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앉는 가구에서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의자와 당신(A Chair and You)〉
네덜란드 로테르담 쿤스트할에서 9월 26일부터 2027년 1월 31일까지 〈의자와 당신〉 전시가 열린다. 의자의 기능을 넘어 조각이자 건축적 구조물, 인간의 몸을 둘러싼 실험적 장치로 바라보는 전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가구 가운데 의자만큼 익숙한 물건도 드물다. 그러나 기능을 잠시 걷어내고 형태와 재료, 움직임에 집중하면 의자는 하나의 조각이자 건축적 구조물, 때로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실험적 장치로 모습을 바꾼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할(Kunsthal Rotterdam)이 9월 26일부터 선보이는 전시 〈의자와 당신(A Chair and You)〉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제네바의 기업가이자 컬렉터였던 티에리 바르비에-뮐러(Thierry Barbier-Mueller, 1960–2023)가 평생 모은 의자 컬렉션을 미국의 연출가이자 무대미술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1941–2025)의 공간 연출을 통해 다시 바라보는 전시다. 전시는 2027년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에 등장하는 것은 124명의 디자이너와 예술가, 건축가가 만든 약 150점의 의자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론 아라드(Ron Arad), 마르티노 감퍼(Martino Gamper), 마르턴 바스(Maarten Baas)처럼 디자인사에 익숙한 이름뿐 아니라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프란츠 베스트(Franz West) 등 현대미술가의 작업도 한데 섞였다. 하나의 가구 유형을 통해 디자인과 미술, 건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셈이다.

바르비에-뮐러가 의자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물건과 디자이너와의 개인적 만남을 따라가며 전통적인 의자의 형태나 산업디자인의 규칙에서 벗어난 작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컬렉션은 196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650점 이상으로 확장됐다. 중요한 것은 이 수집이 ‘의자 디자인의 정전’을 완성하려는 역사적 체계보다는 한 개인의 감각과 선택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조각적인 존재감과 비정형적인 형태, 실험적인 재료와 제작 방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의자는 다른 가구보다 인간의 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디자인 대상이다. 등받이의 각도, 좌판의 높이와 폭, 재료의 탄성과 무게는 모두 몸의 자세와 움직임을 전제로 결정된다. 따라서 디자이너가 의자의 형태를 비틀거나 기능을 제한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조형 실험을 넘어 사람이 어떻게 앉고, 움직이고, 공간을 점유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 모인 작업들은 바로 그 신체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흔든다. 어떤 의자는 앉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의자는 기능보다 표면과 질감을 앞세우며, 또 어떤 의자는 조각이나 설치 작품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기능에서 멀어진다.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 이 지점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로버트 윌슨이 만든 4막 오페라
〈의자와 당신〉의 핵심은 의자를 단순히 진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르비에-뮐러는 방대한 컬렉션 가운데 각각의 의자가 지닌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로버트 윌슨에게 전시 연출을 맡겼다. 연극과 오페라에서 빛과 소리, 배우의 움직임을 극도로 정교하게 조직해온 윌슨은 전시장을 하나의 무대로 간주했다. 의자는 전시품 대신 ‘배우’가 되고, 관람객은 가구의 역사를 읽는 대신 네 개의 장면을 통과하며 하나의 공연을 경험한다. 이 전시가 단순한 디자인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인 설치이자 무대적 경험으로 읽히는 이유다.

첫 번째 ‘브라이트 스페이스(Bright Space)’는 가장 활기찬 장면이다. 밝은 빛 아래 유기적인 형태의 섬들이 펼쳐지고, 색과 패턴, 유머, 비정형적인 형태를 지닌 의자가 무리를 이룬다. 바닥과 오브제가 뒤섞인 풍경은 마치 잭슨 폴록의 회화 안으로 들어온 듯한 인상을 만든다. 여기에 폴 리브스(Paul Reeves)의 ‘Happy Chappy’가 사운드트랙으로 흐르며 시각적 리듬을 증폭시킨다.

벨기에 디자이너 샤를 카이쟁(Charles Kaisin)의 ‘Hairy Chair’(2011)는 기존 의자에 잘게 자른 종이 조각을 뒤덮어 가구 표면을 동물의 털과도 같은 질감으로 변형한 작품이다. 반면 독일 디자이너 슈테판 베베르카(Stefan Wewerka)의 ‘Classroom Chair’(1971)는 익숙한 붉은색 학교 의자를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버렸다. 사람이 안정적으로 앉도록 만들어진 물건이 오히려 사용자를 밀어내는 형태로 변하면서, ‘앉는다’는 의자의 기본 전제를 유머러스하게 뒤집는다.

