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색상이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영국의 서레이 나노시스템Surrey Nanosystems이 2014년 개발한 반타블랙은 빛을 99.965% 흡수하는 물질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적외선까지 모조리 빨아들인다. ‘Vertically Aligned Nano Tube Arrays(수직의 나노 튜브 배열)’의 앞 글자로 만든 ‘vanta’와 ‘black’의 합성어인 반타블랙은 사람 머리카락 1만분의 1에 해당하는 굵기의 탄소 구조 집합체다. 이 물질을 도료로 사용해 물체에 칠할 경우 너무 검어서 마치 블랙홀이라도 생성된 듯 깜깜한 구멍처럼 보인다. 공개 당시 이 색상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블랙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러한 절대적인 검정의 사용권을 현대 예술의 거장 아니쉬 카푸어가 거액을 지불하고 독점하자 즉각 흥미로운 논쟁과 이벤트가 생성됐다. 아니쉬 카푸어가 독점하는 대상은 이 기술 중에서도 예술적 사용권에 한해서라지만 정말 의미하는 바가 그게 다일까? 누군가 특정 색깔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해도 괜찮을까? 허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의 아티스트 중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의 반응은 꽤 독창적이다. 자신이 개발한 안료 ‘가장 핑크스러운 핑크Pinkest Pink’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며 이 안료를 사려면 아니쉬 카푸어가 아니어야 하고, 그와 관계된 사람도 아니며, 구매 후에도 아니쉬 카푸어에게는 되팔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다소 허술한) 조건을 달았다.

며칠 후 아니쉬 카푸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핑크색 도료를 중지에 바른 사진을 올리며 스튜어트 셈플에게 손가락 욕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스튜어트 셈플을 돕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해 두 가지 안료를 함께 개발하기에 이른다. 세상에서 가장 반짝거린다는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를 발표하며 ‘아니쉬 카푸어만 아니면 돼’라는 전과 동일한 구매 조건을 달았는데 유리 가루로 만든 이 안료에 ‘또 손을 담가 볼테야?’라고 놀리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스튜어트 셈플은 반타블랙만큼 검지는 않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검은, 아니쉬 카푸어를 제외한 모두가 살 수 있는 안료 ‘블랙 2.0’을 개발하기도 했다. 논쟁과 함께 기발한 두 가지 안료까지 추가로 만들어낸 반타블랙은 2019년 BMW X6 모델에 적용하며 다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기존 차량의 엑스테리어 유지·관리 정도를 나타내는 ‘광택’이라고는 전혀 없는 완전한 검정 자동차의 움직임은 마치 움직이는 블랙홀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같은 해에 현존하는 가장 검은 물질이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매사추세츠 공대 연구소에서 개발한 탄소 나노튜브가 빛 흡수율 99.995%로 더 검은 물질이라 밝혀졌기 때문이다. 글 박슬기 기자 자료 제공 B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