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을 움직이는 엔진에 대하여, 이석우x송승원·조윤경

특히 일부 건설사를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을 고도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석우 SWNA 대표와 송승원·조윤경 인테그 공동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브랜딩과 디자인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을 움직이는 엔진에 대하여, 이석우x송승원·조윤경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분양가 자율화가 이루어졌고, 분양가를 기업이 정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건설사가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차별화를 위해 기업이 선택한 무기가 바로 ‘브랜드’였다. 아파트의 브랜드화가 주택 공급 가격 상승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여러 사회 문제의 직간접적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 브랜딩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면서 과거보다 나은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한다. 특히 일부 건설사를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을 고도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석우 SWNA 대표와 송승원·조윤경 인테그 공동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브랜딩과 디자인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석우 SWNA 대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 제품 디자이너로 근무한 뒤, 미국의 산업 디자인 전문 기업 티그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2008년 모토로라 글로벌 제품 크리에이티브 리드를 맡았으며, 2011년 독립해 SWBK(현 SWNA)를 설립했다. 가전제품, 트로피, 가구, 화장품 용기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특히 2018년부터 푸르지오의 마스터플래닝과 브랜드 리뉴얼 및 전략 수립 등을 총체적으로 담당했다.

송승원·조윤경 건축 기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스튜디오 인테그 공동 대표.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2015년 인테그를 설립했다.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코워킹 스페이스 ‘스파크 플러스’, 베이커리 ‘타르틴’ 등 다양한 공간 디자인에 참여했다. 주거 분야로는 맹그로브 신촌, 브라이튼 한남, 브라이튼 N40 등의 디자인을 맡았으며, 브라이튼 한남 갤러리 기획과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브라이튼 N40과 브라이튼 한남 갤러리로 올해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석우 최근 몇 년 사이 아파트 관련 클라이언트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아파트 디자인의 핵심이 공간에서 종합적인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과거에는 필요한 공간을 적절히 구현하는 게 전부였다면, 현재는 브랜드별로 지향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클라이언트에게 3차 산업인 서비스업 관점에서 아파트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해요. 2차 산업인 건설업 관점으로는 업계 선두 주자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송승원 아파트라는 건축물은 그동안 밀도 있게 여러 세대를 수직으로 쌓아서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데 최적화되었어요. 아파트를 공공 기관에서 공급하는 국가도 적지 않았는데, 본격적으로 판매 대상이 되면서부터 브랜드화가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중산층과 부유층이 아파트를 구입하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요. 이때 기업은 차별화를 위해 자사의 아파트에 살면 남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고,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브랜드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조윤경 저는 이 현상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아파트의 브랜드화는 네이밍에서 시작되었는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사 이름을 아파트에 그대로 사용했어요. 아파트를 만든 주체를 강조한 것이죠.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아파트와 건설사를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보여요. 입주자를 대표하는 새로운 얼굴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죠. 여기에 로컬리티와 사용자 분석이 결합되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브랜딩과 디자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참여한 브라이튼 한남과 브라이튼 N40의 경우, 같은 브랜드이지만 세대 수부터 건물 내 시설까지 사용자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브라이튼 한남은 주로 젊은 라이프스타일의 1~2인 가구를 타기팅해 개발했어요. 반려동물을 위한 펫 케어 서비스와 호텔 같은 룸 클리닝 서비스를 지원하죠. 어메니티 시설로는 입주자 개인이 동료나 친구를 불러 함께 놀 수 있는 소규모 파티 룸을 구현했어요. 논현에 위치한 브라이튼 N40은 안정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1인 또는 가족 단위를 기본으로 세대를 구성한 곳으로, 가족을 위한 프라이빗 키친과 도서관, 스튜디오 등이 구비되어 있죠. 그 외에 같은 어메니티 시설이지만 두 곳의 프로그램이 다르기도 해요.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곧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일 테니, 주거 공간을 기획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과거보다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됐죠.

이석우 요즘 건설사 실무진을 만나면 건물 외관을 잘 설계하는 일을 넘어 대부분 브랜드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더군요. 그런 점에서는 꽤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조윤경 아파트의 개념이 변화하는 중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효율적인 집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집으로 변하고 있는 거죠. 이 과정에서 브랜딩과 디자인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어요. 그래서 주거 공간 기획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기도 해요. 거주자들의 소통을 쉽게 만들고, 통일된 브랜드 언어를 만드는 데 디자인의 도움이 필요하죠. 이석우 대표는 푸르지오의 브랜드 리뉴얼부터 공간 마스터 플래닝까지, 사실상 아파트의 전 영역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데 참여하셨죠?

이석우 맞아요. 아파트 건설사 내부 조직의 변화를 알 수 있어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였어요. 건설사는 실내팀, 건설팀, 건축팀, 조경팀 등 분야별로 부서가 나뉘어 있어요. 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모든 부서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하는데, 진행 속도도 느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실현되는 데 어려움이 많죠. 반면 푸르지오를 만든 대우건설의 경우, 각 부서별로 실무자를 차출해 만든 별도의 TF팀이 있었어요. 브랜딩에 관심을 가진 젊은 직원들이 모인 조직인데, 이들과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제 의견에도 유연하고 빠르게 반응하고요. 일부 건설사는 여러 부서를 통합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자신의 업무 영역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해서 협조가 쉽지 않죠. 하지만 푸르지오 프로젝트의 경우, TF팀과 원활하게 협업이 이루어진 덕분에 마스터플래너로서 여러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고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송승원 저희가 참여한 맹그로브 신촌의 클라이언트인 MGRV와 일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부서별 전문가들과 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었는데, 서로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어 많은 영감을 받았죠. 요즘 맹그로브가 브랜딩 측면에서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는 것도 MGRV의 유연함과 기민함이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인테그가 공간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에 참여한 모델하우스 ‘브라이튼 한남 갤러리’. 자료 제공 인테그

이석우 조직 문화를 바꾼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격차는 앞으로 점차 더 크게 벌어질 거예요. 그동안 다양한 건설사를 만났는데 기업별로 조직 문화가 제각각이더군요. 직원들이 전부 작업복을 착용하고 출근하는 곳도 있고 영업 담당자가 외부 손님을 응대하는 곳도 있었죠.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아파트를 보니, 기업의 톤앤매너가 아파트 디자인과 브랜딩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퀄리티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조윤경 새로운 시도에 호의적인 클라이언트 덕분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브라이튼 한남 모델하우스인 ‘브라이튼 한남 갤러리’의 디자인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까지 맡았었죠. 기존 모델하우스는 완성될 세대의 형태를 자세히 묘사해 직접적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저희는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방문객에게 이 브랜드가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 역시 필수이고요. 그래서 갤러리형 모델하우스로 기획해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어요. 조경, 브랜드 영상, 주차 안내 시 직원의 제스처와 설명 담당 직원의 멘트 하나까지 종합적으로 고민했습니다. 이석우 대표가 푸르지오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래너였다면, 저희는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브랜드 경험을 총괄하는 지휘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석우 앞으로 모델하우스는 아파트 브랜딩의 집약체로 부상할 것 같네요. 그만큼 주거 시장에서 브랜드와 디자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디자인은 육체이고 브랜드는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가시화하고, 그것을 고객이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송승원 저희는 브랜드는 입주자들의 공통된 페르소나와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해서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음을 인식시켜주는 것이죠. 디자인은 실제로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40호(2023.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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