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백현진 2인전

3월 15일부터 4월 22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김태윤과 다재다능한 예술가 백현진의 2인전이 열린다.

김태윤×백현진 2인전
김태윤(왼쪽)과 백현진. 촬영은 백현진의 작업실에서 진행했다.

3월 15일부터 4월 22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김태윤과 다재다능한 예술가 백현진의 2인전이 열린다. 두 작가가 조응하고 교류하며 창작을 일구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다. 그 과정의 결과는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최근 작업을 마친 백현진의 페인팅 작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1+1 이상의 케미스트리, 지우헌 2인전

가구 작가 황형신과 동양화가 김선형,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과 가수 겸 회화 작가 마이큐, 사진가 박명래와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지우헌은 그동안 남다른 관점을 가진 창작자들을 엮어 신선한 조합을 만들어냈다. 개인전이 예술가 한 명의 가치와 방향성을 보여준다면, 2인전은 두 작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혼자일 때는 불가능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지우헌은 그동안 가구와 회화를 결합한 전시를 주로 선보였다. 고즈넉하면서도 모던한 한옥을 배경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조금 다르다. 사운드와 미디어 아트, 페인팅이 한데 어우러진 현대미술 전시이기 때문. 전시를 기획한 지우헌의 김아름 큐레이터는 “과거가 흐르는 공간에서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접한다면 잊지 못할 반전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고풍스러운 북촌 한옥마을 한가운데 놓인 갤러리에서 파격과 실험으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을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파격을 불러오기를 의도한 것이다.

주도면밀한 즉흥성, 백현진

미술계의 흐름에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해온 두 작가는 살아온 환경도, 활용하는 도구도 다르지만 일상을 그들만의 독창적이면서도 세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음악가이자 배우, 회화 작가이기도 한 전방위 예술가 백현진은 직관적인 페인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해왔다. 그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붓에 손을 맡긴다고. “뭔가를 규정하는 것이 대자연의 일부로서 어색하다”는 그의 말이 전하듯, 특정한 직함과 영역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지만 성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이루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충동과 불규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김아름 큐레이터는 “백현진의 작품은 견고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라며 “작품을 구성하는 선과 사소한 번짐, 덧대짐, 지워짐 등 하나하나가 숙고를 거친다”고 역설했다. 백현진은 스스로를 예술가나 화가, 작가가 아닌 그저 ‘일 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페인팅과 음악, 연기 등 자신의 모든 활동이 본능의 일부처럼 평범한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의 후원 작가로 선정된 것에도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선정 사실을 전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특정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관람자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기는 것 또한 그의 특징이다. 2021년 PKM 갤러리에서 개최한 전시 〈말보다는〉에서는 전시와 작품 설명용 텍스트를 없애며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림을 언어라는 규격에 갇히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태윤의 제목 미상의 미디어 아트 작품. 접시가 회전하다 넘어지는 상황을 구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한다.
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 김태윤

미디어 아트와 드로잉, 오브제 작업을 오가는 김태윤은 ‘시간성’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해왔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시간을 시각화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 그는 ‘큰 흐름 속에서 찰나를 포착하는 것’을 작품의 특징으로 꼽는다. 가령 지난해 휘슬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Oblique Afternoon: 비스듬한 오후〉에서는 일상 속 평범한 장소 여러 곳에서 즉흥적으로 모은 소리와 영상을 미디어 아트로 표현했다. 여기서 물의 파장이나 자동차의 움직임을 확대해 도심 속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편집해 시간의 흐름을 왜곡함으로써 시간의 온전한 형태를 자연스레 연상하도록 유도했다. 그는 미디어 아트로 작품을 구현할 때 LED 스크린과 태블릿 PC, 컴퓨터 모니터 등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회화 작가가 캔버스를 고르듯 화면의 질감에 따라 영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중 LED 스크린의 경우 현재 조금씩 망가지고 있지만, 뛰어난 해상도가 중요한 작품을 표현하지 않는 이상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군데군데 켜지지 않은 LED 단자들은 마치 캔버스 안에 박힌 검은 점처럼 작품 한가운데 자리 잡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독특한 감성을 선사한다. “소위 힙하다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 홍수 속에서 잔잔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물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아름 큐레이터의 말처럼 시간의 흐름을 되짚어 다양한 시간의 형태를 제안하는 김태윤의 작품은 신선함을 자아낸다. 그는 종종 디제잉을 하고 사운드 작업도 하는데 음악, 정확히는 소리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백현진과 또 다른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순간을 포착해 촬영 후 변형한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제목 미상. 지우헌 전시를 위한 작품이다.
가상현실과 설거지의 상관관계는?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전시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들에게 가상현실이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메타버스나 SF·판타지 영화 속 상상의 도시 따위가 아니다. 초현실적인 비주얼보다는 현실을 모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태윤은 “요즘 구현되는 가상 세계는 최대한 현실과 비슷해져 불쾌한 골짜기를 없애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듯하다. 어찌 보면 영화도 일종의 가상현실이라 할 수 있다”라며 전시 콘셉트에 대한 힌트를 넌지시 건넸다. 또 이들은 ‘설거지’를 전시의 주된 퍼포먼스이자 작품 테마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태윤은 “어느 날 설거지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그 순간이 명상이나 수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처음 영감을 받은 순간을 설명했다. 이후 건조대에 놓인 접시 형태와 물 나오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등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그는 백현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이 발상이 마음에 든 백현진은 음향 감독을 자처했는데, 김태윤이 녹음한 설거지하는 소리를 바탕으로 전시를 위한 사운드를 제작할 예정이다. 아직 작업에 착수하지 않아 정확한 구상을 말할 수는 없지만 저음 설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제작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할 것이라며 그 특유의 창작 스타일로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 김태윤은 현재 전시에 공개할 작품을 상당 부분 완성했는데, 접시가 돌다가 넘어지는 과정을 3D 모델링으로 구현한 영상과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순간을 변형한 영상을 각각 미디어 아트로 표현할 예정이다. 그중 제목 미상의 접시 영상은 접시가 넘어지는 과정부터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현실 속 물리 법칙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다. 두 작가가 제시한 ‘가상현실’이라는 키워드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현진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촬영한 퍼포먼스 영상도 미디어 아트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아직 그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전시의 완성된 모습은 3월 15일부터 지우헌에서 만나볼 수 있다.
jiwooheon_dh

2022년 휘슬 갤러리에서 열린 김태윤의 개인전 〈Oblique Afternoon: 비스듬한 오후〉.

글 박종우 기자 사진 이기태, 김은지 기자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37호(2023.03)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