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흐트러뜨리기 김동신

김동신은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의 개정판 표지를 의도적으로 제목과 부차 설명과 저자 이름을 동일한 크기와 서체로 배치했다.

우아하게 흐트러뜨리기 김동신

김동신은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의 개정판 표지를 의도적으로 제목과 부차 설명과 저자 이름을 동일한 크기와 서체로 배치했다. 지면 위 모든 정보가 동등하도록. 그가 디자인한 책은 그동안 너무 익숙해 자각하지도 못했던 레이아웃의 질서를 살짝 비켜간다.

〈젊고 아픈 여자들〉, 마티, 2022
책 제목, 저자 이름, 번역가 이름을 모두 다른 색으로 처리하고, 여기에 밑줄까지 그은 김동신은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느낌이 들길 바랐다”고 했다. 저자와 번역가 이름을 같은 글씨와 크기로 기재한 것에서도 디자이너의 의도가 드러난다.
출판사 돌베개를 떠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된 지 3년째다. 궁금했다. 디자이너 김동신은 왜 웹사이트를 안 만들까?

만들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코딩을 못하는 탓에….(웃음) 그래도 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긴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니 작업물을 모아서 보여줄 창구가 필요하더라. 처음엔 열심히 업로드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웹상에 나를 노출시킬 때 에너지가 많이 드는 편이다.

〈책임에 대하여〉, 돌베개, 2019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 두 석학이 현대 일본의 본성에 대해 나눈 대담집. 두 사람의 대화처럼 4분할된 커버에 타이포그래피가 서로를 반사하듯 대치된다.
독립하고 달라진 점이 있나? 〈출판문화〉 1월호에 기고한 ‘계약서 위에서 디자인은’을 읽었다. 아마도 김동신처럼 외주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했을 것이다.

계약서는 여러가지가 얽혀있어서 어려운 문제 같다. 독립하고 달라진 점을 굳이 꼽자면 업무 소통을 메일로만 하게 된 것. 장점도 있지만 비대면 소통에는 흐릿하면서도 확실히 존재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 마주 보고 일한 사람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지켜지는 약속이나 공유하는 언어가 있는데 메일로 시작한 업무 관계에서는 그런 것이 쌓이기 쉽지 않다.

김동신이 디자인한 책이라면 적어도 기존의 사회 질서를 그대로 승계하는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쪽프레스에서 발행한 〈Designed Matter: 디자인된 문제들〉에서 레이아웃상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위계에 대해 쓴 것처럼.

누군가는 제목과 저자 이름의 배열, 본문의 서체 등에 대해 위계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그런 단어를 선택해 설명하는 것은 북 디자인에도 정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이 똑같은 크기로 쓰인 책은 왜 드물까? 지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선택하고 편집하는 것이 디자인의 과정이므로 각 요소의 위계와 정치 역학이 분명 존재한다.

위계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이러한 위계를 최대한 없애는 디자인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에는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위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다만 이미 우선된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재조립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최근 상업 출판에서 표지에 아무런 글자를 쓰지 않은 디자인이나 본문 서체를 여러 가지로 사용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아직 드물긴 하지만 변주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면 확실히 기존의 위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디자인한 책들을 살펴보니 표지의 타이포그래피가 정직하고 올곧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려한 영문 레터링이 쓰인 〈마이너 필링스〉의 경우에도 작지만 또박또박한 한글 제목이 상단에 자리해 있다.

정말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 의식하고 실행한 부분이 아니라 자각하지 못했다. 〈마이너 필링스〉의 저자 캐시홍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생성되는 분열이 책의 중요한 지점이라 판단했다. 단단한 서체 지백으로 쓰인 한글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알파벳 레터링을 확실하게 대비시켜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커다란 알파벳들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느낌도 표현하고 싶었고.

얀 치홀트는 〈책의 형태와 타이포그래피에 관하여〉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책 디자이너는 주어진 글을 충실하고 섬세히 다루는 봉사자가 되어야 하며, 그 형태가 글의 내용을 압도하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따르지도 않는 적절한 표현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글쎄, 우선 앞뒤 맥락을 빼고 들었을 땐 ‘봉사자’라는 표현이 지나쳐 보인다.

북 디자인에서 디자이너 개인의 스타일을 드러내기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편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드러난 스타일’과 ‘내용에 충실하게 봉사하는 스타일’이라는 대립 구도를 성립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다. ‘충실하게 봉사’한 결과로 매우 ‘개성적’인 형태가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봉사’라는 표현은 얀 치홀트 특유의 자극적인 단어 선택이 아닐까 싶은데 2022년에 사는 디자인 노동자인 나는 그냥 서로 맡은 업무를 존중하며 성심껏 하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도서관 환상들〉, 만일, 2021
도서관도 일종의 편집숍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며 중세 독서 공간과 20세기 아비 바르부르크 도서관, 거리 위 시민 도서관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커버의 타이포그래피도 마치 글자들을 꽂아놓은 서가 같다.
그동안 디자인한 책 중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이었나?

정말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늘 새롭게 어렵다. 경력과 기술이 축적되어서 ‘이 정도는 쉽네’ 하는 단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일하면서 즐거웠던 동료나 출판사가 있다면?

물론 여럿 있지만 최근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안온북스. 〈왼손의 투쟁〉이라는 책을 디자인했는데, 원고를 받을 때부터 이미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 본문 디자인도 바로 떠올랐다.이렇게 독특한 형식의 글이 출판된다는 것이 참 좋았고, 제안한 디자인이 흔쾌히 받아들여진 것도 기뻤다.

〈이탈로 칼비노 문학 강의〉, 에디토리얼, 2022
이탈로 칼비노의 강의록이다. 총 다섯 번의 강의에 등장한 문학의 상징물이 표지에 모두 표현되어 있다. 한 번에 읽기 어려운 책일지도 모른다. 페이지 숫자를 상단에 적어 좀 더 기억하기 쉽다.
김동신에게 ‘이렇게는 절대 책 만들지 않겠다’는 규칙 같은 것이 있나?

절대 안 된다라…. 독자로서 바라는 것은 있다. 첫 줄 들여쓰기가 안 된 책은 좀 힘들다. 꼭 들여쓰기 방식이 아니더라도 단락 구분이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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