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으로 짓는 시, 민구홍
현재는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의 디렉터이자 ‘민구홍 매뉴팩처링’도 운영 중이다.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에서 코딩을 가르친다.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은 한 줄 한 줄 코드를 써 내려가며 모니터에 출력시키는, 온갖 비유와 함축의 언어로 가득 찬 시를 짓는 행위와 같다. 편집자이자 웹 언어 구사자인 민구홍도 한 글자씩 손으로 직접 기입한 웹을 구축한다. 이를 두고 그를 웹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불충분한 직함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스튜디오를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 부르고 회사 소개를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로 대체하며, 수많은 디자이너의 동료이자 협업자이자 때로는 교육자인 그를 석연하게 묘사하기에는 아직 적절한 단어가 없다.
누군가 민구홍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적당한 표현일까?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직업과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
2022년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웹 디자이너를 포함해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든다. 편집은 결국 여러 요소를 연결하는 일이다. 디자인 또한 넓은 의미에서 편집이라고 생각한다. 편집과 디자인을 동시에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편집과 디자인의 관계를 유심히 보게 된 것 아닐까? 첫 직장이 안그라픽스였나?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전공 수업을 준비하다 내가 출력한 작품과 내가 읽던 책의 본문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게 타이포그래피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고, 구글에서 검색한 타이포그래피 전문가인 안상수 선생께 책을 몇 권 추천해주십사 이메일을 보낸 게 인연의 시작이다. 그 뒤 자연스럽게 날개집에서 안그라픽스로 옮겨 편집자가 됐다.
편집자로 일하다가 시적 연산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5년이 넘도록 쉼 없이 일했으니 휴식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우연히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aion, SFPC, sfpc.io)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적’과 ‘연산’이라는 단어가 학교 이름 안에서 어우러진 점이 근사하지 않나? 대학교에서 문학(시)을 공부하고,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한 내 모습과 얼마간 포개지기도 했다. 막상 학교 웹사이트를 둘러볼 때는 조금 이상한 학교라 생각했다. “우리의 모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 많은 시, 더 적은 데모.” 갸우뚱한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좋아하는 미국 시인이자 우부웹(UbuWeb, ubu.com) 운영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작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곳이었다. 시적 연산 학교는 2013년 미국 뉴욕에 설립한 대안 예술 학교다. 소수의 학생과 교수진이 긴밀히 협력해 코드, 디자인, 하드웨어,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유도하며,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이어졌다. 일반 대학교로 따지면 2년 정도에 해당하는 과정일 거다. 아,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만나지 못했다.
귀국 후 워크룸으로 향했다. 새하얀 커버에 커다랗게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잊어라”라고 적힌 바로 그 책도 워크룸에서 나왔다. 민구홍에게도 워크룸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 행복하게 보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다.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 박활성 선배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다. 일찍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들이었고, 당연히 그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귀국하고 자연스럽게 워크룸의 일원이 되었다. 내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하고, 워크룸 웹사이트를 개편한 것이다.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는 분위기 덕에 가능했다.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했고, 미술과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신비스러운 데가 있다. ‘회사 소개’를 읽어봐도 도무지 수수께끼 같다.
설립한 것은 2015년인데 당시는 소규모 스튜디오가 많이 등장하던 시절이라 나도 덩달아 뭔가 해보고 싶었다. 내 이름을 내세우는 건 부끄럽고 겸연쩍었다. 동시에 이름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을 붙이니 나와 적당한 거리가 생기면서도 그럴듯한 회사 이름처럼 보였다.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을 뜻한다. 야구에서는 ‘도루, 진루타, 희생타 등 어떤 식으로든 득점하는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매뉴팩처링’이 품은 두 가지 뜻이 회사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은 소개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며칠 전 한국 코카-콜라와 미팅할 때는 ‘코카-콜라를 사랑하는 회사’로 소개했다.
‘새로운 질서’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단순히 웹 언어 기술을 숙지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전달한다면 그건 무엇인가?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학생, 회사원, 미술가, 음악가 등등. 한번은 스님도 왔었다. 만약 ‘새로운 질서’가 웹 디자인 강좌였다면 보기 힘든 모습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 등장한 첨단 기술과 견주면 분명히 시대착오적일지 모른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을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 바라본다. 소프트웨어 툴이 아닌 그저 커서가 깜박이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한 줄 한 줄 써서 이뤄지는 코딩은 낯선 언어를 익혀 시나 소설을 쓰는 일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질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데 있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남 또한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웹사이트는 어쩌면 맥거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내가 뭔가를 알려주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다.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다.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인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
민구홍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혹은 본인이 특수한 경우인가?
나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로는 구글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에는 챗GTP의 도움까지 받는다. 물론 디자이너로서의 내가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 싶은 모범 같은 것도 없다.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모범이 있다면 그것을 참고해 자신에게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을 추구한,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8시간을 행복하게 보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