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로 읽는 ‘비엔나 디자인 위크’의 20년
포스터 디자인으로 '비엔나 디자인 위크'를 기념하는 법
20주년을 맞은 비엔나 디자인 위크를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 MAK 응용미술관에서 포스터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다. 2006년부터 축제의 얼굴이 된 역대 포스터를 모아 도시가 축적해 온 시각적 기억을 조명한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큐레이티드 디자인 축제 비엔나 디자인 위크(VIENNA DESIGN WEEK)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빈 MAK 응용미술관(MAK – Museum für angewandte Kunst)은 지난 2026년 9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MAK 포스터 포럼에서 〈20년의 비엔나 디자인 위크: 포스터로 가득한 도시(20 Jahre VIENNA DESIGN WEEK. Eine Stadt voller Plakate)〉전을 연다. 2006년 출범 이후 매년 축제의 얼굴이 되어 온 포스터를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거리에서 짧은 시간 소비되던 홍보물이 박물관의 아카이브로 이동하면서, 한 디자인 축제가 어떻게 도시의 시각적 기억을 축적해 왔는지 보여준다.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만든 축제
비엔나 디자인 위크는 2006년 릴리 홀라인(Lilli Hollein), 툴가 베이얼레(Tulga Beyerle), 토마스 가이슬러(Thomas Geisler)가 ‘나이궁스그루페 디자인(Neigungsgruppe Design)’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했다. 당시 밀라노와 런던 같은 기존 디자인 도시의 그늘에서 새로운 디자인 위크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실험에 가까웠다. 이들이 내세운 방향은 디자인을 고급 소비재나 장식적 오브제의 영역에 가두지 않는 것이었다. MAK는 첫 정규 행사가 열린 2007년부터 축제의 주요 파트너로 참여해 왔다.



20년이 흐른 지금 축제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특정 전시장보다 도시 자체를 플랫폼으로 삼는 방식이다. 2021년부터 디렉터를 맡은 가브리엘 롤란트(Gabriel Roland)는 축제를 매년 다른 장소와 관계를 맺는 ‘도시의 실험실’로 확장해 왔다. 올해 20회 행사는 9월 25일부터 10월 4일까지 빈 전역 약 50개 장소에서 열리며, 상당수 프로그램이 무료다. 축제 본부도 고정하지 않는다. 올해는 빈 주거 건축의 주요 인물인 해리 글뤽(Harry Glück)이 설계한 히칭거 카이 101의 고층 오피스 빌딩에 자리를 잡았다. 산업시설, 병원, 옛 자동차 전시장 등 매년 예상 밖의 건물을 거점으로 삼아 온 방식 자체가 축제의 정체성이 됐다.

이 같은 성격은 대표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난다. ‘패션스베게(Passionswege)’는 해외 디자이너와 빈의 전통 공방 및 제조업체를 연결하고, ‘슈타트아르바이트(Stadtarbeit)’는 사회적 이슈와 도시 공간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다룬다. 현지 공영방송 ORF는 올해 행사에서 새롭게 해석한 장례 화환, 닭 깃털을 활용한 텍스타일, 굵은 로프를 거대한 좌석 오브제로 확장한 작업 등을 소개했다. 완성된 제품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이 도시 생활과 생산 방식, 사회적 관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축제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20주년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디자인의 현재
올해 프로그램은 지난 20년 사이 디자인의 대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지 공영방송 ORF가 소개한 ‘글로벌 페더스(Global Feathers)’는 도축 과정에서 폐기되는 닭 깃털을 섬유와 종이, 오브제의 재료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다. 소재 개발을 제품의 외형을 만드는 단계가 아니라 생산과 폐기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로 바라본다.


