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세계의 미학,〈성취의 끝에서 파멸을 보다〉전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헨리 알렉산더 레비 개인전
지난 9월 2일부터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헨리 알렉산더 레비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회화와 아상블라주, 브론즈 조각 등 최근 작업과 초기 작업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헨리 알렉산더 레비는 포스트모던 패션 신에서 가장 도발적인 창작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을 디자이너라는 범주에 가두지 않고 예술과 역사, 음악, 디자인, 하위문화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작업에 끌어들이며 기존의 미적 질서와 관습에 도전하는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지난 9월 2일부터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레비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회화와 아상블라주, 브론즈 조각 등 최근 작업과 초기 작업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전시 개막을 맞아 서울을 찾은 레비를 만나 문화적 소외와 물성,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적 소외cultural alienation’를 작업 주제로 삼고 있다. 당신에게 소외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관심을 두는 대상이 나를 소외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대중사회와 일종의 불일치를 느낀다. 나는 기업 중심의 구조와 구별되는 삶을 선택했고, 그 안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내가 입는 옷 역시 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다. 경력과 작업이 확장될수록 오히려 문화적으로 더 큰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 기존 사회의 가치 체계와는 다른,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내 작업의 일부다.
커리어가 확장될수록 오히려 문화적 소외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말이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나는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세계와 살아가고 싶은 세계를 분명하게 선택한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는 예술가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본능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모두 내가 결정한다. 그렇게 선택한 것들이 결국 내 작업과 삶을 이룬다. 앙팡 리쉬 데프리메(Enfants Riches Déprimés, ERD) 역시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나는 우리가 패션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고 생각한다. 많은 브랜드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만들려 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특정한 사람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만든다. 모두를 위한 사물이 아니라 일부만을 위한 사물, 대중과 거리를 두는 사물에 관심이 있다. 그런 선택이 결국 나와 내 팀이 원하는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신에게 패션과 미술은 어떤 관계라고 보는가?
두 분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업의 뿌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회화든 의류든 결국 같은 표현 방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두 매체가 요구하는 조건은 다르다. 의류는 기능이 작품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반면 회화나 아상블라주, 브론즈 조각은 기능이 아니라 다른 기준과 맥락 속에서 읽히고 평가된다.
전시장 입구를 가로지르는 케이지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갤러리 안에서 케이지 주변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그 구조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 선보인 다른 아상블라주 작업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불안과 고립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최근 브론즈 작업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 재료에 주목한 계기는 무엇인가?
브론즈는 무게와 질감을 지닌 재료다. 조각이라는 개념에 가장 충실한 물질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점점 사라지는 물질성이 이 재료에는 존재한다. 동시에 브론즈는 영속성이 있는 재료다. 내 작업은 손으로 만드는 행위와 디지털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기법, 그리고 그 정서에 기반한다. 이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전후 예술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현대의 물성과 기술은 나에게 다소 가볍고 쉽게 소비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브라운 컬러가 유독 눈에 띈다. 기존 블랙 계열의 연작과 비교했을 때 색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내가 만든 세계는 브라운 계열의 색채 안에서 아름답게 존재한다. 블랙은 대형 추상 작업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드러내는 색이고, 크림색과 라이트 블루는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낭만적인 관념을 표현한다. 짙은 갈색은 매우 아름다운 색이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지 않아 결코 사용하지 않는 색도 있다. 주황색이 그중 하나다.
작품 전반에서 고통과 불안, 인간 내면의 모순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작품 전반에서 고통과 불안, 인간 내면의 모순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이번 전시는 올해 러시아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인 데 이어, 최근 작업과 이전 작업을 함께 아카이빙한 더 큰 규모의 전시다. 내 작업을 한국에서 선보이고 작품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한 큐레이션을 통해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재료와 감정, 조형 언어 사이에서 가능한 것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현재 보고 있는 것,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너머로 나아가길 바란다.
창작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요즘 세대는 대부분 피상적인 것을 소비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손쉬운 도구를 사용하려 하는 것이다. 나는 AI를 내 스튜디오나 사무실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세대는 너무 쉽게 만들어진 환경과 결과물에 익숙해졌다. 기본적으로 이 세대는 매우 게으르다. 담배 대신 전자담배를 피우고, 스케치 대신 컴퓨터를 사용한다. 이런 삶에서는 고통을 견디고 버텨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진정한 예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기간 9월 2일~10월 17일
장소 신세계갤러리 청담
사진 홍철기 ⓒ신세계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