을 예찬했다. ‘거리로 나온 아름다움’은 68혁명 포스터 문구로 컬렉션과 함께 즉흥과 역동의 에너지를 전해준다.
2020 크루즈 컬렉션 컴 애즈 유 아_RSVP(Cruise 2020 Come as You Are_RSVP) 하모니 코린이 촬영하고 연출한 이 캠페인은 관람객을 세기의 파티로 초대한다. 파티가 끊이지 않던 시대, 쾌락주의와 잉여의 황금기, 실험 예술과 젊은이들의 대항문화가 재탄생한 시기인 1980년대의 아름다움이 달콤하게 넘실거린다.
2016 봄·여름 컬렉션 반항적 낭만주의(S/S 2016 Rebellious Romantics) 알레산드로 미켈레 컬렉션을 상징하는 화사한 색채, 대범한 패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색색의 옷을 차려입은 주인공은 낭만과 유머, 젊고 반항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전시 공간에 설치한 마네킹은 흥에 겨운 젊은이들이 춤추러 돌아가기 직전의 모습을 영구 박제한 것.
2018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콜렉터스(F/W 2018 Gucci Collectors) 유별난 수집가의 열정과 집착을 엉뚱하고도 경쾌하게 포착했다. 진열장을 꽉 채운 수집품이 거울에 비쳐 두 배로 커진 풍경이 아찔하고도 몽환적이다.
2018 봄·여름 컬렉션 구찌 상상의 세계(S/S 2018 Gucci Hallucinations) 16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 기법과 초현실적 몽상이 공존하는 벽화 전시실. 한 편의 서사시 같은 회화 작품의 형태를 띤 2018 봄·여름 컬렉션은 스페인 아티스트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이 866시간을 들여 완성한 유토피아다. 그는 하루 14시간씩 수개월 동안 이 그림을 그리면서 ‘구찌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 뻔했다고 한다.
2020 봄·여름 컬렉션 오브 콜스 어 홀스(S/S 2020 of Course a Horse)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호스트는 강렬한 매력을 지닌 기이한 혼종이다. 아름다운 장갑을 낀 자동 기계장치의 중심에는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말총이 걸려 있는데 이는 진정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즉 기계장치의 신을 현실로 소환하는 장치다.
2017 프리폴 컬렉션 소울 씬(Pre-Fall 2017 Soul Scene) 윤기 가득한 커튼을 열고 입장하는 2017 프리폴 캠페인의 댄스 플로어. 둥근 벽에 캠페인을 영사해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재현했다. 난도 높은 포즈를 선보이는 마네킹이 댄스 플로어에 열기를 더하는데 이는 1960년대 문화에 대한 헌사로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기간 3월 4~27일
장소 DDP 디자인 박물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아트 디렉터 크리스토퍼 시몬즈Christopher Simmonds
포토그래퍼 글렌 러치포드Glen Luch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