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디자인의 질문들, 윤현학
영국 RCA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8년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의 레지던스를 거쳤다. 이후 암스테르담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렘코 반 블라델Studio Remco van Bladel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서울에서 디자이너 이은지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메이저 마이너리티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RCA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8년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의 레지던스를 거쳤다. 이후 암스테르담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렘코 반 블라델Studio Remco van Bladel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서울에서 디자이너 이은지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메이저 마이너리티를 운영하고 있다. tedhyoon
‘디자인은 예술의 동생(art’s little brother)’이라는 릭 포이너의 글 이후, 우리가 예술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봤던가? 동시대 디자이너와 예술가를 명징하게 구분 지을 변명은 얼마나 더 남아 있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레닌 동상과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의 유사점을 분석해 독재의 제스처를 재연하는 작업은 디자인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2017년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의 레지던스에 참여한 윤현학은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 ‘Decoding Dictatorial Statues’를 통해 독재자들의 동상을 살펴보고, 손 또는 발 등의 제스처에서 독재의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발견했다. 이 리서치는 동명의 출판물로 기록되고, 독재의 모션을 다시금 재생산해보는 퍼포먼스로도 이어졌다.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 머무는 동안 그는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로 구분하지 않아도 리서치가 작업물로 성립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윤현학이 스스로를 디자이너로 정의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저는 그래픽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유희’를 믿어요. 제 역할도 프로젝트에서 유희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반응한다면, 그것은 즐길 만한 것이니까요.” 현대미술 작가, 기획자, 평론가 등 50명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뉴스페이퍼〉 1면을 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윤현학은 완전히 다른 콘텐츠들 사이에 억지로 맥락을 부여하거나 그저 레이아웃 정리를 좀 하고 나서 ‘유연한 시스템 디자인’ 같은 변명을 하기보다는, 말 많은 신문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했다. 기사 성격에 맞는 서체를 제각각 입히고, 이들을 시각적으로 충돌시켜 다소 밋밋한 ‘신문’이라는 콘셉트임에도 활발한 에너지가 가동되도록 했다.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이 옳은 논리를 증명하는 도구로 성장해왔다면, 이제는 디자이너의 관점을 공유하는 장르가 되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윤현학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메이저 마이너리티Major Minority’ 또한 이 같은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한 프로젝트 안에서 그래픽 디자인이 맡은 영역은 사소해질 수도 있고, 일의 전체 과정을 결정하는 주도성을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디자이너에게 달렸다고 말한다면 너무 큰 부담을 주는 일일까? 런던과 암스테르담을 거쳐 본격적으로 서울에 닻을 내린 윤현학이 지금 지속적으로 던지는 질문도 이와 맞닿아 있다. 디자이너의 자리는 어디인가? 작게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안에서, 넓게는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제도권 안에서 디자이너의 독립적인 영역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가? 2023년의 디자인이 찾고자 하는 답도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글 박슬기 기자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 세 가지
출근, 퇴근, 집.
지난해 날 설레게 한 디자인
스위스-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 듀오 오프쇼어 스튜디오Offshore Studio의 작업들.
올해 꼭 만나고 싶은 클라이언트
나이키, 데이토나 레코즈Daytona Records.
자신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는 사회적 이슈
미래 세대의 삶의 불안정성.
지난해 소비 중 가장 만족하는 것
포터의 센시즈Senses 가방.
디자이너를 건강하게 만드는 습관
일주일에 3번 러닝하기, 11시 반 전에 자고 일찍 일어나기.
새해 계획
바쁘게 꾸준하게 일하고 가족들과 시간 많이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