이어지는 ‘미디엄 스페이스(Medium Space)’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영감을 받은 직선과 중성적인 색, 절제된 공간이 앞선 방의 시각적 과잉을 잠재운다. 이곳에는 윌슨 자신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위해 1991년 디자인한 ‘Amadeus Chairs’도 놓인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가느다란 금속 선은 의자라기보다 하나의 드로잉이나 무대장치처럼 보인다. 기계적인 사운드가 공간에 더해지면서 의자의 구조와 선은 한층 건축적으로 강조된다.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에서는 빛 자체가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번갈아 켜지며 각각의 의자를 순간적으로 부각시키고, 작품은 천체처럼 공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가 헤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 의 ‘Zig-Zag Chair’를 재해석한 ‘Redesigned ZigZag’(1978), 기존 의자 표면을 구리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감싸 새로운 외피를 만든 론 아라드의 ‘Second-Hand Rose’ 등이 이 장면을 구성한다. 익숙한 디자인 언어를 비틀거나 기존 사물 위에 새로운 물성을 덧입히는 방식은 의자가 단순한 기능적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표현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는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루 리드(Lou Reed) 의 전기 기타 사운드가 흐르는 가운데 금속 의자가 거울 속에서 무한히 복제되고 사라진다. 필리프 아두아츠(Philipp Aduatz)의 ‘Melting Chair’(2011)는 은빛 표면과 반사 공간이 겹치면서 말 그대로 주변으로 녹아내리는 듯한 착시를 만든다.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형태적으로는 액체처럼 변형된 이 의자는 이번 전시가 끊임없이 묻는 질문, 즉 어디까지를 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압축한다.

650개의 의자가 보여주는 디자인의 또 다른 역사
〈의자와 당신〉이 흥미로운 이유는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전형적인 디자인 전시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곳에서는 누가 디자인했는가 못지않게 의자가 얼마나 낯설게 보이고, 어떤 물성과 몸짓을 가지며, 주변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조형과 기능 사이의 긴장, 산업생산과 단일 작품 사이의 경계, 그리고 ‘앉는 물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수십 년간의 실험이 한자리에서 드러난다.
전시의 출발점은 2022년 스위스 로잔의 현대디자인응용미술관 mudac이었다. 당시 바르비에-뮐러 컬렉션은 대규모로 공개됐고, 이후 독일 라이프치히의 그라시 미술관을 거쳐 이번에는 로테르담 쿤스트할에서 다시 구성됐다. 하나의 전시가 여러 도시를 이동하면서도 동일한 물건을 반복해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장소의 건축과 전시 조건 안에서 다시 읽힌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이번 로테르담 전시는 제네바의 Fondation Musée Barbier-Mueller와 협력해 마련됐다.

그 사이 이 전시를 탄생시킨 두 인물도 세상을 떠났다. 바르비에-뮐러는 2023년, 윌슨은 2025년 작고했다. 따라서 로테르담에서 다시 펼쳐지는 〈의자와 당신〉은 한 컬렉터가 구축한 독특한 디자인 컬렉션과 이를 무대 언어로 번역한 연출가의 작업이 함께 남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수십 년에 걸쳐 의자를 선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 앞에 등장할지를 설계했다. 수집과 연출이라는 서로 다른 행위가 만나면서 전시는 개별 작품의 집합을 넘어 하나의 서사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구성은 ‘좋은 의자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디자인의 질문에서도 한 걸음 비켜선다. 편안함이나 인체공학, 생산 효율과 같은 기준 대신 형태의 낯섦과 재료의 실험성, 그리고 사물이 관객에게 어떤 감각적 반응을 일으키는지가 전면에 등장한다. 의자는 때로는 조각처럼 보이고, 때로는 무대장치나 건축 모형처럼 읽힌다. 작품에 따라 앉을 수 있는지조차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기능을 의도적으로 약화하거나 해체함으로써 관람객은 의자를 바라보는 자신의 습관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늘 몸 아래에 놓여 있던 사물을 눈앞의 대상으로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의자를 디자인사의 배경에서 끌어내 전면에 세운다. 의자는 누군가를 받치기 위해 존재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사람 없이도 충분한 몸짓과 성격을 지닌다. 휘고, 뒤틀리고, 털로 뒤덮이고, 금속으로 감싸이고, 거울 속에서 무한히 복제되는 150개의 의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가구가 아니다. 로버트 윌슨의 빛과 소리 속에서 이들은 하나씩 무대에 올라 자신만의 장면을 연기한다. 익숙해서 좀처럼 의식하지 않았던 하나의 사물이 얼마나 많은 형태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의자와 당신(A Chair and You)〉
기간 2026년 9월 26일 – 2027년 1월 31일
장소 쿤스트할 로테르담(Kunsthal Rotterdam), 네덜란드 로테르담
전시 기획 쿤스트할 로테르담, Fondation Musée Barbier-Mueller 협력
전시 디자인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홈페이지 쿤스트할 로테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