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의 국제 건축상 수상자, 이시가미 준야
라 쿠아드라와 공동 제정한 제1회 바라간상
보테가 베네타가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유산을 보존하는 문화 기관 라 쿠아드라와 함께 제정한 ‘바라간상’의 제1회 시상식이 지난 10월 9일 멕시코에서 열렸다. 수상자는 일본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 1902~1988)의 이름을 내건 국제 건축상이 출범했다.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가 바라간의 유산을 보존하는 문화 기관 라 쿠아드라(La Cuadra)와 함께 제정한 ‘바라간상(The Barragán Prize)’의 제1회 시상식이 지난 10월 9일 멕시코시티 근교의 라 쿠아드라에서 열렸다. 첫 수상자로 일본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Junya Ishigami)가 선정됐다.
루이스 바라간의 유산에서 출발한 상


멕시코 과달라하라 출신의 루이스 바라간은 자택 겸 작업실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20세기 건축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건축가다. 1980년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수상했으며, 멕시코 출신 건축가로는 현재까지 유일한 수상자다.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유럽 여행을 통해 건축과 정원에 대한 시각을 넓힌 그는 건축이 평온함과 정서적 깊이를 담아야 한다고 보았다. 정원과 건축, 자연과 인공의 관계에 천착한 그의 작업은 멕시코 현대 건축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제1회 바라간상 시상식이 열린 라 쿠아드라는 바라간이 1960년대 후반 설계한 주거 공간이자 마구간, 승마 시설을 갖춘 건축 단지다. 분홍색과 붉은색, 보라색 계열의 벽면과 푸른빛 수반이 어우러진 이곳은 색채와 빛, 물을 활용한 바라간 특유의 공간감을 담고 있다. 현재는 멕시코 건축가 페르난도 로메로(Fernando Romero)가 이끄는 비영리재단(Fundación Fernando Romero)이 보존하고 운영하며 건축과 예술을 아우르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라간상은 기존 관습에 도전하고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형성한 건축가를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금은 총 10만 달러로, 절반은 수상자에게 수여되고 나머지 절반은 차세대 건축가를 위한 1년간의 멘토링 프로그램에 쓰인다. 심사위원단에는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 위니 마스(Winy Maas), 아만다 레베테(Amanda Levete), 베네데타 탈리아부에(Benedetta Tagliabue)를 비롯해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아티스트 페드로 레예스(Pedro Reyes),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 등이 이름을 올렸다. 시상식 기념 오찬은 루이스 트로터와 페르난도 로메로가 공동 주최했다. 이 자리에는 심사위원들과 함께 혼세이 고조(Kozo Honsei) 주멕시코 일본대사 등이 참석해 이시가미 준야의 수상을 축하했다.

패션 하우스가 국제 건축상을 공동 제정한점이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 초기부터 예술과 깊은 유대를 맺고 여러 분야의 문화 기관과 협업해 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 체제 아래 건축과 예술, 디자인 분야로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

1974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이시가미 준야는 도쿄예술대학교 건축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세지마 가즈요 건축사무소(Kazuyo Sejima & Associates)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자신의 건축사무소 ‘junya.ishigami+associates’를 설립한 이후 건축과 자연, 풍경, 인간의 경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이시가미의 건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새로운 자연’이다. 그는 건축을 대지 위에 놓인 구조물로 한정하지 않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추구한다. 이러한 접근은 가나가와 공과대학에 들어선 그의 두 건축물에서 잘 드러난다. 2008년 완공한 KAIT 워크숍(KAIT Workshop)은 유리 외벽 안에 가느다란 철제 기둥 305개를 흩뿌려 실내에 숲을 들였다. 워크숍 공개 당시 모형으로 처음 소개된 KAIT 광장(KAIT Plaza)은 12년 뒤인 2020년 워크숍 바로 옆에 완공됐다. 숲을 들인 워크숍과 짝을 이루듯, 광장은 지붕에 하늘을 들였다. 두께 12mm의 얇은 철판 지붕이 기둥 하나 없이 넓은 광장을 덮고, 지붕에 뚫린 59개의 사각형 개구부로 햇빛과 비가 그대로 떨어진다. 완만하게 기울어진 바닥 위에 앉으면 지붕 아래에서도 하늘과 날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일본 도치기현의 아트 비오토프 워터가든(Art Biotop Water Garden)은 자연의 기억을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옮겨진 300여 그루의 나무를 다시 심고 그 사이에 인공 연못을 배치해, 과거 이 땅에 존재했던 숲과 논의 흔적을 한 공간에 겹쳐 놓았다.

중국 산둥성의 밸리교회(Chapel of Valley)는 대지의 형태와 건축의 관계를 다룬 프로젝트다. 지반을 깊이 파내고 유기적인 곡선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 건축물이 땅에서 솟아오른 협곡처럼 보이도록 구상했다. 2019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에서는 가느다란 기둥들이 지지하는 슬레이트 지붕을 낮게 펼쳐 주변 지형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시가미는 2009년 일본건축학회상, 2010년 제12회 베니스 국제건축비엔날레 최우수 프로젝트 부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에는 오벨상(OBEL Award)을 받았다. 2024년에는 프레드릭 키슬러 건축예술상과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했고, 2025년 미국건축가협회(AIA) 명예 펠로우로 선정됐다. 2026년 아널드 W. 브루너 기념상에 이어 바라간상을 받았다.

루이스 바라간과 이시가미 준야. 활동한 시대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같은 시선으로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바라본다. 관습에 도전하고 건축의 가능성을 넓혀온 건축가를 조명하겠다는 바라간상은 이시가미와 함께 첫발을 뗐다. 이 상이 앞으로 어떤 건축가들을 불러내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