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자, 초대 문화부 장관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 이어령 선생의 첫 추모 전시가 영인문학관에서 열린다.
길고 긴 예술 이야기, 〈이어령 장예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자, 초대 문화부 장관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 이어령 선생의 첫 추모 전시가 영인문학관에서 열린다. 인문학 전반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통찰로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 ‘지知의 거인’. 각 분야 디자이너들이 기획에 참여해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터’ 이어령을 기린다. 글 정인호 기자 사진 디자인하우스 사진부
“아마 내 나이만큼 썼을 겁니다. 그러니까 90여 권을 썼죠.”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글을 썼다. 혼돈의 시대에 ‘디지로그’, ‘생명 자본’ 같은 담론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날카로운 지성을 잃지 않은 이 석학은 고통 속에서도 글을 쓰겠다는 의지로 단단한 삶을 살았다. 문화평론가, 기호학자, 베스트셀러 작가, 예술 애호가, 시대의 현자···. 이름 앞에 이토록 수많은 직함과 수식어가 따라붙은 그는 어쩌면 교육자, 언론인, 행정가가 아닌 이야기꾼으로 살 때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15일부터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이어령 장예전〉은 그가 남긴 책, 걸어온 삶의 자취에 디자인의 힘을 입혀 지성의 유산을 보여준다. ‘장례식葬禮式’이 아니라, 긴 예술 이야기를 의미하는 ‘장예전長藝展’을 해드리고 싶다는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의 말이 이번 전시를 탄생시켰다. 이어령 선생의 인생 후배인 창작자들이 모여 공간을 구성하고 사진, 설치, 영상, 조경을 기획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며 감탄한 굴렁쇠 소년이 아텍컴퍼니의 홀로그램 작업으로 재탄생했고, 평생 읽고 쓰고 생각한 것들을 나눈 선생의 자필 문구가 정희기 작가의 패브릭 아트로 되살아났다. 선생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화로, 선생이 사용하던 독서대, 자필 원고와 가족사진···. 서영희 비주얼 디렉터와 임태희 공간 디자이너는 이어령 선생이 평소 아끼고 자주 쓰던 물건, 집필한 책들로 긴 지성과 예술의 연대기를 구현했다. ‘장예’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채병록의 솜씨. 특히 어둠에서 시작해 밝음으로 끝나는 전시 구성을 눈여겨볼 만한데, 임태희 공간 디자이너는 아늑한 광목 휘장과 나무 구조물로 ‘장례’와 ‘장예’에 모두 어울리는 담백하고도 묵직한 공간을 조성했다. 항암 치료도 받지 않고 투병鬪病이 아닌 친병親病 생활을 하며 죽음 앞에서 더 농밀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에 대한 은유다. 그리움의 여진이 가시기 전에 서둘러 열린 〈이어령 장예전〉을 둘러본 관람객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길고 긴 예술 이야기를 통해 자궁으로부터 무덤까지 이어지는 소멸과 영원의 여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될 것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81 기간 4월 15일~5월 14일 주최 영인문학관 주관 디자인하우스, 아텍컴퍼니 후원 네이버 협찬 Espace Plus, 가히Kahi 협력 서울문화재단, 종로문화재단
전시 총감독 이영혜 에디토리얼 디렉터 김은령 참여 작가 김병종, 채병록, 김용호, 남궁석, 조명환, 김아타, 김희원, 전용복, 황수로, 정희기, 허성하
〈이어령 장예전〉에 참여한 크리에이터들
공간 디자이너 임태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 대표 “ 옛 민화를 보면 잔치나 큰 행사를 열 때 장막을 친다. 〈이어령 장예전〉의 공간은 이 장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자인이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곳이 슬픔으로 가득하기보다는 따뜻하고, 또 죽음이 피부로 와닿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생전에 이 전시를 계획한 이어령 선생 또한 우리가 이곳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했을 것이다. 전시장에 집을 짓듯 편백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여기에 광목을 매달아 공간을 세분화했다. 한 땀 한 땀 실로 천을 꿰매며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서영희 비주얼 디렉터 “ 〈이어령 장예전〉은 영인문학관에서 평소 잘 쓰지 않는 지하 2층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꽃길을 따라 전시 공간으로 내려가며 선생을 추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90년 살았는데 책을 90권 썼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추구한 미학, 그와 교류한 크리에이터와 더불어 문필가로서의 일대기를 ‘예술’로써 보여주고자 했다. 선생은 마지막까지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맑은 정신으로 죽음까지 디자인한 것 아닐까?”
예술 감독 양정웅 아텍컴퍼니 공동 대표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총연출자로서 개회식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이어령 선생의 굴렁쇠 소년 같은 장면이 있는가’였다. 그만큼 선생의 기획은 강렬했다. 세계는 여전히 폭음에 시달리고 있다. 냉전 시대가 종식된 듯했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다. 우리 제작진은 굴렁쇠 소년의 퍼포먼스로 선생이 전한 메시지를 기리고 싶었다. ‘정적을 들려주고 보여주자. 이 침묵을 보여주자. 인류가 가장 못한 게 침묵이다.’”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 리빙엑시스 대표 “ 중학교에 다닐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은 수필집. 이 필체, 누구지? 난 그렇게 이어령 선생을 알아갔다. 선생이 우리 농장에 오셨을 때가 많이 생각난다. 작약이 지고 용머리가 막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름다운 곳이네. 좋아! 그런데 회양목을 너무 정형화해서 아쉽네.’ 그는 자연스럽지 못한 걸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그의 말에 취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선생은 평소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가 영면에 들기 전, 생전에 남긴 주옥같은 책을 읽으며 이어령 선생을 추억해야겠다.”
아트 디렉터 황지영 아텍컴퍼니 디렉터 “ 이어령 선생은 미래를 읽으면서 인간적인 개념을 만든 시대의 지성이었다. 선생이 만든 키워드 하나하나가 후배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홀로그램 작업으로 그 파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어령 장예전〉을 총기획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를 비롯해 동시대 문화 현장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미디어 디렉터 지동익 아텍컴퍼니 공동 대표 “ 1988년 서울, 힘차게 그라운드를 가로지른 굴렁쇠 소년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 정적과 침묵의 메시지는 오늘날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다. 작품 ‘정적’은 이어령 선생의 정신을 표상한다. 죽음조차 멈출 수 없는 그의 정신을 작은 홀로그램에 담았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난무하고,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선 누군가 폭음에 고통받고 있다. 비록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 세상의 잡음에서 온전히 벗어나 정적과 침묵을 경험하길 바란다.”
미니의 <헤리지티 & 비욘드> 전시가 오는 21일까지 서울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클래식 미니부터 최신 전동화 라인업까지 다양한 모델을 실물로 만날 수 있다. 특별히 오랜 역사를 뒤로하고 단종되는 클럽맨의 마지막 에디션도 관람할 수 있다. 미니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헤리티지 & 비욘드>전시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