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쓸모, 프랙티스
정형화된 도안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미하는 프랙티스의 내일이 궁금해졌다.
건축을 공부한 갤러리스트와 실내 디자인을 전공한 가구 작가가 만났다. 가구를 매개로 의기투합해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들은 타당한 아름다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쓸모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가구와 공간을 멋스러운 것만 좇은 허무맹랑한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보다는 설계자의 의도와 디자인의 당위성이 명확한 작업에 가깝다. 정형화된 도안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미하는 프랙티스의 내일이 궁금해졌다.
초기 작업이 대부분 개인 스튜디오 공간이기 때문일까? 유연하고 가변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시산(이하 이) 처음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알터사이드라는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갤러리로 활용하지만 촬영, 대관, 워크숍 장소로 다양하게 쓰인다. 육중한 매스를 구축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사람이 모일 땐 의자를 꺼내 펼쳐서 사용하고 이벤트가 끝나면 한편에 쌓아두는 식으로 활용할 공간이 필요했다. 결국 가구가 중요한 매체였다.
안서후(이하 안) 특정 인물의 작업실이나 사무실 혹은 촬영 스튜디오를 의뢰받아 작업할 때 사용자의 의견에 귀를 많이 기울였다. 대부분 구체적 용도가 있었다. 촬영장의 메이크업 테이블, 높이 조절이 가능한 이젤, 바퀴가 달린 탈부착식 수납 데스크, 리셉션으로 변형할 수 있는 가구 등. 다양한 상황을 수용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많았고 사용자의 요구 사항에서 늘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의뢰인에게 특화된 가구를 만들다 보니 조형적으로도 흥미로운 결과물이 많았을 것이다. 사용자의 요구처럼 아이디어의 단서가 되는 것이 또 있나?
이 재료의 물성이다. 특정한 소재이기에 표현 가능한 형태가 분명히 있다. 재료를 어떻게 마감하는지에 따라 시각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 주제는 개인 작업과 프랙티스 작업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
안 옵스큐라 도산 프로젝트 같은 경우 합판을 사형주조해서 독특한 질감이 나왔다. 실질적인 재료는 모래에 액체 알루미늄을 부어 굳힌 통 금속인데 나뭇결이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금속과 나무의 특성이 모두 표현된 셈이다.
스튜디오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안 굉장히 건조한 이름이다. 외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흔히 디자인 프랙티스design practice라고 부르지 않나. 프랙티스의 회사 이름은 회사다. 우리는 디자인 ‘스튜디오’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사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지금 좋아하는 것이 10년 후에도 좋을까? 계속해서 지향점이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 프랙티스의 작업 영역과 사고의 범주도 점점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최대한 중성적이고 특정 가치를 담지 않은 이름을 짓고 싶었다. 마치 어소시에이츠Associates처럼. 만약 지금 다시 작명한다면 ‘안서후와 이시산’ 정도가 좋겠다.(웃음)
최근 프랙티스의 화두는 무엇인가?
이 갤러리 미식, 이시산 작가, 프랙티스 활동의 경계를 확장해서 작업을 선보이고 싶은데 사람들에게는 좀 헷갈리나 보다. 우리조차도 스스로 소개할 때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이게 우리의 화두다.
안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최근에 관심을 둔 주제가 무엇인가.’ 이것 자체가 요즘 우리의 대화 주제다. 곧 4년 차 스튜디오가 되는데 쉼표를 한번 찍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이 그간의 프로젝트를 곱씹는다는 의미로 아카이빙 북도 만들 계획이다. 아마 소재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프랙티스의 작업은 디자인에서 기능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이 특히 가구는 실질적 용도 너머의 미적 가치도 분명 존재하기에 조형성이나 심미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불편하지만 이를 감수하고 써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가구도 사용자가 그 가치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안 아무런 기능이 없는 오브제를 가구의 영역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단이나 손잡이 같은 것. 시각적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거나 혹은 그것이 있음으로써 공간의 정체성이 바뀐다면 가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이시산 작가의 가구와 벽에 걸린 회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는데 이런 맥락에서 회화나 조각도 가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클라이언트도 이를 이해해주는가?
안 이제는 이해해준다. 1~2년 차에는 포트폴리오가 없으니까 의아해하는 분이 많았다. 얘네가 뭘 하려는 거지? 요즘에는 이미 우리를 알고 오는 분도 많고 그만큼 일하기도 수월해졌다. 사무실 의자처럼 장시간 사용하는 가구가 아니라면, 최소한으로 충족해야 할 기능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그 외의 것은 최대한 열어두는 편이다. 카페에 의자를 납품한다면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의자 높이, 등받이 같은 것을 고려할 것이다.
디자이너와 작가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나?
이 고민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디자이너는 의뢰인이 있고 작가는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된다. 주체가 다르기에 접근 방식도, 작업 과정도 다르다. 물론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작가는 주체성을 갖는다. 하지만 결과물을 섞어놓는다면 디자이너와 작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갤러리 미식과 이시산 작가. 가구를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이 나름 탄탄한데 판매 계획은 없나?
이 좋은 질문이다. 준비하고 있는 프랙티스 가구 시리즈가 있다. 시공 현장이나 공장에서 흔히 보이는 각파이프에 벤딩 기술을 접목한 가구 ‘벤드Bend’다. 휘는 정도가 동일한 각파이프를 변칙적으로 나열하고 용접한 디자인이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것이 한 공장에서 이루어진다. 주문 제작 방식으로 판매할 계획인데 제작 공정을 봤을 땐 양산화도 가능할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좌판의 한쪽 면은 유광, 다른 한쪽은 무광으로 소재를 변주한 것을 알 수 있다. 새롭게 준비 중인 미식의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안 11월에는 가구 작가들과 파빌리온으로 전시 공간을 연출하는 작업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제주도 카페의 건축 프로젝트를 맡아서 지금 설계하는 단계다. 내년에 오픈한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공간, 좋은 가구는 무엇인가?
이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디자인이다. 조금 불편한 가구일지라도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면 부족한 부분이 상쇄되어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단일한 디자인, 창작자의 의도와 개념이 명확하게 담긴 디자인, 그리고 편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디자인이다. 글 정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