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
난 4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이 열렸다.
지난 4월 29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이 열렸다.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다. 작가는 그동안 빅테이터와 알고리즘, 소셜 미디어로 점철된 오늘날의 데이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전반에도 이런 면모가 엿보였다.
중세 시대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절, 인생의 덧없음을 자각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유럽인들이 묘지에서 춤을 췄다는 데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죽음의 무도’는 하나의 예술 양식으로 발전하며 음악, 문학, 회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압도적인 5채널 영상으로 구현한 히토 슈타이얼의 〈소셜심〉은 코로나 시대에 경찰복을 입고 ‘죽음의 무도’를 즐기는 아바타들이 등장하는 최근 작품이다. 영상 속 아바타들은 팬데믹 초기, 자가 격리 기간이 길어지자 독일과 미국에서 통제에 반발한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상징한다. 작가는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적 행동이 팬데믹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데에서 발현된 것으로 해석하고 이들의 위협적인 신체 움직임을 ‘죽음의 무도’에 비유했다.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의 숫자, 최루탄 가스의 양에 관한 데이터에 기반해 경찰의 안무 시뮬레이션 영상이 만들어진다(작가는 경찰 아바타가 하나둘 춤에 ‘감염’된다고 표현했다). 인간이 데이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데이터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역설적인 오늘날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히토 슈타이얼은 디지털 기술,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상황으로 점철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하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2016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 ‘데이터의 바다: 아포페니아와 패턴(오)인식’에서 따온 것. 여기에는 오늘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디지털 기반의 데이터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 의도가 들어 있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 제목과 동일한 1부 ‘데이터의 바다’에서는 앞서 소개한 〈소셜심〉을 비롯해 디지털 노동 착취 문제를 다룬 〈태양의 공장〉, 이번 전시의 커미션 신작 〈야생적 충동〉, 울산시립미술관에서 대여한 소장품 〈이것이 미래다〉 등 굵직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태양의 공장〉에서도 춤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모션캡처 슈트를 입은 영상 스튜디오 노동자들의 댄스 타임이다. 하지만 흥겨울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슈트에 달린 센서가 노동자들의 동작을 감지해 컴퓨터로 캡처하고 데이터화하는 장면이 상영되는데, 강요된 안무를 ‘구사’하는 이들의 몸짓은 즐거운 감정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춤이 데이터 기반의 가상 세계를 위해 일종의 노동 착취로 환원되는 현상을 은유한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라고 반복되는 대사는 초현실적인 영상 이미지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2부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에 전시한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은 도처에 널려 있는 감시 카메라를 피해 픽셀 안으로 숨는 다섯 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작품으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미술관은 전쟁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3부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은 〈면세 미술〉 〈경호원들〉 등의 작품을 통해보안과 통제, 감시 제도 한가운데 있는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급진적으로 전개한다. 이 중 첨단 기술 산업과 전쟁 시나리오, 자본의 연결성을 주제로 한 〈타워〉는 냉전 시기 우주와 로켓 분야에 종사하던 기술자들이 구소련 붕괴 이후 시뮬레이션, 가상현실, 게임 기술로 비상 및 군사 시뮬레이션을 만들거나 유럽과 중동의 부동산을 설계하는 일에 투입된 데서 영감을 얻었다.
저화질 이미지와 데이터가 떠다니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유동성과 액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순환주의가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4부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에서 작가는 이미지의 새로운 가치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마지막 5부 ‘기록과 픽션’에서는 원래 영상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 실험을 보여준다. 평면적인 미디어 작품 속 메시지를 재해석한 다양한 전시 구조물도 전시를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다. 이를테면 〈태양의 공장〉에서 발광 LED 그리드를 활용해 미래적인 공간을 연출했고, 3부에 전시한 〈Hell Yeah We Fuck Die〉는 영상 앞에 놓인 벤치에서 제목의 알파벳 형태로 조명이 나오도록 제작해 시선을 끈다. 천장에서부터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형상의 구조물은 4부의 작품 〈유동성 주식회사〉와 한 세트로, 형체가 불분명한 빈백 의자와 함께 작품의 콘셉트를 잘 살렸다. 다양한 데이터로 구성된 디지털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부조리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루는 히토 슈타이얼의 이번 전시는 디자이너들에게 디지털로 가득 찬 세상을 재해석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mmca.go.kr
글 서민경 기자 사진 홍철기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기간 4월 29일~9월 18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기획 배명지 학예연구사
공간 디자인 김용주 연구관
포스터 디자인 박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