‘패션스베게’에서는 네덜란드 기반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그루비도(Groovido)와 빈 히칭 지역의 장례 전문 화원 블루멘 바이스(Blumen Weisz)가 전통적인 장례 화환을 새롭게 해석했다. 결과물은 별도의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실제 공방에서 공개된다. 디자인이 산업 생산과 전시장을 벗어나 지역의 기술, 의례, 생활문화 안으로 들어가는 비엔나 디자인 위크 특유의 접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주년을 맞아 교육과 참여 프로그램도 한층 전면에 나왔다. 오스트리아 디자인 스튜디오의 일상적 작업 과정을 다루는 ‘디자인 에브리데이(Design Everyday)’는 쓰레기통처럼 익숙한 생활용품을 다시 설계하며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묻고, 올해 게스트 국가인 룩셈부르크의 전시 ‘투-오-에이트(Two-O-Eight)’는 라디오 룩셈부르크의 주파수에서 제목을 가져와 시각 오브제 대신 듣는 경험 자체를 전시로 제시한다.
축제 본부에서는 워크숍과 가족 프로그램, 건물 투어도 이어진다. 특히 해리 글뤽이 설계한 오피스 고층 건물의 지하 볼링장처럼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까지 프로그램에 포함되면서, 건축과 그래픽, 공예, 소재 연구, 사회적 디자인을 한 도시 안에서 연결한다. 이처럼 비엔나 디자인 위크의 20년은 특정 스타일의 축적이라기보다 ‘무엇을 디자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온 시간에 가깝다.
매년 달라지는 한 장의 ‘시각 선언’
MAK의 20주년 전시는 이 방대한 축제의 역사를 포스터라는 단일 매체로 압축한다. 비엔나 디자인 위크의 포스터에는 디자인 축제라면 쉽게 떠올릴 법한 제품 사진이나 조명 아래 놓인 디자인 클래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매년 다른 그래픽 스튜디오가 축제의 성격을 타이포그래피와 색, 이미지의 실험으로 번역했다.


(오른쪽) Bueronardin, Plakat für die VIENNA DESIGN WEEK, 2021 Offset 사진 © Bueronardin
‘VIENNA DESIGN WEEK’라는 워드마크는 일관된 시각적 앵커로 남지만, 글자의 배열과 크기, 형태는 해마다 해체되고 다시 조립된다. 고정된 기관 정체성과 매년 새롭게 갱신되는 그래픽 언어가 긴장 관계를 이루는 셈이다.




특히 뷰로 나르딘(Bueronardin)은 2011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넘게 축제의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이끌었다. 이들이 만든 2020년 캠페인은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의 그래픽 디자인 공모전 ‘100 베스테 플라카테(100 Beste Plakate)’에 선정됐고, 2013년 포스터 한 점은 유러피언 디자인 어워즈(European Design Awards)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올해 20회 행사의 그래픽은 스튜디오 시렌(SIRENE Studio)이 맡았다. 20년간 이어진 포스터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로고가 유지되는 동안 그것을 둘러싼 시각 언어는 얼마나 과감하게 변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거리의 홍보물에서 도시의 디자인 아카이브로
포스터는 본래 특정 기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행사를 알린 뒤 사라지는 매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지난 20년의 포스터는 일회적 홍보물에서 역사 자료이자 독립적인 그래픽 작품으로 위치를 바꾼다. 축제의 변화뿐 아니라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의 감각, 도시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까지 함께 읽히는 이유다.

비엔나 디자인 위크가 20년 동안 구축해 온 것은 행사의 규모만이 아니다. 디자인을 박람회장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공방과 상점, 거리와 비어 있는 건물로 끌어낸 운영 방식, 그리고 그때마다 도시 곳곳에 등장한 포스터는 함께 축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20년의 비엔나 디자인 위크: 포스터로 가득한 도시〉는 그 축적을 가장 직접적인 시각 언어로 되짚는다. 한 장의 포스터가 축제를 알리는 도구를 넘어, 도시가 디자인을 기억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다.
〈20년의 비엔나 디자인 위크: 포스터로 가득한 도시〉
기간 2026년 9월 29일~11월 1일
장소 오스트리아 빈 응용미술관MAK 포스터 포럼(MAK Plakat Forum)
기획 피터 클링거(Peter Klinger)
홈페이지 MAK Wien
인스타그램 @mak_vie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