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전

지난 5월 4일부터 8일까지 삼청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간삼건축과 정림건축의 합동 전시 〈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THE FANTASTIC VISIONS of MR.Q: The Art of Representing Architecture)〉가 열렸다.

〈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전
전시관 1층.

지난 5월 4일부터 8일까지 삼청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간삼건축과 정림건축의 합동 전시 〈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THE FANTASTIC VISIONS of MR.Q: The Art of Representing Architecture)〉가 열렸다. 두 건축사 사무소 소속의 건축가 49명이 설계 과정에서 파생된 과거 자료를 재해석한 아트워크를 선보였다.

‘Klopstokia’. 여러 겹의 종이를 쌓아 레이저 컷팅으로 형태를 완성했다.

건축 전시라면 완성된 건축물과 함께 작업 중 파생된 스케치와 도면, 모델 등 실제 자료를 선별해 건축의 태동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는 과거 자료를 건축가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Scape(Canal, Green, Street, Village)’. 건축물뿐 아니라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풍경까지 상상해낸 디지털 회화.

미스터큐 프로젝트는 건축설계과정에서 생성된 그림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닐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며 2021년 간삼 건축의 사내전시로 시작했다. 정림건축과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두번째 미스터큐 프로젝트는 각 작품에 담긴 힌트를 통해 실제 건축물을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 묘미였다. 포스터에 그려진 신사의 검은 모자, 그리고 ‘미스터 큐’라는 미지의 캐릭터가 호기심을 더욱 증폭했는데, 품격 있는 안목과 감각을 가진 가상의 인물로 큐레이션, 컬렉션, 아트 디렉션을 모두 아우르는 페르소나다.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전시 참여 건축가들에게 건축 과정을 새로운 관점과 방법으로 다시금 해석하기를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각기 다른 건축을 재해석한 작품들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갤러리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공간 곳곳에 놓인 작품들은 세라믹, 페인팅, 사진, 렌티큘러, 섬유, 조각, 리소그래피, 양초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 예상치 못한 용도와 새로운 인상을 띠고 있으며 한 점 한 점이 모두 특색 있고 흥미로웠다. 예컨대 건축 투시도를 접시에 전사해 디자인한 테이블웨어는 하나의 오브제이면서 음식을 담는 치밀한 구조의 식기가 된다. 청와대 기둥 일부를 모델링해 양초로 제작한 작품은 작은 기념비 같은 기능을 하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 속 수영장을 닮은 태피스트리는 당시 프로젝트에 영감이 되었던 아이디어를 생생하게 소환해낸다.

‘Transfer Printing on Ceramic’(위). 50개의 접시를 프레임으로 사용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The table_1,2,3,4,5’. 접시를 들춰보는 행위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많은 작품이 그렇듯 건축 프로젝트 역시 하나의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하고, 현실적인 상황에맞게 고쳐나간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그림과모델, 도면과 시각 자료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건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자료에는당시의 고민과 영감, 질문과 솔루션이 모두 담겨있다. 그런데 발표나 보고, 설득과 회유 등 특정목적을 달성한 중간 과정의 문서는 시간이 지나면컴퓨터 어딘가에 영원히 쌓인다. 간삼건축과정림건축의 이번 시도는 설계 과정에서 추구했던아이디어와 그 흔적을 다시 극대화시키며 제3의오브제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건축이 완성되기 전의 미세한 순간을 하나의아트피스로 만들어 다른 모습으로 환생시키는 것과 같다. 마치 아득히 묻혀 있던 디지털 파일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듯 새로운 물성으로 소환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주야’. 건축물의 입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패턴화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에 사용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이다. 건축이라는 형식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건축가의 의도, 건축의 맥락에 활력을 주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용도를 다한 과거의 자료가 건축가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는 순간 이전의 ‘건축’과 ‘자료’라는 관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된다. 이 전시는 숨 죽이고 있는 건축의 유품을 늘어놓은 아카이브가 아니라 미술과 디자인, 사진과 회화, 조각과 공예 사이를 가로지르며 생동감 넘치는 건축의 특성을 한껏 발휘하는 환상의 세계다. 즉 〈판타스틱 비전스 오브 미스터큐〉는 건축과 자료의 관계를 새로 도모하는 실험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전시는 건축을 근거로 하는 아카이브이자 건축가들의 흔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한 건축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 장의 이미지를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용도를 다하고 ‘진정성’을 잃은 자료를 다시 인쇄해 펼쳐둔다면, 과연 이것은 어떤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수장고에 소장할 만한 건축 자료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그런 질문들이다.

김경훈 정림건축 건축가, 진교남 간삼건축 건축가
“ 목적을 다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아카이브가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물성이 더해져 재창조되는 경우 분명 다른 가치를 지닌다.”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진교남(이하 진) 8개월 전 간삼건축 김태집 대표와 정림건축 김기한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건축가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오브제, 생각의 흔적도 충분히 예술품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건축가들이 만든 건축 외의 작업도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두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내년에는 간삼건축이 설립 40주년을 맞이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에서도 세 번째 미스터큐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Beyond Color’. 몬테풀치아노 거리를 연상시키는 백사마을 공동주택.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진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건축가들이다. 처음 기획한 내용을 사내 건축가들에게 전달하자 자원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어 하는 주니어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진행 과정에서는 원하는 이들끼리 팀을 구성하고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재료나 기법, 형식에도 제약 없이 마음껏 실행해보기를 권유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건축가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김경훈(이하 김) 대형 설계 사무소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경우 건축가로서 각자의 아이디어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 명 한 명이 건축가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원하는 바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건축가로서 일과 삶이 모두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참여 건축가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진 건축과 설계는 목적과 완성이라는 정확한 끝이 있다. 완성되어야 의미가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트는 작가에 따라 작업 과정 그 자체로 목표가 되기도 하며 독립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부분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의무와 책임을 벗어나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번 전시가 건축 아카이브에 대한 질문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진 철학자 발터 베냐민이 언급했던 ‘진정성’에 관련된 것이다.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건축 프로젝트 과정의 극히 일부인 자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자료는 이미 과거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목적을 다했다. 그때의 자료를 이제 와서 다시 프린트하고 전시하는 것이 과연 진정성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목적을 다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아카이브가 그 자체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물성이 더해져 재창조되는 경우 분명 다른 가치를 지닌다.

김 해외에서는 건축가들의 그림이나 모델, 스케치 등을 미술관이 컬렉션 한다. 이 또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존중하고 다룬다는 태도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건축 문화가 풍성하지 않은 편이다. 만약 이러한 건축가들의 시도가 많아진다면 사회·문화적으로 건축을 일컫는 범위가 넓어지고 건축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요소도 훨씬 다양해질거라고 생각한다.

‘Hideout 1, 2, 3’. 리소그래피로 인쇄해 특유의 질감과 컬러감을 극대화 시켰다.
앞으로도 이러한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인가?

김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러한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우리도 처음 시도해본 일이지만 건축가들이 자신을 재발견하고 사고를 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전시를 통해 일반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장점이다. 평소 건축 문화는 건축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자리가 비전문가와 거리를 좁혔다고 보기에 꾸준히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글 유다미 객원 기자
담당 박슬기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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