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의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전이 열린다.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Eyes Open, Minds Open〉전
7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의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전이 열린다. 대표작인 오바마 선거 포스터 ‘Obama HOPE’를 포함해 작품 47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전 기간 7월 29일~11월 6일 장소 롯데뮤지엄(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 lottemuseum 참여 작가 셰퍼드 페어리 obeygient 주최·주관 롯데문화재단·롯데뮤지엄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오바마 선거 포스터의 제목도 다름 아닌 ‘Obama HOPE’다. 셰퍼드 페어리가 2008년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위해 디자인해 웹상에서 무료 배포한 이 포스터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례 없는 인기를 구가했고 급기야 오바마 선거 캠프가 이를 캠페인 공식 포스터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정작 아티스트 본인은 제작비를 충당하고 남은 포스터와 스티커 판매 수익금을 선거 캠페인에 기부하며 수익보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의미를 뒀지만, 포스터 속 초상의 원본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이유로 거대 언론사 AP 통신과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던 일화도 유명하다.•
프로파간다적 시각언어를 차용한 포스터들.
일련의 사건은 다큐멘터리 〈Obey Giant. The Art and Dissent of Shepard Fairey〉로 제작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무려 1시간 32분짜리 풀 버전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셰퍼드 페어리 덕분에 자신의 사진 또한 유명해져 흐뭇했다고 밝힌 AP 통신 사진기자 매니 가르시아Mannie Garcia의 입장과 이 소송을 끝까지 이어갔더라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고 장담한 페어리 측 변호사의 육성을 통해 사건을 보다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비록 300시간의 사회봉사와 160만 달러의 합의금을 AP 통신에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셰퍼드 페어리의 ‘Obama HOPE’ 포스터는 2008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커버 아트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시상하는 ‘2009 올해의 디자인’ 위너상을 수상하며 디자인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셰퍼드 페어리의 또 다른 대표작 ‘오베이 자이언트’도 만날 수 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던 시절 그는 스케이트보드 가게에서 일하며 펑크록과 힙합 음악에 기반한 비주류 문화에 눈을 떴고 ‘거인 앙드레(Andre The Giant)’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프로 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의 초상을 가공해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 캠페인을 전개해 인기를 모았다. 이후 그는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슬로건 ‘오베이Obey’에서 영감을 받아 1990년대부터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2001년 셰퍼드 페어리는 브랜드 ‘오베이’를 론칭하기에 이른다). 단순한 아이콘의 형태로 바뀐 앙드레의 초상과 ‘복종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덧입힌 그의 작품은 프로파간다적 색채를 띠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적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바버라 크루거의 도발적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시장에는 스케이트장의 곡면 경사를 재현한 공간을 조성하고 작가의 작품을 데크에 인쇄한 스케이트보드를 벽면에 설치해 눈길을 끈다.
(좌) 작가에게 영감의 장소인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연출한 전시 마지막 공간. 이곳에 셰퍼드 페어리가 직접 제작한 스케이트보드 시리즈 40여 점과 작업실 소품을 전시했다.
(우) ‘오베이 자이언트’ 아이콘을 활용한 공간 연출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셰퍼드 페어리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 더욱 의미가 있다.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에 나타난 초기 실험과 함께 평등, 반전, 인권, 환경, 반자본주의 등을 주제로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한 포스터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비둘기, 장미, 연꽃, 지구 등 상징적인 도상 위로 짧고도 강렬한 문구를 새겨 넣은 그의 그래픽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온전히 관람객의 몫이다. 한편 전시 기간 동안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은 롯데월드타워 1층, 석촌호수와 강남 도산대로 인근, 성수동 피치스 도원 등 뮤지엄 밖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는 공공장소가 대중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공간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반영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기 보다 대중을 끌어당기는 ‘포퓰리스트populist’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첫 번째 개인전 〈Shepard Fariey: Supply & Demand〉를 준비하던 2009년 반달리즘 혐의로 보스턴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헤프닝도 있었다. 이제는 허가받은 건물 외벽에만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는 셰퍼드 페어리의 정신만큼은 여전하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예술이 내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기 때문에 예술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셰퍼드 페어리 아티스트 “ 희망이 없다면 행동해야 할 의미가 없다. 나의 철학에서 행동은 중요한 영역이다.”
지난 30년간 작품을 통해 말하는 일관적인 주제나 철학이 있는가?
이번 전시 제목 ‘눈을 뜨고, 마음을 열라(Eyes Open, Minds Open)’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만큼 타인을 대해야 한다는 ‘공정성(justice)’ 이념을 지지한다. 그래서 인종과 성 평등, 이민자 신분이나 종교를 넘어선 인간의 기본 존엄성 존중 등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을 작품의 원칙으로 삼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구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도 더 이상 우리를 돌봐주지 않을 것이다.
OBEY Star’ 포스터. 반전을 상징하는 ‘AK-47 Lotus’와 ‘AR-15 Lily’.
‘스트리트 아트를 예술의 지위로 끌어올린 작가’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30년 전 거리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스트리트 아트는 하나의 장르도, 널리 사용되는 용어도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그라피티 아트와 활동가들을 위한 포스터, 펑크 밴드의 홍보용 전단지를 디자인하는 일의 경계에서 활동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상업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브랜딩 방식을 차용하면서, 그런 광고를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트리트 아트라는 큰 범주 안에서도 흥미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에, 내 작업이 예술 장르를 확장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기쁘게 생각한다.
전시의 연장선으로 서울 곳곳에 벽화를 제작했다. 한국 개인전에 대한 소감은?
공공장소에 벽화를 그리는 것은 내게 무척 중요한 작업 과정이다. 예술은 대중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벽화의 규모는 자연스럽게 화젯거리가 된다. 이는 도시가 개인의 표현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설렌다. 롯데뮤지엄에서 초기작부터 신작을 포함한 지난 3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수준 높은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